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참 쉽죠?? EBS 그림을 그립시다 밥로스
본문 바로가기

어때요? 참 쉽죠?? EBS 그림을 그립시다 밥로스


2017. 1. 8.


어때요, 참 쉽죠?

미국 태생의 서양화가. 본명은 로버트 노먼 "밥" 로스(Robert Norman "Bob" Ross)로, 농담삼아서 사람들이 부르는 별명은, 희대의 사기꾼 밥 아저씨.

특이한 아프로 헤어와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항상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애완 청설모가 인상적이다. 방송 중 언행을 보면 상당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듯하다.


젊은 시절의 밥 로스. 사실 그의 아프로는 제대 후 그림을 그려 생활하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길러서 한 번 파마하고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미처 파마를 풀기도 전에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그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이 때문에 나중엔 오히려 아쉬워 했다고 한다.


원래는 미 공군 부사관이었고 알래스카 공군기지에서 10여 년간을 살며 알래스카의 풍광을 그림으로 그려 파는 일을 부업 삼아서 했는데, 군대 업무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말리고 덧칠하는 과정에 길게는 며칠 이상이 소요되는 전통적인 유화 대신에, 풍경 하나를 수십 분 안에 그려낼 수 있는 자신의 기법을 차츰 개발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에게 툭하면 소리를 질러대는 상사를 보며, 차라리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전역했다.

'밥 로스 교실(Bob Ross Class)'이라는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경력이 있다. 생전에 그림 그리기가 대중에 쉽게 접근되기를 바라며, TV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에 출연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빌 알렉산더가 진행하던 강연을 밥 로스가 잠시 맡았을 때 그의 강연에 참석한 애닛 코왈스키가 그의 강연을 상업화하고자 접근했고, 이것이 적중한 것이다.1983년부터 시작하여 죽기 1년 전인 1994년까지 PBS에서 방영되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미국에서 동명의 그림 그리기 비디오 게임이 출시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의 EBS에서 《그림을 그립시다》는 이름으로 방영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탄다.


1990년대 초에 림프종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1995년, 겨우 50을 갓 넘긴 나이로 사망하였다.


동영상으로 배워보자. 산에 눈 덮는 법.

로스만의 특징으로 Wet on Wet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있다. 일반 유화가 먼저 칠한 층의 유화물감이 다 마른 뒤 다음 층을 칠하는 것과는 달리, 마르지 않은 상태의 캔버스에 물감을 그대로 덧칠해 나아가며, 정교한 디테일보다는 붓이나 나이프에서 나오는 우연을 이용하여 복잡한 텍스쳐를 단숨에 완성하는 기술이다. 말은 쉽지 기법과 밥 로스의 그림 스타일이 합쳐진 형태를 쉽게 말하자면, 항상 비슷하지만 그릴 때마다 달라지는 그림.

이 때문에 정통파 유화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발소 그림(이발소에 걸려있는 촌스러운 그림)'이라며 까기도 한다. 사실 로스의 그림이 전통적인 유화에 비해 색채에 깊이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로스의 그림 스타일은 길거리 화가들과도 흡사하다. 그러나 취미로 배우는 정도라면 누구든지 1~2년 정도 배워서 따라할 수 있는, 전통적인 유화에 비하여 쉽고 간단한 기법이라는 것은 큰 장점이다. 로스가 이런 화법을 가지게 된 이유 자체가 시간은 없는데 그림은 빨리 그리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도리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어울리는 페인팅 방법이다. 애초 밥 로스가 추구한 방향이 이러한 면이 두드러지고,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기법 등을 소개하는 것 역시 이러한 현대인의 취미생활을 위한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까는 정통파 유화를 배운 사람이라면 일종의 부심 같은 것일 뿐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7] 밥 로스 본인이 자신의 작품을 예술품인양 떠벌리고 다닌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정통파 유화 역시 대상을 베낄 뿐, 현대미술의 주류에 비하면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는 예술의 기조를 무시하는 틀린 말이듯, 애초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대중 미술가인 밥 로스를 그렇게 까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리석만이 석재가 아니듯,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의 취미를 위한 대중 미술 역시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영역이다. 실제로 저 시기, 국내를 포함해 그로 인해 미술계에 관심을 가지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한 이들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 탓으로 대중적인 명성에 비해 예술계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하는 편. 저평가 이유들 중 하나는 로스가 자신이 직접 개발한 유화물감(?)이나 붓 같은 것도 판매하는 등 예술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까기 위한 끼워 맞추기식 이유일 뿐으로, 정작 로스는 방송 출연료를 다 PBS에 기부했고 주 수입원은 책과 비디오 판매였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화가는 무슨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하는가?  그런 식이라면 현대 미술가들이야 말로 캔버스에 점 몇 개 찍고 붓 몇 번 턴 다음에, 그림 하나에 몇 백만 달러씩 받는 게 되어 버린다. 실제로 화가들은 예로부터 유명 화가부터 길거리 화가까지 그림을 팔아 돈을 벌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이들은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사줄 고객을 확보하기도 했고, 그 외에 화법 강의를 하거나 제자를 받거나 자신만의 화구를 개발해서 팔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는 현대의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수행해왔다. 자신의 그림으로 돈을 벌지 않은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다. 애초 소위 미술가라면 미술로 돈을 벌지 그럼 무엇으로 돈을 버는가? 이런 비난은 결국 로스는 예술적이지 않고 별로 대단치도 않은 기법에, 정통파 유화를 배운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보다 못한 그림으로 대중의 인기와 고평가를 받는 것이 고깝다고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로스는 그에 비해 예술적으로는 저평가되는 자신의 그림을 고평가받는 그림처럼 비싸게 판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처럼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고 돈을 받았을 뿐이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완성도보다는 자신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밥 로스의 사후 밥 로스의 그림 기법 자체는 수준이 높거나 진지하게 인정받는 기법이 아니라 일반인이 쉽게 배워서 그릴 수 있는 취미로 주로 거론되는 추세이고, 실제로 밥 로스 본인도 그런 목적[10]을 두고 만든 기법이기 때문에 수준이 높지 못하다고 비난한다는 것은 논지가 어긋나는 것이다.

