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의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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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의 대지


2017. 2. 15.

펄 벅의 소설. 원제는 The Good Earth, <좋은 토지>.

1931년에 발표했는데, 선교사 출신의 여성이 쓴 소설인데다, 독자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따위에 관심 없을 것이라며 출판사들이 거절했지만 정작 책이 나오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1938년에 미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중국의 왕룽이라는 한 농부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중국인들의 생활상과 습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흙과 땅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우리 농민들의 정서와도 닮아 있어 더욱 애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거칠고 가난하지만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중국 농민들의 삶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와 건강한 자극이 되어 준다.

작가인 펄 벅은 선교사였으나, 기독교를 중국과 아시아에게 강요하고 기독교를 우월하게 보며 비기독교인을 얕보는 제국주의적인 면을 무척 비난한 개념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국 기독교회들은 그를 엄청나게 비난했다. 더불어 이 작품이나 <북경에서 온 편지> 등 그의 소설을 보면 아시아에 대하여 고증도 철저히 하고 여러 모로 꼼꼼하게 조사하여 쓴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로도 여러 판이 나왔는데, 고 장왕록, 작가이기도 한 안정효 등이 번역했다. 다만 안정효 번역판에는, 약탈당하던 부잣집에 들어간 왕룽이 미처 달아나지 못한 집 주인의 살려달라는 애원에 "그럼 돈을 내놓아요!"라고 말한 것으로 번역한 부분이 있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왕룽이 착실하여 남을 협박하는 짓에 서툴렀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큰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다른 번역판에는 "그럼 어서 돈을 내놔!" 등의 난폭하게 말했다고 나온다. 그 다음 안정효 판에서도 "썩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라고 비슷한 어조로 번역했다.


<아들들>, <흩어진 집안>이라는 두 편의 후속작이 있다. 1부 본편에 비하면 2~3부는 인지도가 별로 없다. 세계 문학 전집 류의 대작 시리즈로 나올 때는 1~3부를 함께 묶어서 내놓는 경우가 있지만 아동용이나 청소년용 축약본은 1부만 요약해서 찍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합본을 접한 사람은 대부분 <아들들>과 <분열된 일가> 역시 함께 읽었다. 연속성이 높은 작품이라 별개의 작품이라는 느낌은 거의 안 난다.

[줄거리]

1부

가난하게 살지만, 성실한 농부인 주인공 왕룽은 성 안의 황씨 댁 종인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다. 오란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알뜰하고 강직한, 전형적인 농부의 아내 감이었다. 선천적으로 부지런한 농부인 왕룽과 오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생활에 점점 여유가 생기자 황씨 댁 전답을 사들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네 번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 큰 가뭄이 들어 무서운 굶주림이 시작되자 왕룽 일가는 오란의 의견에 따라 남방으로 떠난다.

끼니를 잇기도 어려운 남방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주변 빈민들이 들고 일어나 부잣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왕룽과 오란은 군중 틈에 끼어 부잣집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많은 금화와 보석을 손에 넣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황씨 댁의 땅을 모두 사들여 큰 부자가 된다. 그러나 왕룽은 재산을 불리고 땅을 많이 구입해 소작인들을 부리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성내 다방의 렌화라는 기생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등 농사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렌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로 시집오면서 몸종 겸 식모로 토츄엔도 데려오는데, 이는 렌화를 첩으로 들인 것보다도 더 왕룽의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렌화는 오란에게 생판 모르는 남이었지만, 토츄엔은 오란이 황씨 집에서 종살이하던 시절 황씨 집 주인영감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오란에게 횡포를 부린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란은 남편이 예쁘고 젊은 첩을 맞이한 사실을 알고 가슴앓이하며 나날을 보냈고, 극도로 쇠약해진 오란이 끝내 고생스러웠던 한평생을 마치자 그제야 왕룽과 자식들은 오란이 이 집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왕룽은 여러 아들의 제안에 따라 황씨 댁 저택으로 집을 옮기고, 넓은 저택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독 속에서 지내다가 결국은 젊고 어여쁜 종 리화를 첩으로 삼고 외로움을 달랜다. 리화는 왕룽의 둘째 아내 렌화의 시중을 드는 종이었고 흉년에 아버지가 20냥에 왕룽에게 팔았는데, 난봉꾼인 왕룽의 사촌 아우에게 희롱당할 위기에서 구해 왕룽 곁에 잠시 두었다. 사실 리화는 왕룽에게 첩이라기보다 양딸 같은 존재이다. 리화 역시 아버지한테 하는 것처럼 왕룽에게 매달렸다. 큰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대지주가 되고, 둘째 아들은 거대한 상인이 되며, 막내아들은 집을 뛰쳐나가 남방의 군벌에 입대해 군인이 된다. 어느 날, 훌륭한 관을 준비해놓고 죽을 날을 기다리던 왕룽은 두 아들이 토지를 팔려고 의논하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한다. 그러나 두 아들은 비웃음만 흘릴 뿐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안 판다고 얼버무리고 뒤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다.



