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위해 온 몸을 바치고 떠난 배우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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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위해 온 몸을 바치고 떠난 배우 '김영애'


2017. 4. 27.

김영애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일하던 중, 지인의 제안을 받고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데뷔 후 우아한 미모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으나, 1975년 유부남 음악가와 교제를 하다가 간통죄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후 몇 년간은 활동을 중지했다. 결국 첫번째 결혼은 이 유부남과 했는데 1990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1998년 심리치료사와 두번째 결혼을 했다. 



1970년대에는 미모의 신인 탤런트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사회적 물의로 한 동안 쉬었다가 복귀한 1980년대 이후에는 주연보다 여러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기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에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중견 여배우 중 한 명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동양적인 미모임에도 젊은 시절에는 현대극 위주로 나온 편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오히려 사극에서 희빈, 왕후, 대비 등 높으신 분들, 특히 최종 보스나 흑막으로 나올 때면 그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냉혹한 재벌 회장부터 정이 깊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까지 두루 어울리는 전천후 배우였다.


여담이지만 젊은 시절 미모를 잘 지켜 와서 그런 건지, 나이에 비해 무척 고운 미모를 유지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오뚜기식품의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즉 김자옥 후임의 오뚜기 전속모델이었던 것. 이 시기 연규진과 함께 오뚜기식품의 각종 광고에 나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황토팩 사업을 시작해서 크게 성공했으나, 이영돈 PD가 프로듀싱하는 KBS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 함유"라는 보도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사업을 접었다. 이후 이혼까지 하고 본인도 췌장암에 걸리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2007년 법원에서 유해성이 없다고 판결되어 누명을 벗었다. 다만 KBS 제작 팀은 허위 보도에 대해 "중금속이 있다는 보도내용은 허위지만,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민사 소송에서 이영돈 측이 김영애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남동생이 셋이나 되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늘 돈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작품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했다"며 "돈 걱정없이 연기를 하고 싶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2017년 4월 9일, 2012년에 수술받았던 췌장암이 재발하는 바람에 향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말기에 연기하는 모습 많이 여위였다>

위에도 나와 있듯이 KBS와 법적 공방을 벌였기 때문인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 2015년 KBS 주말극인 부탁해요, 엄마에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되며 복귀하는 듯 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하차해서 그 역할은 고두심이 대신 맡았고, 그녀의 마지막 출연작인 2016년 주말극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최곡지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뒤늦게 복귀에 성공했다. 

하지만 건강 문제 때문에 억지로 외출증을 끊어 가면서 촬영했고, 추가 촬영분인 마지막 4회분은 끝내 고사했다. 또한 드라마 촬영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하차할 때 제작진에게 자신의 병을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입단속을 시켰다고 한다. 이후론 영정 사진과 한복, 장례 절차 등등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뒤 2017년 4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