여기를 붓으로 칠하고 저기를 나이프로 문지르고 하더니, 순식간에 쨘하고 풍경화가 나타나는 진풍경이 어린 마음에 신기한 광경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다 크고 봐도 신기하다. 로스가 대중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것 중 하나가, 그림은 형태를 정하고 하나하나 디테일을 정해가면서 그려 나아가는 것이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깬 것도 한몫 한다. 이미 그린 수풀이 붓으로 몇 번 칠하니 호수가 된다든지 하는 모습은, 그때그때 마음가는대로 그려 나아가는 것이 낭만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데다, 유화를 배우지 않은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신기할 수밖에 없다.




로스가 자주, 잘 그리는 풍경은 로스의 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알래스카에 있을 법 한 풍경"들이다. 특히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풀밭과 나무가 있으며, 그 사이로 물이 흐르거나 호수가 있는 식의 풍경은 거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 정도. 그 외에도 흰 구름이 있는 파란 하늘이라든가 오로라도 잘 그려낸다.반면 해변의 파도나 황량한 풍경은 잘 그리지 못하며, 도시 풍경은 아주 못 그린다고 한다. (애초에 그린 적이 거의 없기도 하다.) 또한 인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확히는 딱 한번 지나가듯 그린 적이 있다.

밥 로스는 한때 1970년대 초반부터 1982년까지 《유화의 마법(The Magic of Oil Painting)》이라는 이름으로 TV 프로그램 시리즈를 만들고 있던 윌리엄 알렉산더의 제자였다. 알렉산더는 그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 자신의 미술도구 사업인 알렉산더 아트와 자신의 미술수업을 홍보하기 위해, 자신의 "알라 프리마" 기법(속칭 "Wet on Wet")을 선보였다. 이후 로스는 아예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기도 하며, 로스의 프로가 수많은 PBS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의 2번째 시즌을 시작하던 1984년 1월 무렵, 로스는 자신을 옛 제자로서 홍보해준 알렉산더에게 쇼를 헌정하면서, "전 저의 위대한 붓을 대단한 사람에게 건네줬죠. 그가 바로 밥 로스입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허나 1987년, 로스는 알렉산더 아트의 사장인 시드 너드슨(Sid Knudson)에게 실망하게 된다. 본래 그들은 밥 로스의 당시 거처였던 켄터키 주로 보내진 알렉산더 아트의 판매에 한해서는 로열티를 로스에게 주기로 동의한 상태였으며, 로스의 아내인 제인이 여행 겸 강의를 하러 간 남편 대신 주문을 처리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느 날, 제인은 로스에게 전화하여 주문의 상당량이 없어졌다고 말했고, 급기야 점차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진다. 로스는 시드 커드슨에게 전화하여 원인을 물었지만, 뉴욕에 사는 시드의 형제가 주문의 일부를 강탈했음이 밝혀진다. 이에 분개한 로스는 애닛 코워스키(Annette Kowaski)의 모든 주문을 처리한 뒤, 그를 기반으로 밥 로스 Inc.를 세운다. 밥 로스 Inc.가 연간 15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하자, 알렉산더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자신의 옛 제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면서, "그는 날 배신했다. 난 'Wet on Wet(알라 프리마 기법)'을 발명했다. 내가 녀석을 가르쳤고, 녀석은 날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더욱 성가신 건 녀석이 날 배신한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나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알겠지만, "알라 프리마" 기법은 인상파 때부터 시작된 방법이기 때문에, 발명은 턱도 없는 소리고 발전시켰다는 말이 들어맞다. 그렇다고 쳐도 초보자가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쉬운 입문법을 제공하면서, 연구 끝에 새로운 물감이나 기법을 사용하는 등, 알렉산더보다 로스를 더 높이 치는 여론이 많다.

