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몰락한 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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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몰락한 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2014. 4. 7.

다소 독특한 제목의 <곰, 몰락한 왕의 역사>라는 신간이 눈에 띄었다. 흔히 우리는 동물의 왕이라고 하면 사자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 일대일로 싸운다면 사자가 동물의 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코끼리, 호랑이, 곰 등이 현실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맹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는 어느덧 자연스럽게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고 각인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어떻게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동물의 왕의 상징성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자 이전에 서유럽에서 강력함의 상징인 곰을 주인공으로 하여 서유럽의 역사적인 단면을 분석하며 서술하고 있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중세 유럽의 역사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하여 서유럽의 중세의 단면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제1부. 숭배 받는 곰 - 구석기시대에서 봉건시대까지>, <제2부. 싸우는 곰 - 카롤루스대제에서 루이 성왕까지 >, <제3부. 폐위당한 곰 - 중세 말에서 현재까지>로 구성이 되어 있다. 각 구성 목차만 읽어 보아도 유럽에서 인식되는 곰의 상징성에 대한 흥망성쇠의 과정을 다루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봉건시대까지의 기간을 따져보면 2부와 3부에 비하여 시간적으로 상당히 긴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이 유물로 보이는 동굴곰의 행적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곰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동굴 안쪽에서 쌓여진 채로 발굴되는 동굴곰의 흔적을 놓고, 아직까지 당시의 구석기인들이 곰을 숭배한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단순한 사냥의 결과물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저자는 곰을 숭배하였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부분을 세세하게 다룰 필요가 없고, 좀더 확실한 사료가 있는 시대의 자료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과 곰의 관계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선 신화를 통하여 곰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스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아르-'라는 것이 곰을 의미하는 접두어로 설명을 하면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 도시 및 왕국의 지명 등에 이러한 접두어가 들어 있음을 통하여 곰은 당시 인간으로부터 숭배를 받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당시의 상황에서 유럽의 숲에서 거주하던 곰은 인간이 사냥을 하는 대상인 동시에 맹수의 차원을 넘어선 경외의 대상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세의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여 곰은 이제 왕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특히 아더왕도 역시 곰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강력한 왕으로 묘사가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기사 계급도 역시 곰과의 결투를 통하여 그 가치를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각 부족들의 풍습을 통하여 곰의 상징성은 용감함과 동시에 고귀함을 뜻하고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략 13세기를 전후로 하여 곰의 위치를 사자가 차지한 것일까? 이 부분은 2부와 3부를 통하여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하여 저자의 해석이 서술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독교 세력에 의한 곰의 상징성을 깍아 내리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왜 교황을 비롯한 교회 세력이 곰의 상징성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가? 앞서 말한대로 곰은 게르만족과 켈트족을 비롯한 서유럽의 대다수의 민족에게 오래전부터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세력은 포교를 위해서라도 바로 이러한 곰의 상징성을 끌어 내려야 그들 사이에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카톨릭으로 개종한 카롤루스 왕조에 의한 물리적인 제거 방법이었다. 당시 유럽의 숲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곰의 존재 자체를 아예 말살시키기 위하여 사냥을 통하여 곰의 개체수를 감소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제 이러한 사냥을 토대로 하여 쉽사리 볼 수 있었던 유럽의 곰들은 상당수 제거가 되어 사람들이 쉽게 접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거기에 기독교의 성인을 통하여 곰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리게 된다. 다수의 성인들이 곰을 꾸짖거나, 계도하는 내용을 전파하고, 또한 곰을 숭배하던 부족들이 11월(곰이 동면하기 직전)과 2월(곰이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달)에 만든 곰을 위한 축일을 모두 기독교 성인의 축일로 선정하여 점점 그들에게 곰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헌과 이미지, 설교를 동원하여 곰을 악마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시켜 13세기 부근에는 곰은 왕의 이미지가 아닌 악마의 이미지로 완전히 폐위되는 신세에 처해버린다.

 

이 시점에서 교회 세력은 곰을 대체할 동물을 선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자였다. 늑대, 독수리, 멧돼지와 같은 다수의 동물도 후보군이었으나, 유럽인에게 생소한 사자를 최종 후보로 낙점하여 새로운 상징물로 선정을 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내려오는 왕의 이미지로서 사자가 부각되는 계기가 된다. 다만,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사자라는 동물도 원래는 곰과 같이 성서를 통해 보더라도 호의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하여 '레오파르두스'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사자를 등장시켜, 우리가 떠올리는 사자와 대비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리하여 사자는 이전의 곰이 차지하고 있던 모든 권위의 상징을 획득하게 되고, 이 시기에 곰은 더욱더 미련하고 탐욕스러운 존재로 전락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도 역시 저자는 다수의 문헌과 사례를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는 곰과 사자의 세대 교체 과정이 결국 유럽의 교회의 역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교회 세력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는 부족들의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곰을 숭상하는 전통이 우세하였고, 교회 세력이 점차 성장하면서 이러한 곰의 숭배 현상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분량(400여 페이지에 가깝지만, 책의 마지막에 있던 문헌 참조와 설명을 제외하면 대략 300여 페이지가 된다.)을 놓고 보면 이러한 곰의 위치가 순식간에 반전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드라마틱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곰의 숭배를 깍아내리기 위한 작업이 교회 세력의 강화 시점이라고 본다면 수백년만에 뒤바뀐 곰의 처지가 너무나 야속했는지, 책의 말미에는 현재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곰인형이라든지 테디베어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곰의 존재를 부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곰의 상징이 교회 세력이 자리를 잡기 전의 무구한 전통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곰이라는 한정적인 소재를 다룬 이 책은 상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하려고 한 책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읽었던 <대포, 범선, 제국>, <시계와 문명>의 저자인  카를로 M. 치폴라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초반에는 곰의 상징성을 통하여 중세 유럽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 들었으나, 곰의 몰락 시점부터는 역사보다는 민속학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저자가 연구를 위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과 분석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찾다보니 어느덧 곰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교회 세력이 곰의 상징성을 격화시키는 원인도 짧게 교회 세력의 강화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도 간략히 설명되어 있어서 아쉽기도 하다. 카롤루스 왕조가 단순히 카톨릭으로 개종을 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교회의 정책을 그대로 실행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설명이 빈약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좀더 자세히 설명되었으면이라는 아쉬움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게 되었다.

 

중세 십자군의 활약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영국의 리처드 국왕이었다. 그의 별칭이 '사자왕'이었다는 것이 예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당시 유럽에서 생소한 동물이었던 사자를 기독교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리처드의 별칭이 되었는지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곰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중세 유럽의 역사, 문화, 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었고, 또한 동물을 소재로 하여 역사에 새롭게 접근한 책이기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책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책의 분량을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곰의 상징성 몰락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도 있었고, 다방면의 사례도 역시 중복된 부분으로 인하여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실제 곰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가지의 탐욕을 상징한다는 설명에서는 브레드 피트가 주연한 영황 '세븐'이 떠올랐고, 곰을 설명하기 위하여 루이 15세 치하의 프랑스의 늑대의 전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늑대의 후예들'이 떠올랐다.)

전체적으로 연구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었기 때문에 딱딱한 느낌도 지울 수 없으나, 곰이라는 소재 자체가 단순한 동물이면서도 생각보다 상징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중세 유럽의 한 부분으로 접근을 해서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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