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으로서는 유능했으나, 국방부장관직에서 한계가 드러난 김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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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서는 유능했으나, 국방부장관직에서 한계가 드러난 김관진


2017. 6. 1.

대한민국의 前 군인, 예비역 대장. 前 국방장관,국가안보실장 김관진.

1949년 8월 27일생. 전북 임실군 출신으로 전주북중과 서울고등학교를 졸업(제20회)하고, 1972년 육군사관학교 제28기로 임관하여 합동참모의장까지 지냈다. 2008년에 예비역 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하여 전임 김태영 장관이 국방부 장관직을 사임하자, 26일에 그 후임 장관으로 내정되었고 내달 4일 정식으로 대한민국 제43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김관진 장관 취임사 전문 그리고 2014년 6월 1일, 전임인 김장수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보자로 내정되었다. 국방장관직을 후임인 한민구 前 합참의장에게 이임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친 후 서독 육사에 가서 졸업까지 하고 왔다. 당시 그가 수학했던 1969년 뮌헨의 서독 육사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처지의 후진국 출신 생도들이 유학 중이었고, 그 중 한달에 60달러($)로 생활해야 했던 김관진 생도는 졸업할 때까지 그럴듯한 식당에서 식사 한 번 못해봤다고 한다.

독일 육사가 학사 학위를 주지 않은 탓에 한동안 학력이 고졸로 처리되었다. 나중에 학력이 인정되었다.


197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주요 보직을 거쳤다. 또한 대대장을 제15보병사단 독수리연대에서 보냈으며 이후 여단장 시절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여단장을 했다. 예하 여단인 제 26기보여단(혜산진부대)의 여단장으로 있었다. 이때 수기사의 차상급부대인 제7기동군단의 군단장이 이현부 중장(육사 20기)이었는데, 그가 여단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헬기사고로 순직했다.

1999년 육군본부 전략기획참모부 처장에서 제35향토보병사단 사단장(소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여러 보직을 거치고 2002년 육군 기획관리참모부장에서 제2군단 군단장(중장)으로 진급했다. 또한 2003년 10월 1일에 열린 국군의 날 제55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았다.

2004년 5월, 이라크 파병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에 임명됐다. 상당히 중요한 보직이라 이때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꽤 높아졌다. 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선일씨 사건 당시 이라크 파병과 부대 경계 회의 등에 참여했었다. 10월 14일에는 국회 국방위원회에 가서 동해안에서 잠수함 추정 물체 출현 첩보에 대해 보고했다. 10월 28일에는 이라크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 근처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일체의 브리핑을 하지 않아 논란이 있었다. 한편, 10월 26일 벌어진 강원도 철원 전방부대 철책 절단 사건과 관련해 "전문가의 소행"이라는 UN군 보고서에 대해 "UN 조사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군의 보고가 더 정확하다"는 말을 했다.

2005년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원도 명예 도민으로 선정했다. 한편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방문을 다룬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에 저자로 참여했다. 또한 530GP 사건 이후 희생자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희생자의 모친이 "내 아들 살려내!"라고 하자 3분도 안 되어 자리를 떠나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의견이 둘로 나뉘었는데, "제3야전군 사령관이면 하루에도 엄청난 일정이 있으며, 저렇게 이병, 일병을 위해 장례식에 찾아오는 게 대단한 거다."라는 의견과 "최고 지휘자의 입장이면, 희생자의 부모들과 대면해 위로의 말을 건네는 지휘관 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2006년, 군 최고 서열인 합참의장에 내정됐다.


천안함 사건 이후 김태영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국방장관이 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군인사를 불신하며 여러 국방장관 후보자들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누군가 김관진을 추천하였고 그 와의 대면에서 몇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국방장관에 임명된다.

2011년 11월 10일 단행된 '후반기 장성 진급 및 보직 인사'는 청와대나 기무사의 영향력이 없었던, 김 장관이 전권을 행사한 인사라고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설령 진급 해당자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거나 심지어는 지금은 없어진 군내 사조직 하나회 출신일지라도(!)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대거 발탁한 보기 드문 인사였다는 평이다. 해당 인물들은 육사 36기 김현집과 최익봉으로 둘 다 동기중 1차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다른 조직도 아니고 불법적 권력찬탈과 헌정유린 세력으로 규정된 하나회 출신이 기용된만큼 반발에 부딪히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문제를 삼아도 할말이 없다.

2013년 3월 22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내정했던 후임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 예비역 대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자진 사퇴함으로서, 김관진 現 장관이 유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방부 장관이자 박근혜 정부의 첫 국방장관으로서 국방업무를 계속 총괄하게 되었다. 이에 뒷이야기가 좀 있는데, 골치아픈 일도 다 그만두니 유학 중인 딸이나 보려고 관사에서 짐 다 빼고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다가 덜컥 유임 결정이 내려졌다고... 말년이라고 무시하던 실무자들이 유임 후 굽신굽신하는 모습을 꼬집기도 했다.

