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3.
1997년 1월 1일, 내연관계에 있던 남녀가 결혼 예정이었던 남성의 예비신부를 살해 후 암매장했던 사건이다. 용의자들이 여권 브로커를 통해 신분을 위조해서 미국으로 도피하여 장기 미제 사건이 될 뻔했는데, 공개수배 사건 25시를 통한 LA지역 교민의 신고 덕분에 극적으로 검거되었다.
용의자 최수혁(사건 당시 27세)은 약혼녀 오주연(가명, 사건 당시 26세)와 약혼을 하여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광주광역시의 모 회사의 경리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정효실(사건 당시 25세)와 내연관계를 저지르고 있었다.
97년 1월 1일 밤, 최수혁은 오주연을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2동으로 불러내었고, 이 과정에서 정효실이 오주연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다 오주연을 목졸라 살해했다.
현장에 있었던 최수혁과 정효실은 그 즉시, 오주연의 시체를 쌀포대에 담아 최수혁의 고향이었던 신안군 지도읍의 한 상수도 아래에 유기했다.
그 이후, 1월 5일까지 최수혁은 뻔뻔하게 예비장인이었던 오주연의 아버지와 함께 오주연을 찾아다니며 목욕탕에서 함께 목욕을 하기도 하면서 도피기회를 엿보았다.
1월 5일, 최수혁은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삐삐에 자신과 정효실이 오주연을 살해하였다는 내용을 녹음하여 이들의 범행의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후 최수혁의 결혼자금과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을 갖고 도피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경찰은 두 사람을 잡기 위해 MBC 경찰청 사람들에 공개수배를 의뢰하였고, 1997년 2월 4일자 176화와 1997년 12월 16일자 217회 이렇게 2차례 용의자를 찾습니다 코너를 통해 방영되었다. 또한 1998년 3월 11일 공개수배 사건 25시 4회에서도 공개수배되었지만 두 사람의 소재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전혀 포착되지 않았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넘어가는 듯 했으나....
사건 25시에서 공개수배된지 약 2년 5개월이 지난 2000년 8월 말, 목포경찰서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범인들의 소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전화를 걸어온 남성은 자신을 미국 LA에 거주하는 교민이라고 밝혔으며, LA 코리아타운에서 판매된 공개수배 사건 25시 녹화 비디오를 시청했는데 그게 바로 최수혁과 정효실이 공개수배된 회차였고 자신이 방문한 롱비치의 한 슈퍼마켓에서 두 사람과 매우 유사한 한국인들을 봤다는 제보를 해온 것.
이에 목포경찰서는 사건 당시 배포된 수배 전단지를 제보자가 알려준 LA 현지 주소로 보냈고, 이를 받은 제보자가 전화를 걸어와 동일인물이 확실하다는 답을 하자 경찰청 외사과를 통해 INS 및 LAPD와 공조수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보가 들어온지 약 2개월 후인 2000년 10월 17일(현지시각) 롱비치 슈퍼마켓에 출근한 두 용의자를 체포하는데 성공하였다.
두 사람은 김성민, 김현미라는 이름의 여권을 제시하며 불법 체류 사실만 인정할뿐 자신들이 최수혁, 정효실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LAPD가 이들의 지문을 채취하여 한국 주민등록 시스템의 지문과 대조한 결과 최수혁, 정효실임이 드러났지만 동명이인이라면서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한-미 사이 범죄인 인도조약은 98년 6월 발의되고 99년 12월부터 시행되었기에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위 2명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이 가능했지만, 아직 그런 선례가 없었던 터라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일단 송환 요청을 위한 서류의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던 터라, 우선 불법체류자 자격으로 LAPD를 설득하여 이들을 우선 구금하였으나 두 사람이 캘리포니아 법원에 보석금을 지불하여 가석방을 신청할 의사를 보인 것.
이에 대한민국 경찰청은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 제 10조의 의거한 긴급인도구속을 신청한다. 이를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받아들이게 되자 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한국 귀국 후 범죄 사실을 진술할 뜻을 밝힘과 동시에 불법체류자로서의 추방 형식의 자진귀국 의사를 밝히게 되어, 2000년 10월 30일(현지시각) 아시아나항공 204편(OZ204)을 통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10월 31일(한국시각)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전남도경 목포경찰서 형사들에게 신병이 인계되어 구속되었다.
검거된 두 사람이 목포경찰서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범행 직후 최수혁의 친척이 빌려준 차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부산광역시로 이동했고 나중에는 서울특별시로 올라와 한양대학교 인근 자취방을 얻어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도피는 한계가 있었기에 여권 브로커에게 500만원을 내고 위조 여권을 구입, 최수혁이 1997년 11월 '김성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정효실도 1998년 1월 '김현미'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도피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로스앤젤레스 위성 도시인 롱비치의 히스패닉 타운 슈퍼마켓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며 은신하고 있었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한 불법체류자 신분인데다 미국에서 정식 취업할 정도의 기술도 심지어 언어 구사 능력도 없었고, 도피자금의 상당수를 위조여권 구매에 써버린 만큼, 다소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에 은거하면서 낮은 수입으로나마 도피자금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롱비치 자체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콤프턴 및 카슨(Carson) 같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치안이 제일 불안한 지역과 인접해 있어 치안이 좋지 않은 편.
두 사람을 자주 접해왔던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항상 어두운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집과 슈퍼마켓만을 오갔다고 하는데,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 제작진이 목포경찰서를 방문했을 때 최수혁이 인터뷰한 바로는 주변의 멕시코 출신 이민자한테 운전면허증을 받아서 거주지로부터 먼 슈퍼마켓에 출퇴근했기에 아무도 모를거라 생각했으며 미국에서 죄를 짓지 않으면 체포는 당하지 않을거라 안심했다고.
그러나 설마 자신들이 공개수배된 사건 25시 방영분이 하필 LA 코리아타운에 해적판으로 판매되고, 그걸 본 사람이 자신들을 목격해서 검거될 줄은 몰랐을 듯. 그래도 미국 생활이 마냥 편했던 건 아니었는지, 목포경찰서로 압송되어 왔을 때 심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최수혁은 "후련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1년 4월 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 결과 정효실에게 징역 18년, 최수혁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었다.
이후 2001년 7월 26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 결과 정효실에게 10년, 최수혁에게 4년이 선고되었다. 이 때 최수혁은 상고장을 냈다가 철회하여 그대로 형이 확정되었고, 정효실은 애초부터 상소를 포기했지만 검사가 정효실의 형량에 대해 상고장을 내면서 대법원으로 가게 되었다.
2001년 12월 27일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정효실의 형량은 10년으로 확정되었다. 두 사람이 가석방 등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면 정효실은 2011년 10월 30일, 최수혁은 2004년 10월 30일에 만기 출소한 것으로 추정.
또한 최수혁, 정효실의 도피 행각을 도운 친척 최모씨도 1심에 함께 회부되었는데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는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