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아베 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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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고보)


2014. 4. 12.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가 주연을 했던 <페이스 오프>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가? 꽤 오래전에 제작된 영화인데, 두 주인공의 얼굴이 뒤바뀐 채 벌어지는 액션 영화였다. 경찰이었던 존 트라볼타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을 이식하여 그의 삶을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이 원래 형사였는지, 아니면 현재의 범죄자였는지 혼동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데, 실제 이 영화를 제작한 오우삼 감독이 <페이스 오프>를 제작하면서 바로 아베 고보의 <타인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아서 제작하였다고 밝혔다고 한다. 우리에게 실종 3부작(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아베 고보의 <타인의 얼굴>은 발표 순서만 놓고 본다면 실종 3부작의 두번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물론 연결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순서에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모래의 여자-민음사>, <불타버린 지도-문학동네>를 이전에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내가 읽은 아베 고보의 실종 3부작 마지막 책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나'라는 존재는 나의 입장에서 자의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입장에서는 또다른 타인으로 볼 수 있다. 나 자신이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의 타자성을 주제로 하여 쓴 작품이 바로 <타인의 얼굴>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와 타인을 하나의 인물인 주인공에서 어떻게 동시에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가면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액체 질소의 노출로 인하여 심한 화상을 입은 본래의 나의 존재와 처음에는 이러한 화상을 감추려고 제작한 가면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타자성을 대표하는 소재로 등장을 하고 있다. 화상을 입은 얼굴과 그 화상을 입은 얼굴을 감추기 위하여 가면을 쓰는 나라는 존재는 분명 하나의 존재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타인이라는 속성을 모두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독특한 설정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타인의 얼굴>이다.


화상으로 인하여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붕대를 감고 살아가는 주인공, 그는 자신의 흉한 얼굴을 감추기 위하여 감쪽같이 가면을 제작하고, 이러한 가면을 통하여 새로운 나의 모습을 생성하고, 그의 아내를 유혹하게 된다. 실제로 아내는 가면을 쓴 주인공의 유혹을 쉽사리 받아들이고, 이에 분노한 주인공은 3권의 노트(검은색, 흰색, 회색)에 자신의 가면 제작 과정에서부터 아내를 유혹한 과정까지 기록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노트가 있는 아지트의 지도를 건네주면서 아내를 보내어 그 노트를 읽고,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언급하였지만, 분명 흥미로운 소재를 차용하고 있다.(이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60년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기발한 내용도 기억에 남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처음 주인공은 가면의 제작 의도를 밝히게 된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화상으로 얼굴을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창피나 부끄러움이 아니라 바로 얼굴이 타인과의 삶에서 소통의 통로로 인식을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통로 회복의 대안으로 가면을 제작하고 있음을 밝히게 된다. 화상을 입기 전까지에는 얼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였으나, 화상 이후에 붕대로 소통의 통로(얼굴)를 가리고 다니면서 그는 타인으로부터 철저히 소외가 된다. 주인공은 얼굴이야말로 타인과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유일한 소통의 수단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화상으로 인한 창피나 부끄러움이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로 가면을 제작하게 된다. 철저한 준비 끝에 가면을 제작한 주인공은 가면의 착용으로 인하여 더이상 타인이 자신을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가면은 단순히 타인과의 소통이 아니라 바로 타인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을 대신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였으나, 가면을 착용하면 이전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진 인물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주인공은 가면을 자신의 타자성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된다. 처음 아지트를 구할 때, 가면을 착용한 상태에서 주인공의 동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에서 이미 가면은 주인공 자신의 대리자가 아니라 자신과는 전혀 다른 타인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가면을 착용하면서 주인공은 이러한 가면의 역할의 변화(소통의 수단 -> 타자성의 상징)에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도 평소 자신이었다면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악마나 방화마와 같은 사회 범죄자의 행동을 떠올리다가 인간의 근본적인 성욕을 기반으로 인하여 성범죄를 시도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말이다.


왜 주인공은 아내를 대상으로 그러한 시험을 해보고 싶었을까? 처음 가면을 쓰고 대중 교통 수단에서의 낯선 여자와의 신체 접촉이라든지 다소 환상적인 느낌의 바에서 만난 여자가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바에서 낯선 여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거짓이 훌륭한 진실로 통하고, 진실이 거짓으로 통하는 세상 속에서는 자신의 실험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자신이 가장 믿고 있던 아내를 통하여 자신의 시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가면을 쓴 채, 아내를 유혹하는 주인공. 내심 아내가 거부하리라 생각을 하였지만, 아내는 가면의 유혹에 바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지금까지의 행동을 노트로 남겨서 아내로 하여금 읽게 하고자 하는 동기였다. 그러나, 집에서 노트를 읽고 죄책감으로 집에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지만, 아내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지트에 가보지만, 아내가 남긴 글을 읽고 허무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왜 그랬을까? 솔직히 이 책이 추리 소설은 아니기에 밝혀도 상관이 없겠지만, 아내의 글은 따로 언급을 생략을 한다. 주인공이 허무함과 분노를 느낀 것은 아마도 자신만이 가면을 통하여 그동안 깨닫고 있었다고 생각한 타자성이 하나의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하여 아지트로 돌아오는 길에 관리자의 딸이 가면을 쓴 주인공이 붕대를 하고 있던 주인공임을 알아보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주인공의 타자성에 대한 인식은 생각하기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아내가 주인공에게 돌아가지 않은 이유도 주인공의 일방적인 추측(타자성에 대한)에 실망하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데군데 가면을 제작하는 독특한 설정이 이야기거리로도 흥미를 끌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하여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으로 접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얼굴이라는 구체적인 소재가 화상에 의하여 상실이 되면서부터 제기되는 이러한 관계(나와 타자의)에 대한 혼란을 처음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자신을 통하여 등장하는 타자성, 그리고, 상대방의 타자성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가면의 제작으로 인하여 자신의 정체성 상실 또는 타자에 대한 왜곡 내지는 복제를 통한 무질서한 사회에 대한 상상의 모습까지 묘사하면서 개인의 심리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부분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평범한 삶 속에서의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겪게 되는 심리적인 위태로움을 시작으로 사회를 거대한 감옥으로 등장시키는 장면까지,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베 고보의 실종 시리즈의 느낌을 통하여 좀더 깊은 생각의 시간을 이 책을 통하여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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