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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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설'


2017. 5. 20.

원자설은 세계의 모든 물질은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
- 리처드 파인만, 모든 지식이 파괴된 인류에게 단 한 문장만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하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레우키포스에 의해서 등장하고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정립된 것이 현재의 원자론의 기원이 되었다.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은 에피쿠로스 학파에 의해 계승되었고, 당대에 4원소설을 지지하는 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로마 말에 학맥이 끊기게 되어 중세 때는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 중세 유럽에는 없었던 문헌이 근대 초입에 번역되어 가상디와 보일과 같은 학자에 의해 연구되었고, 당대에 어느정도 입지를 갖춘 4원소설과 다시 이론 경쟁을 하게 된다.


처음 원자설을 주장한 사람은 레우키포스였지만, 그런 주장이 등장하는 데에는 아낙사고라스의 영향이 컸다.

아낙사고라스는 아페이론을 아르케라고 보았던 아낙시메네스와 같이 세계를 무한정한 것으로부터 전개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밀레토스 학파의 입장을 완전히 공유하지는 않고 엠페도클레스와 같이 존재들의 섞이고 분리되는 것으로 인해 만물이 형성되거나 소멸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다만 엠페도클레스와 그의 주장의 차이점이 있었는데, 엠페도클레스는 어떠한 것들이 섞이고 분리하는 것 모두 복합물의 생성 원인이자 소멸 원인으로 보았다. 반면 아낙사고라스는 오로지 생성은 섞임으로 인해, 소멸은 분리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아낙사고라스의 자연철학은 엠페도클레스와의 또 다른 차이점이 존재한다. 엠페도클레스는 각각의 실체는 4원소의 결합으로 형성되며, 해체되면 4원소로 다시 돌아간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는 이러한 엠페도클레스의 입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레우키포스가 원자론을 정립하고 데모크리토스가 발전시킨다. 이때 인과론이 원자론 학파의 주요 이념으로 편입된다.

기하학적 원자설로 원자설과 4원소설 사이를 절충하려는 플라톤시도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스토아 학파의 4원소설이 완성되면서 이후의 4원소설은 이것을 좀 더 보충한 것에 불과했다.

그 후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이 보일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보일의 법칙이란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부피와 기체의 압력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기체의 부피가 두 배 올라갈 때마다 압력은 2분의 1이 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그의 조수 로버트 후크와 공기 펌프를 만들어 대기 입자의 존재를 공기의 탄력으로 설명했다. 이것을 계기로 보일의 법칙이 나온것이다. 그 후 계속 그는 불과 공기, 즉 연소와 산소의 연구를 하여 불이 입자로 되어있다고 했다.

이후 19세기 초, 존 돌턴이 질량 보존 법칙과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설을 제시하고, 가설을 뒷받침하는 배수 비례의 법칙을 연이어 제시한다. 돌턴이 제시한 원자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 물질은 원자라고 부르는 더 분할할 수 없는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 같은 원소의 원자들은 동일하며, 같은 성질들을 갖고 있다.
  • 화합물은 다른 원소들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은 정수비로 결합되어 있다.
  • 화학 반응은 단순히 원자들이 자리를 옮겨서 다른 조합을 이루는 것이다.
  • 원자는 새로 생성되거나 사라지거나 다른 원자로 바뀔 수 없다.


다만 이후 기체 반응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이 학설에 모순이 생기고, 이를 아보가드로가 분자론을 발표하면서 수정한다. 정작 돌턴은 아보가드로의 분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당시 돌턴이 학계에서 확고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아보가드로의 분자론은 아보가드로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였다.

본래 돌턴 등의 원자설은 화학반응과 화합물의 조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고전적인 물리학과는 무관하였으나, 19세기 열역학의 발전으로 기체의 물리적 성질을 설명할 필요가 생겨, 클라우지우스 등이 기체분자운동론의 형태로 (화학의 원자론과는 별개로) 원자론을 도입하였다. 이후 루트비히 볼츠만의 업적을 통해 고전 통계역학이 완성되었으나, 그 기반이 된 원자의 존재 자체는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입증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물리학에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19세기의 중요한 독일 물리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하는 볼츠만을 공개적으로 공박하며 원자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방사선, 동위원소, E=MC^2이 상징하는 질량-에너지 동등성 등 돌턴의 원자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등장하였다.


이후 막스 플랑크의 광양자가설 등 새로운 양자역학이 등장하며 볼츠만의 통계역학적 방법론이 대세를 타자 이런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고,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한 후 핵을 이루는 양성자를 명명하고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하면서 원자의 존재는 물리학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고 그 모델도 점차 수정된다. 전자의 파동방정식을 풀어서 나온 오비탈로 원자의 화학적 성질과 원자간 화학결합을 설명하는 물리화학이 등장한 이래, 화학에서의 원자설과 물리학에서의 원자설은 완전히 합치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