2부

호사스럽고 게으른 지주가 된 첫째 왕이(王一, 왕따(大)로 적은 판도 있다), 약삭빠른 장사꾼이 된 둘째 왕얼(王二), 군벌이 된 셋째 왕싼(王三)의 행보를 왕싼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고 있다. 둘째 왕얼은 형이 소유한 전답을 대거 사들여 소작료를 챙기고 부를 증식시킨다. 왕룽의 둘째 첩이었던 리화는 왕룽이 죽자 천치 딸과 같이 산다. 무엇보다 왕싼을 중심으로 군벌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전투 묘사 등 여러 모로 볼거리도 있다.

왕싼은 초기에 지역의 군벌 아래서 인정받는 부대장이 되고, 혁명은 말로만 외치며 현실에 안주하는 상관을 혐오하여 백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독립탈영한다. 그 부하 백 명으로, 술이 유명한 작은 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표범'이라는 소군벌을 물리치고 현장(시장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을 협박해 현의 사령관 신분이 된다. 사령관이라지만 사실상 현을 통치하는 건 현장이 아닌 사령관 '호랑이 장군 왕싼'이어서, 현장이 죽은 뒤에도 현으로 부임해오는 관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대가 청 말기의 치안 공백 상태이긴 하나, 엄연히 '도적' 신분인 타 군벌과 다르게 명목상으로는 관군 신분이 될 정도로 꽤 머리를 썼다.

그렇게 작은 군벌에서 차츰차츰 무기를 늘리고 병사를 늘려가며 2만 명에 이르는 중대 규모 군벌이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왕후는 아버지가 되고, 안정을 원하게 되면서 자신이 꿈꾸던 신중국 건설에는 결국 나서지 못한다.



3부

왕룽의 손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향에서는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가의 기반이었던 농토를 모두 다 잃는다. 첫째 왕이의 집안은 아들 하나가 상하이에서 가장 큰 은행의 부은행장이 되어 있어서 상하이로 이주하고, 둘째 왕얼의 집안은 2부에서 삼촌 왕싼 밑에 들어간 아들 하나가 부유한 상업도시 하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도망간다. 문제는 셋째 왕싼인데, 왕싼은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그 후유증으로 앓다가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왕옌을 만나고 죽는다.

애초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은 왕얼에게 있었다. 왕싼이 아들의 유학 자금이나 군자금 등으로 왕이에게 돈을 빌려 썼는데, 왕얼은 동생에게 가차 없이 이자와 대부 원금을 상환 받았다. 이 비용 부담 때문에 한때 2만의 정예부대를 가지고 있던 왕싼의 군대는 건달패 백여 명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조카인 왕이의 아들조차 자기 지배구역에서 걷는 세금을 삼촌에게 바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문의 배경인 왕싼의 군대가 없어지자 왕얼의 착취를 참고 참던 농민들이 일시에 봉기한 것이다.



4부

펄 벅은 <붉은 대지>라는 4부 격의 소설을 집필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붉은 대지는 왕룽의 손자들이 공산화된 중국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작중 시간의 흐름과 설정 구멍]

사실 이 책이 30년대 초에 쓰였으니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긴 한데, 작중의 연대를 잘 따져 보면 참으로 기묘한 현대사를 느끼게 된다. 왜냐 하면, 적어도 1970년대가 될 때까지 중국은 여전히 군벌시대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1부 시작 부분에서 왕룽이 결혼하는 날 이발사의 대사를 보면 이미 변발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1900년대 이후, 아마도 신해혁명 직전임을 의미하는 상황이다. 이후 왕룽이 아직 살아있을 때 손자들의 입으로 "혁명이 일어난 후"라는 대사가 나오므로 왕룽의 생전에 신해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이후로 역사가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룽의 결혼 이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따져보면 이렇다.

1) 왕룽은 결혼하고 바로 첫 아들을 얻었다. →이것도 좀 오류인 것이, 밀싹이 트는 초봄에 결혼한 왕룽이 벼 베는 철에 첫 아이를 얻고 설날에 오란과 아들을 데리고 황부잣집에 세배를 간다.
2) 왕룽의 장남 왕이(王一)는 20~21세에 결혼, 바로 첫아들을 얻는다.
3) 왕이의 장남은 28세에 결혼한다.
4) 왕룽의 삼남 왕싼(王三)이 스무 살이 안 된 외아들 왕옌(王元)을 억지로 결혼시키려 할 때, 왕이의 장남은 결혼한 지 20년가량 되었다.
5) 왕옌이 혁명분자에 대한 체포를 피해 미국에서 유학을 한 기간이 6년이다.
6) 왕옌이 귀국한 지 1년 후 소설이 막을 내린다.

