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만든 암살용 방사능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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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만든 암살용 방사능 홍차


2017. 5. 17.

러시아에서 만든 암살...을 빙자한 공공연한 숙청을 위해 만든 방사능 물질이 함유된 홍차.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음독암살 수단이며,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코렁탕과 달리 이쪽은 실제로 존재가 확인된 물건이다. 현대 러시아판 사약이라 할 수 있다.

전직 러시아 비밀경찰이었던 알렉산드르 발테로비치 리트비넨코(Alexander Litvinenko)는 영국으로 망명한 이후 푸틴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2권의 책도 집필하는 등 왕성한 반정부활동을 하고 있었다. 2006년 11월 1일 그는 FSB 동료였던 안드레이 루고보이, 옛 KGB 요원 출신 드미트리 콥툰을 만났고 이 두 명을 만난 후 심한 복부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급속하게 상태가 악화되어 2주만에 숨지고 말았다. 그가 왜 FSB 요원의 접근을 허용했는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리트비넨코를 죽인 그 중독 물질의 정체였는데, 리트비넨코가 죽기 직전 의문의 방사성 물질이 소변에서 발견되었고 사건을 수사하던 런던 경찰청이 자택에서 그의 소변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한 방사성 물질이 남아있는 찻잔을 발견하였다. 이를 토대로 리트비넨코가 방사성 물질을 이용해 암살당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발견된 방사능 물질은 폴로늄 210이다. 그런데 이게 자연적으로 굉장히 희귀한 원소다! 자연적으로는 '모은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드물며 인공적으로 양성자 가속기에서 비스무트 209를 중성자와 충돌시켜 만들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해도 연간 생산량 100g 밖에 되지 않는 매우 희귀한 물질이다.

즉, 이 물질은 민간인이 설령 재벌이라고 해도 절대로 구할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크고 아름다운 가격의 플로늄을 리트비넨코를 암살하는 데에 사용할 정도로 재정 규모가 뒷받침 되어있고 뒷조사에 나서더라도 목이 붙을 만하며 리트비넨코와 매우 원한 관계가 있는 러시아 연방정부의 어느 높으신 분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단, 이렇게 범인이 뻔히 보이는 짓을 왜 일부러 했느냐는 것이 의문인데,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푸틴이 반체제 인사들에게 보내는 직접적인 경고성 메시지라는 것. 반대의견으로 푸틴이 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또다른 힘있는 사람의 음모 라는 음모론(영국이 그래놓고 러시아에게 덮어씌웠다든지 등...)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단 죽기 직전에 만났던 루고보이와 콥툰 두명이 푸틴의 지시를 받고 암살을 했다는 의혹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다. 


일단 런던 경찰청은 사건을 수사하여 폴로늄 210을 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한 용의자 몇몇을 추려내긴 하였으나 전부 다 러시아에 체류중인 러시아인들이었다. 이에 런던 경찰청은 러시아측에 해당 용의자들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러시아 측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신병 인도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렇다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기소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사건은 범인을 찾지 못해 수사가 중단되었으나 재료의 특수성이나 리트비넨코와 러시아 정부 간의 불편한 관계 등을 보면 심적으로는 누가 어떻게 아무리 봐도 러시아 정부가 벌인 일로 보는 게 거의 100% 맞고, 따라서 진실이 어찌되었건 이 사건 이후 '방사능 홍차'는 러시아와 푸틴의 야만적인 인권 탄압과 독재를 비꼬는 단어가 되었다. 

한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암살 사건으로 인해 '폴로늄'이란 단어가 널리 퍼지면서 영국의 폴란드 요리 전문점 '폴로늄 레스토랑'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둘 다 어원이 똑같이 '폴란드'라는 것과 폴로늄의 발견자가 폴란드 출신의 퀴리 부인이라는 것 외에는 별 상관은 없고 그냥 폴란드 음식점이니까 폴로늄 레스토랑이지만, 하여튼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영국 고등법원에서 이 암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2015년 1월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공청회에서 암살 용의자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리트비넨코가 죽기 직전 만난 루고보이와 콥툰이 묵었던 호텔에서 폴로늄 210이 발견됐고,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 뿌려 놓은 빵 조각처럼 두 명이 이동했던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두 명을 포함해 리트비넨코 일행이 앉았던 테이블에서는 치사량의 두 배가 넘는 방사능이 측정되었다. 차 주전자, 식기세척기, 다른 식기들은 물론 사용했던 공중 화장실과 그들이 이용한 대중교통 수단, 그리고 그 날 카페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심지어 접촉한 모든 사람들까지 전부 피폭되었다. 링크. 영국 정보 당국은 두 사람이 앉았던 비행기 좌석까지 수색하여 폴로늄의 흔적을 발견했고, 익명을 요구한 콥툰의 지인은 "콥툰이 매우 비싼 독극물을 갖고 있고, 그걸 음식물에 탈 요리사를 구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영국 측의 보고서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독살 사건에 승인했을 것이라 나와있다. 물론 러시아 측에서는 영국이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조사를 했다고 반박했다.