2016년,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또한 국회질문에서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라는 대답을 하여 논란이 일었다.

2016년 박근혜 최순실 사건으로 국정이 혼란할 때 한일군사정보협정 가서명을 주도했다며, 한민구 국방장관과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포함한 세 사람은 신(新) 친일 3적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이 비난했다.


2017년 사드 배치와 관련, 트럼프가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설치 비용 10억 달러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논란이 일었는데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인 허버트 맥매스터와 대화한 후 설치 비용 부담은 미국이 하고 우린 토지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기존 협상을 재확인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허버트는 폭스뉴스 선데이와 인터뷰에서 김관진이 말한 한국측 주장이 사실이냐 묻자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게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재협상 전까진 기존 협상이 유효하다는 뜻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재협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발언을 하였다.


박근혜 탄핵 이후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조언자 역할을 해야 할 안보실장이 , 그것도 선출직도 아닌 탄핵된 박근혜가 임명한 직위임에도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를 주도하는 등 이와 관련되서 안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아예 사드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와 비용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관진 본인은 지난해 말 트럼프가 정부 인수 위원회 차원에서 우리정부에게 사드 배치 비용을 분담할 것을 이미 통보했다고 보도한 언론사한국일보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2017년 5월 14일 새벽 05시 27분, 북한이 평북 구성 일대에서 탄도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발사했다. 이런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 담당 부서 책임자인 김관진 실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했고, 이에 대해서 대통령은 책임자인 안보실장이 직접 전화를 걸 것을 지시해 안보실장이 직접 다시 전화로 보고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 정부에는 어떤 식으로 보고가 됐는지가 여실히 보이는 일화라고 할 수 있겠다.

2017년 5월 17일 JTBC 보도에 따르면 김관진 실장이 있는 국가안보실은 새로운 정권에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안 보고를 받거나 자료를 넘겨 받은 적이 없다. 특히 북핵 문제나 사드 배치 등 중요한 안보 관련 사항에도 이전 정권과 미국의 협의 내용, 황교안 전 권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통화내용, 사드 비용에 관해 김관진 실장과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 사이에서 통화한 내용 등 아무것도 듣지 못해 다른 루트로 협의 내용을 파악했으며, 결국 5월 30일엔 사드 추가반입마저도 보고하지 않은 점이 밝혀지면서 최소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가장 높게는 그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김관진 실장까지 군수통권자인 대통령에게 반항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되었다. 대통령과 안보실장의 사이가 아무리 좋지 않아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의 최고통수권자이다. 그런데 최고통수권자에게 안보 관련 정보를 알지 못하고 안보실장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은폐하려한다면 국가의 안보에 큰 문제임은 당연하고, 군인의 커리어에도 흠이 갈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5월 30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개를 청와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비공개로 반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국방부는 안보실장을 통해 보고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에서는 국방부를 통해 사드 발사대와 관련된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반박하며 진실공방이 벌어지게 되자 당시 안보실장이었던 김관진 실장에게 화살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쌓아놨던 참군인 이미지가 박근혜 정권 말기 그리고 문재인 정부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추락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정유라의 증언에 의해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라는 주장이 나왔다. 

군인으로서는 유능했으나, 정무직을 맡게 되자 한계가 드러났다.

야전 주요 지휘관과 작전, 전략, 정책, 전력증강 분야 등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문무를 겸비한 군인이라는 평이다. 특히 군 재직 시 중간보고를 생략한 '원스톱 업무처리'를 강조하는 등 개혁성과 추진력을 겸비했고, 각종 의사결정 시 소신을 갖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합리적이면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준 바 있다. 주변에 대한 배려는 자상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외유내강형'으로 부하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강력히 추진하는 스타일이다. 중장이었던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 치밀한 이라크 파병 작전을 수립해 자이툰부대가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입성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군인 시절의 평가이다.

2010년 12월 장관 취임과 동시에 '행정·관료적 풍토를 타파, 강한 군대를 만들겠다'는 것을 목표로 군의 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여러 가지 개혁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김관진 장관에게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이는 진보 언론에서도 이번 인사에 만큼은 찬사를 보냈다고. 김 장관의 확고한 의지는 2010년 12월 연말 국군장병에게 보내는 '장관 지휘서신 제1호'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서신에서 그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 출전하면서 한 말인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를 인용하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들은 철저하게 응징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체질변화라고 볼 수 있는데, 장성급 인사의 단행이나 보고서 간소화는 모두 그와 같은 체질변화 달성을 위한 시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심지어는 장성의 상징이던 가죽 권총벨트와 지퍼식 전투화 등도 착용을 금지했다. 차량에 대한 성판 부착은 초기에는 전면 금지를 계획했으나 공적인 자리에서만은 허용으로 계획을 잡았다..... 
....는 것이 장관 재직 당시 국방부의 홍보 자료 내용이다.