영어가 된다면 오스틴 클리언(Austin Kleon)의 리뷰 (http://tumblr.austinkleon.com/post/28263827800) 도 참고해보자. 밥 로스와 빌 알렉산더가 각각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 리뷰어는 "알렉산더는 열정적이고 '현란한 붓놀림'을 보여준 대신, 로스는 친근한 히피 스타일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알렉산더는 유럽인이고, 로스는 미국인이었다"라면서 애초에 두 사람의 스타일이 다르다고 평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에, "하지만 아마도 중요한 사실은,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은 미술(에 관한 지식)을 정말로 많이 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로스와 PBS 제작진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하여 로스의 접근성을 높게 샀다. 또한 해당 리뷰에 링크된 기사("The Undying Magic of Bob Ross's Happy Little Trees(밥 로스의 행복한 작은 나무의 죽지 않는 마법)")를 보면 "그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미술로 이끌었으며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했다."면서 로스의 파급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리뷰의 마지막에 있는 말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이다.(It ain't what you paint, it's how you paint it.)" 하지만 사람들의 감평은 '밥 로스 판정승'인 듯.


"최근에 백화점에서 시연회를 열었을 때 말이죠, 어떤 분께서 저를 찾아와 "밥, 저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색맹이거든요. 회색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라고 하셨죠. 그래서 오늘은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회색톤만으로 그려보겠습니다.
The Joy of Painting, S2E04 "Shades Of Grey"

영미권에서는 프레드 로저스(1928~2003) 와 착한 방송인으로 거론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지존이라는 인식과는 정반대로 듣기 편한 목소리와 출연금을 받지 않고 출연한 등의 일화를 거론하며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었다고 칭찬하는 분위기이다. 화가이기 전에는 공군 부사관이었지만 본인 스스로 남에게 소리지르는 것이 싫어서 나왔다고 말한 바 있다. 2012년 이후에 ASMR 관련 컨텐츠가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면서 그의 목소리는 불면증 치료제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송에 출연한 때는 이미 지병인 간암에 걸렸다. 그런 상태에서 그토록 행복한 표정과 순한 인상으로 행복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한거 자체가 더 굉장하다는 의견도 많다. 진정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외에도 "하느님이 알래스카를 만드셨을 때는 분명 행복했을 겁니다."라든가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죠.", (더빙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Happy little trees" 시리즈 등의 명대사를 남겼다. 붓을 시너로 씻은 후에는 웃으면서 "Beat the devil out of it"("도깨비 도망가게 두드리죠" 또는 "부정을 털기 위해서")라 하면서 시너를 털기도 하였다.


붓 청소 컴필레이션. Shake it off. 투다다다당~

캔버스 다리에 시너로 씻은 붓을 두들기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각 시즌을 봐도 로스가 그림 그리는 것보다 오히려 붓 두들기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보다 (붓을) 두들기고 나면 매우 흐뭇해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인도 두들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스태프들은 오히려 시너가 튀어서 청소해야 한다며 싫어했다고 회고했다.

DVD 시즌25화(!?)에 보면 붓이 아닌 총같이 생긴 물건으로 나무 가지를 그리는 장면도 나온다. 

EBS판의 더빙 성우는 김세한이 담당했다. 그밖에 환경TV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5편 정도만 새로 더빙해서 방송한 게 있다. 이쪽은 2015년 현재까지 틀던 거 또 틀고 틀고 식으로 우려먹고 있는데(...) 직원 말로는 편성 문제로 편성표와 다르게 방송이 안 나가자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1995년에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로스의 유지(遺志)는 아들 스티브 로스(Steve Ross)가 이어가는 중. 아직도 가끔 아버지의 미공개 유작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옛날에는 몇 점 팔기도 했던 모양이나 나중에는 보관을 위해 판매는 하지 않는 모양.

재미있는 것은, EBS에서 《그림을 그립시다》 방송을 시작한 것이 사망한 해인 1995년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고인의 얼굴과 "참 쉽죠?"를 보며 코흘리개 시절의 꿈을 키워갔다는 뜻이다 적어도 본인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죽고 나서도 그림의 보급에 기여한 셈이니 좋아하지 않았을까. 단, 부산/경남 지방의 경우, 80년대 후반부터 NHK BS-1, 2를 타 지방보다 쉽게 수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90년대 초반의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원본을 보았을 수 있다. 실제로 경남 지방의 그림 덕후들 중 일부는, 나중에 EBS 더빙판의 목소리가 PBS 원판보다 너무 젊어서 적응이 어려웠다는 증언도 있다.

실루엣으로 만든 작품

담뱃갑 경고 그림 논란

빈병 속에 그린 그림

유라가 그린 그림

그림같은 사진들, 마이크 테일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