폴로늄의 방사성을 제외하고도 그 자체의 독성은 매우 흉악하여 탈륨처럼 희생자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지만 독성은 탈륨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의 몸은 납이나 수은같은 중금속들에는 조금이나마 내성을 가지고 있지만, 플루토늄이나 우라늄 같은 방사능 원소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방사능 원소가 1000만 분의 1그램만 체내에 들어와도 DNA정보가 훼손될 수 있으며, 100분의 1그램만 체내에 들어와도 1~2주 내에 죽는다..

게다가 체내에 들어갔을 경우 폴로늄 210이 뿜어내는 알파선도 문제이다. 알파선은 기본적으로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헬륨 원자핵의 방출이며 전자 방출인 베타선이나 전자기파인 감마선과 달리 입자가 크기 때문에 투과력이 약해 인체에 해를 끼치기가 힘들다. 감마선이 수십 cm 단위의 납을 뚫는데 비해 알파선은 종이 한 장에도 막히는 수준이라 피부를 뚫을 수 없다. 대신 입자가 큰만큼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다른 둘보다 크기 때문에 일단 어떻게 인체 내에만 들어가면 인체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커서 일단 투과만 되면 암세포로 변질되는 수준을 넘어서 그냥 주위 세포가 파괴된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다른 독극물과의 큰 차이점은, 독극물은 화학적으로 신체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에 반해 방사성 물질은 물리적으로 우리 몸의 세포들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일어나는 현상으로는 세포 전체가 파괴된 '괴사', 상대적으로 물리적 충격에 강하게 설계되었음에도 그 파급효과가 발암급인 DNA 등 부속 부품들이 파괴되면 발생하는 각종 '발암' 등이 있다. 다시 말해 독극물은 최소 화학적인 처리로 사람을 죽이므로 늦지만 않는다면 해독을 할 수 있지만 방사능은 이미 몸 속에 들어간 시점에서 말 그대로 "몸 속에서 강렬한 핵폭발"을 하는 것과 같으므로 손 쓸 도리가 없다. 전신 세포를 갈아치우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삼키는 순간 아웃.


그 때문에 리트비넨코의 시신은 앞으로 수십년간 관을 열 수 없도록 단단히 밀봉되었다고 한다. 이 역시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 볼 수 있는데 자기만 죽는 거면 두렵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변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된다면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신을 관리담당하는 영국 측에서도 수십년간 시신을 관리하면서 이 사실을 계속 상기해야만 하니 영국측에도 수십년동안 씻기 어려운 메세지가 된 셈이다. 즉 굉장히 악질적인 행위. 

일단 인간은 청산가리로도 쉽게 죽는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단순히 암살만이 목적이라면 훨씬 싸게 먹히는 청산가리 정도로도 충분한데, 폴로늄은 재래식 독극물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아니, 그 전에 위에서 말한대로 1년에 100g도 안나오는 초희귀원소라서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사람을 죽이는 데 이런 걸 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명 되지도 않을테니 은닉도 불가능.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내가 죽였다'고 광고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이런 들통날 게 뻔한 짓을 할 정도라면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을 터. 세계적 강대국인 러시아를 꽉 쥐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정도의 영향력과 입지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하다못해 북한조차도 대놓고 총으로 쏴죽이거나 독침을 쓰지, 방사능 홍차 따위는 이용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폴로늄을 사용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암살이 아니라 공개처형이다. 정적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쓰는게 가장 적합하다. 돈은 많이 들어도 사람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으며, 자신의 배짱을 만천하에 인증할 수 있고, '나는 너희를 죽일 수 있어도 너희는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선언까지 덤으로 날릴 수 있는, 지극히 정치적인 암살법이다.


거기에 일반적인 독성 물질은 해독법이 널리 퍼져있어서 잘 대처할 경우 대상자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으나, 폴로늄은 방사능은 검출하는 것부터가 엄청나게 어렵기 때문에 먹이는데 성공만 한다면 사망 확정이다. 게다가 고통도 쩔어주고 오래 가기 때문에 대상자를 죽을 때까지 고통받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위에서도 서술되어있지만 이 독극물을 마시고 죽으면 그 시체마저도 방사능에 절여지기 때문에 곱게 땅에 묻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으며, 방사능 물질이 최대한 분해될 떄까지 밀폐시키고 그 다음에도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다 못해 부관참시까지 예약하는 꼴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