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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도 1100억 다단계 사기 '10년 추가 선고'


주수도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피라미드사기사건을 저지른 범죄자이자 기업인이며, JU그룹 창업주이기도 하다. 바다이야기 파동 등과 더불어 참여정부 말기를 뒤흔든 스캔들 중 하나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범인이며, 적발 당시에는 최대였다.

1956년 당시 경상남도 울산 조개섬에서 염전업을 하는 집안의 2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 당시 조개섬은 울산 동구 쪽에 위치하였고 염전은 남구에서 이뤄져 앞뒤가 맞지않고 어느 곳에 살았어도 20리 먼 초등학교로 나오는 주수도 출신학교가 나오지 않아 위조로 의심된다는 의견이 있으나 조개섬에서 염전업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어 이 부분은 사실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냥 그런 얘기도 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어쨌든 어린 시절이 매우 불우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설상가상으로 형제들까지 모두 죽어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컸다고 한다. 당연히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초등학교는 매일 20리를 걸어다녀야 했고 중학교 진학후에 서울로 상경했는데 이때는 학원가에서 칠판닦이 고학생으로 독학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로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대학 영문과를 어렵사리 졸업했다고 주장하는데 주변인들은 주수도가 공부를 잘한것은 사실이나 미국에 건너가기에는 시간상 여유가 없었다고 증언한것을 보면 아마 명예박사학위를 돈으로 산 것을 정식학위로 속이거나 아니면 아예 100% 사기거나 둘중의 하나일것이다.

어쨌든간에 당시에는 학력위조를 해서 서울대 출신이라고 속이기는 했지만 어차피 당대에는 학력위조가 그리 드문일이 아니기도 한데다가 원체 출세욕이 왕성했던 인물인지라 공부를 죽어라 했기때문에 당대 기준으로는 꽤 실력도 있는데다 유머감각도 같이 갖춘 달변가라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능력 자체는 좋았기 때문에 성문종합영어 단과반 강사로 일명 "낙원동 주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서울 학원가에서 명성을 날렸으며 고관대작들 자녀들을 상대로도 고액과외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여들였고,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1983년에 서초학원이라는 명칭으로 자신의 학원을 차려서 서운로 서초삼호아파트·진흥아파트 인근에 있는 영동프라자 상가건물에서 원장으로 학원 운영을 직접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주수도는 강남역 태극당 예식장 앞에 영재학원이라는 재수생 대상 종합반학원을 만들었고, 이때 각 과목별로 일타강사라는 선생들을 모두 끌어온게 된다. 당시 장위동에 살았던 강사의 말을 빌리면 주수도는 일타강사를 끌어오기 위해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서 일타강사 부인에게 제공하며 환심을 사 해당 강사가 결국 영재학원으로 합류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수도는 이후로 정계진출까지 노려서 학원을 담보로 빚을 내다가 파산하게 되었고 영재학원까지 덤으로 부도위기까지 직면했으나 당대 최고의 일타강사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강사주주제로 전환하고 국내 최고의 전설적인 화학 1타강사였던 홍석주씨를 대표원장으로 학원운영을 이어간다. 이후 형집행을 마치고 학원으로 돌아온 주수도는 학원지분을 다시 사들여 대표원장으로 자리매김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학원사업에 전념했지만 명예욕때문에 학원사업과 관계없는 사업들에 기웃거리다가 결국 폐업했다. 당시 영재학원은 국어, 영어, 수학, 국사에서 각 과목 최고라는 1타 강사들이 종로학원, 대성학원 및 노량진 단과학원에서 전강좌 마감시키는 최고의 강사들이 모두 모여 있어 종로학원 대성학원에 이어 재수종합학원 3위까지 단번에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었다. 어쨌든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얌전하게 학원을 계속 운영하고 부동산도 굴리고 했으면 그의 인생이 화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 밑바닥 영세민에서 사회주류로 진입하여 고위급 인사들과도 연줄을 가진 인물로 입지를 다질 무렵에 출세욕이 절정에 달해 정계진출을 꿈꾸웠고 특히 김종필과 인연이 생겨 13대 대선을 앞두고 신민주공화당 창당멤버가 되었고 강남지구당 위원장을 맡았지만 지구당 운영 및 선거자금으로 전재산을 쏟아붓는 바람에 부도를 냈고 결국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운동도 못하고 잠적했고, 급기야 3달간 구치소에 수감되기까지 했는데 당연히 13대 총선 출마도 말짱 황이 되었다. 그렇게 정계진출의 꿈을 씁쓸하게 접고 다시 학원경영에 나섰다가 뭐에 꼿혔는지 찰나에 본격적인 사업가가 되겠다며 건설회사를 인수해보았지만 사기를 당해서 대차게 말아먹었고 사채업에도 손을 쓰다가 이것도 신통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1996년에 "일영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컴퓨터 다단계 판매에 손을 댔는데 오래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닥쳐오면서 실적이 망해버린데다가 사기혐의로 기소당해서 이것도 말아먹었다.

그러나 재기에 성공해서 다단계 업체인 주코를 설립했는데 이건 대박을 쳤다. 뛰어난 말빨과 "소비생활 마케팅"이라고 이름지어진 독특한 마케팅 방식으로 회원들을 35만명씩이나 모았고 2003년에 Amway를 제치고 한때 다단계 사업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사업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백화점, 편의점, 슈퍼마켓 등의 유통업과 건설업, 레저업, 영화제작, 자원탐사개발에도 잇따라 진출하고 대종상에도 협찬을 하는 등 문어발식 확장을 하며 일약 21세기의 신흥재벌로 떠오를 것 처럼 보였다. 이때 주수도는 학원운영이나 정계에 잠시 입문해있었을 시절에 쌓아올려놓은 인맥을 통해 끈이 떨어진 정치인들이나 유지들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면서 사업홍보에 써먹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확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고 사업성을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의 후유증으로 실적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주수도는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사업이 잘된다고 투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이러한 허세에도 2006년 들어 제이유 그룹의 부실경영과 다단계 판매의 실태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고, 이에 다급해진 주수도는 최후의 수로 루보 사태라는 최악의 주가조작 사건을 일으켰다 물론 루보사태와 관계없이 구속될 운명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주가조작 사건으로 수많은 회원들이 재산이 날라가고 가정이 파탄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은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제이유 그룹은 해체되었으며 주수도 자신도 당연히 사기죄로 감옥에 갔다. 중국에 투자한 회사의 수익으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애시당초 그게 가능했으면 이 항목에 사건사고 틀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이유가 패망한 이후에도 제이유 마트라는 간판을 여전히 달고 있는 슈퍼마켓은 잔존해있으나 제이유마트 잔당(?)들은 모기업인 제이유그룹과의 관계가 확실히 단절된 채로 간판만 제이유를 그대로 써 붙이는지는 불명이다.

이후 2007년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으나. 옥중에서 1137억원의 다단계사기를 또 저질렀다. 출소 3개월을 앞두고 드러난 것으로 타인 명의로 다단계 업체를 설립해 측근들을 통해 운영했다고 한다. 또 지인에게 자신을 허위 고소하게 해 변호사 접견시간을 늘리는 수법을 써 1년 반 동안 2500번 넘게 변호사를 만났고 이를 통해 경영을 해왔다고 한다. 현재 검찰은 측근 변호사 2명을 구속 기소하였으며 2019년 5월에 형기가 만료되는 주수도에 대한 구속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결국 2020년에 징역 10년이 추가로 선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