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연' 주인공 친일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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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연' 주인공 친일파 논란


2017. 7. 17.


청연 靑燕. 2005년에 발표된 일제강점기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다룬 한국 영화. 감독은 윤종찬. 시나리오는 이인화가 썼다.

주연인 박경원 역은 故 장진영이, 상대역인 한지혁 역은 김주혁이 맡았고, 일본인 배우 나카무라 토오루와 유민, 그리고 한지민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논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상의, 총 120억원이나 제작비를 들인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총관객은 고작 50만에 불과, 흥행은 쫄딱 망했어요. 영화 자체는 조금 지루할 지언정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비슷한 시기 경쟁작이 나니아 연대기 - 사자의 마녀와 옷장, 왕의 남자인것도 한 몫 한것으로 보고있다.


제작사 교체 논란

원래 영화 친구의 씨네라인2가 70%까지 촬영을 끝내지만 제작비 초과 문제로 인해 결국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코리아 픽쳐스가 남은 30% 촬영분을 촬영을 하였다.

친일파 논란

하필이면 주인공 박경원의 친일파 논란이 불거져서 망한 것이다.

지금도 민간인이 (해외에 있는) 비행학교에서 비행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수천만 원의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데, 당시에 식민지 출신 소녀가 일본의 비행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빵빵한 후견인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의 후견인은 당시 한국에서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여론이 안좋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외할아버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郎)였다. 물론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별개의 인물이다.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엄연히 박경원이란 인물 자체이다.

당시 일본의 체신상이었던 마타지로는 박경원의 학비를 대주는 등 재정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퇴역한 군용기를 헐값에 불하받도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비행기가 바로 청연(푸른 제비)이었다.

박경원은 이런 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황군위문 비행을 하기도 했고, '고마운 조국(일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일본의 전쟁노력에 적극 협력하자'면서 조선 전역을 누비면서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런 친일 행적 때문에, 단순히 도전정신으로 꿈을 이루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바로 박경원의 실상이었다. 영화에서 미화된 최후도 물론 사실과 달랐는데, 실제로는 도쿄를 출발하여 만주국까지 전시 위문비행을 가던 중 기상 악화로 하코네의 야산에 추락해 죽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이인화는 인터뷰에서 "박경원은 사실은 반일 노선을 취해서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관심이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고, 최초의 시나리오도 최초의 조선인 여성 비행사이자 국제적 엘리트인 박경원의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사고로 인한 사망도 일본의 음모로 모는 안이었다. 영화에서 김주혁이 독립운동과 관련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박경원과 고문을 받고 처형되는 스토리가 이전 시나리오의 잔상.

하지만 이인화의 주장에도 반박의 여지가 있었다. 창씨개명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시행된 것은 박경원 사후의 일이었고, 후술하겠지만 최초의 조선인 여성 비행사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하튼 개봉 직전에 박경원의 이러한 친일 행적이 "제국주의의 치어걸"이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졌고, 안 그래도 당시 독도 문제 때문에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던 시점이라 관객들은 이 영화를 외면했다.

최초 여성 비행사 논란 중에 밝혀진 진실

제작진은 박경원이 조선인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다고 주장했고 제작사인 코리아 픽쳐스는 누리꾼 2명을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하겠다고 난리를 쳤으나, 조선인 여성으로 처음 비행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이 권기옥(1923 운남 항공학교 입학, 1925 공군 조종사)으로 밝혀지면서 언플조차 실패했다. 박경원은 1925 도쿄 비행학교 입학, 1928 조종사 자격증을 땄으니 2~3년 늦다. 게다가 권기옥은 박경원과 달리 중국의 비행학교에서 배웠고, 이후 적극적으로 항일 운동에 참가해 일본군과 교전한 경력까지 있는 등 애국지사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망신만 당한 제작진은 고소 건도 없던 일로 했다. 게다가 박경원이 비행사 자격증을 딴 것은 28년 2월로 비행사 이정희보다 늦다. 이정희가 첫 비행을 했을 때부터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최초의 민간 여성비행사'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이러한 어설픈 언플과 법적 대응은 제작사 스스로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흥행 참패에 일조했고, 120억이라는 거액을 날려버린 코리아 픽쳐스는 결국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도산했다.


영화 이후 배우들

영화사와 감독뿐만 아니라 출연한 배우들도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다. 한동안 승승장구하던 故 장진영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선 보기 드물게 여배우 혼자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연을 맡아 이후 충무로계의 프리미엄 배우로 거듭날 예정이었고, 실제 장진영 본인 또한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연이 가장 논란이 된 배역이 되어 버리면서 그녀가 영화계에서 쌓아온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애착이 강했던 만큼 그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커서 2개월 동안이나 외출을 하지 않고 칩거하는 등 우울증이 심각했다고 한다. 결국 이듬해에 발표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마지막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


유민도 이 영화에 일본인으로 등장하여 그냥 일본어 대사만 날렸는데, 영화의 실패 이후 한국 활동을 접고 2009년에 아이리스에 출연할 때까지 일본에서만 활동했다. 그나마 김주혁은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은 편이었고, 이후의 활동에도 별 지장은 받지 않은 모양이다. 배역 자체도 실존하지 않았던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 

참고로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 장동건과 공동 주연이었던 일본 배우 나카무라 토오루도 극중 박경원을 비행사로 키워주는 도쿠다 교관으로 특별 출연했는데, 이 극중 배역인 도쿠다 교관의 실제 인물이 영화가 개봉된 2005년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외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라는 소문이 돌며 이상한 방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이후 감독

끝으로 이 영화 이전에 흥행은 미적지근했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아 유럽과 미국, 일본에 수출되어 호평을 받은 호러영화 소름으로 주목을 받은 윤종찬 감독도 이 영화가 망하면서 영화감독 생활에 타격을 받았다. 2008년에 만든 현빈 주연의 후속작 <나는 행복합니다>도 1년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고, 이것도 쫄딱 망하고 말았다. 그나마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전국 관객이 2만 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오랫만인 2013년 파파로티를 감독하였는데 전국 170만 관객으로 그럭저럭 손익분기를 넘었기 때문에 감독 생활은 이어갈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