위와 같은 참군인 이미지도 군부 내에서의, 혹은 군인으로서의 평가였을 뿐, 국방장관 재임기간이 길어져감에따라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관료로서는 영 아니올시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11년 6월초에는 군 비리, 횡령을 고발한 영관급 장교를 오히려 징계하려는 행동으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또한 국방개혁 307 계획에 대해서도 논란이 존재하며, 530GP에서 일어난 일명 김일병 총기난동 사건때는 3야전군사령관으로 지휘라인상에 위치했었다. 


정리하자면, 국방부 장관 재임기간 동안
  •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논란
  •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졌지만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승진까지 했으니... 특히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병영문화 개선등을 약속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은 해병대 특유의 폐쇄적인 군기문화 때문이지 모두 김관진 장관의 탓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긴 하였다만. 
문제는 이런 변명이 무색하게도 재임기간 중 두번째 총기난사 사건인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는 것. 심지어 김관진은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사건 직후 부대 내에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발언까지 하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22사단 사건 당시 이미 국가안보실장 자리에 내정되어 이취임을 앞두고 있던 탓에 책임논란이 유야무야해졌다.

이후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까지 발생했었음이 후임 한민구 장관 시기에 뒤늦게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 역시 김관진이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사건 발생 이후 자세한 정황까지 보고받았음에도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사건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결국 제2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이후의 병영문화 개선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셈. 게다가 22사단 사건이나 28사단 사건이나 각각의 해당 항목을 들여다 보면 알겠지만, 두 사건 모두 국방부의 대응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고 언론을 상대로 축소 은폐공작까지 벌였다는 의혹이 있었다. 심지어 김관진 본인은 논란이 될만한 발언까지 했었다.

이렇게 끊임없는 사고가 터져나가고 아무런 개선도 되지 않았음에도 그가 재임기간 중 사임을 하지 않고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에 나오듯이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며 군의 기강과 전투태세를 다잡고 개인적으로는 청렴하고 법을 준수하는 '군인다운 모습'을 어필하여 안보와 인성을 중요시하는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모 부대를 방문했을 때 어떤 중대장과 악수하면서, "긴장하지 마, 내가 그리 겁나냐?"라고 말한 장면이 찍힌 영상이 화제가 되며 참군인 이미지메이킹에 일조했다. 


...는 것은 군부의 주장이고, 그냥 관운이 매우 좋았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28사단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김관진이 이미 국가안보실장에 취임했는데,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어쩔수 없이 국방부 장관까지 겸직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때문에 국방장관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안보실장으로서 책임을 지기엔 이 사건 자체가 안보실장이 책임을 져야할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

한편, 이유로는 군 내외로 라인이 탄탄해서 파워 게임을 할 때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몇몇 언론에 따르면 국방부 내의 인사권은 김관진이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곧 유임되었고 또 국방 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였는데 이는 항상 자신이 믿는 사람만을 사용하는 박 대통령의 성향도 한 몫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긍적적인 면모를 찾자면... 재임 시절 선진병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동기생활관 제도를 통해 일이병들의 병영 난이도 해소에 일조하였다. 또한 전투복을 신형으로 개선하여 장병들의 전투력 향상에 기여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국가정책에 직간접적인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안보실장으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 애초에 김관진 본인부터가 군인 시절, 국방부 장관 시절에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인물로 유명한지라 외교적,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안보실장에 적합한지 의문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전형적인 군인이라는 것인데... 시작부터 대북 강경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인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었고, 결국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인선이라는 대재앙을 낳게되었다.


국가안보실장으로서의 김관진을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이다. 이 문제는 주한미군 THAAD 배치 논란/찬반론에서 보면 알겠지만, 허투루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다 동북아 정세, 나아가서는 전세계 국제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까다로운 문제를 외교적, 정치적 판단력이 낮은 김관진이 그냥 군인다운 마인드로 박근혜의 명령에 따라 덜컥 도입해버렸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주변에서는 사드를 두고 “사고는 김관진 실장이 치고, 수습은 한민구 장관이 한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결국 사고는 김관진, 박근혜가 쳤지만, 책임은 대한민국이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다음 정부에 인수인계를 해야 할 직책을 달고도 인수인계에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던데다가 최고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무시하는 초대형 사건을 터뜨리면서 국가안보실장 자리에 오를만한 인물이 아니었음이 입증되었다. 

급기야는 황교안 권한 대행 시절 사드 4기가 추가반입되었음에도 새정부에 아무런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고의적으로 이런 짓을 한 거라면 그냥 간첩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
일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존재했던 김관진 개인에 대한 숱한 의혹들이 다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안보실에서 새정부에 사드 관련 문서를 A4 용지 한장 전해준 적 없다거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거나, 록히드마틴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