즉 대지 3부작에서 소요된 시간은 왕룽이 결혼한 후 거의 75년에서 80년 가까이까지 잡을 수 있다. 왕룽이 결혼한 해를 1900년이라고 잡아도 70년대는 너끈히 넘는다.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확실한 설정 구멍이다. 일단 왕룽 생전에는 왕룽의 나이도 나오지 않는다. 1부에서 나이가 명시되는 사람은 오란 하나뿐으로, 결혼할 때 20살이다. 이후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이 숱하게 나오지만 나이가 명시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어쩌다 한 마디씩 나오는 것만 가지고 때려 맞춰야 한다. 셋째 아들이 30세가량이 되어 첫 아들을 얻었을 때 왕룽이 "살아있었다면" 90세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아직 살아있는 렌화의 나이가 78세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역산해 보면 오란과 결혼할 때 왕룽의 나이는 거의 40에 가까웠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난한 농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다른 등장인물, 특히 아들들의 나이는 5~10세씩 늘었다 줄었다 하고, 순서도 마구 바뀐다. 2부에서 왕룽의 둘째 왕얼(王二)의 장남이라고 나왔던 곰보가 3부에서는 둘째라고 나오고, 1부에서는 왕룽에게 11명의 손자와 8명의 손녀가 있다고 하는데 이 중에서 2부 이후에 등장하는 건 왕따의 다섯 아들과 왕얼의 네 아들(그나마 왕룽이 죽은 뒤에 태어난 애들도 있다)뿐이다. 뭐, 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대이니 나머지 손자손녀들은 어려서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기는 하다.

하지만 셋째 왕싼의 아들 왕옌은 이런 설명도 불가능하다. 왕옌에게는 아이란(愛蘭)이라는 이복여동생이 있는데, 얘들은 같은 해에 거의 동시에 태어났다. 그런데 왕옌이 20세에 떠난 유학을 6년 만에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이란은 23살이다.

[평가]

이원복은 만화로 이 소설이 중국을 폄하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하지만 소설을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하다. 펄 벅이 중국에서 실제로 겪었던 여러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고, 그는 위에서 서술한 대로 기독교의 무분별한 중국 선교를 반대하며 중국풍 사고방식을 이해하자는 주장을 했다. 또 3부인 <흩어진 집안>에는 중국을 혐오한다는 백인들이 나와, 중국인들의 갈등도 중국인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1930년대 백인이 쓴 소설로서는 꽤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줌에도 단지 1부에 나온 대지의 가난한 중국 농민들 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까대는 중국인들이 있는 걸 보면. 아예 "펄 벅이 내 식당에 들어오면 죽여버리겠다. 그만큼 나는 <대지>를 싫어한다"는 투의 대사를 중국인으로 설정된 캐릭터가 얘기하는 영화도 있었다. 그러나 펄 벅 항목에도 나오듯이 이제는 현대 중국에서도 재평가되어 중국 근대를 잘 이야기하는 작품이자 영문학 추천 소설로 자주 선정되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사실, 대지가 중국을 비하하는 백인우월주의 및 제국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주장은 출간 직후부터 나오고 있었다. 중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문호 루쉰 역시 이렇게 주장했고, 오랜 기간 중국에서 펄 벅과 대지가 저평가 받은 것이 바로 루쉰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루쉰이 이처럼 대지를 나쁘게 본 이유가 번역이 개판으로 된 중역판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펄 벅의 작품 전반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리얼리즘적 관점이 중국인 독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특히, 1권 초반에서 가난한 중국 농민의 삶을 리얼하게, 끔찍한 부분도 숨기지 않고 묘사한 것 때문에 펄 벅이 자신들의 수치와 치부를 드러내어 망신을 주었다고 느낀 독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재미 동포 소설가로 이름 높은 강용흘(1903~1972)도 펄 벅에게 직접 이런 비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비판의 내용이, 작중에서 부유한 지주가 된 왕룽이 소녀(리화)를 사서 첩으로 삼는 장면을 두고 '중국에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면서 '중국인의 도덕적 품성을 왜곡하고 비하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라 설득력이 없다. 펄 벅도 강용흘에게 "이게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살면서 만난 노부인들이 자신이 겪은 일이라며 들려준 이야기이고, 당시 중국인들이 꽤 많이 겪은 일"이라고 했다. 또한 "당신이야말로 중국인의 도덕적 품성을 운운하기 앞서, 비참한 청나라 말기 시대상을 제대로 아는가? 군벌이 난립해 먹고 살기에도 어렵던 근대 중국의 생활상을 그저 옛날 중국 도덕적 품성이라는 기록에 의존해 부정한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당신의 주장은 한마디로 기독교권, 백인 나라에서도 번번한, 비참한 서민층 생활상을 죄다 외면하고 잘 사는 것만 강조하여 오리엔탈리즘 우월론으로 왜곡 및 강조하는 선교사들과 차이가 전혀 없다."라고 반론하였다. 이에 강용흘이 도리어 데꿀멍해 반론하지 못했으며 할 말이 없는지 펄 벅을 개인적 자리에서 피해 다녔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점은, 펄 벅 자신이 대지의 3부에서 미국에 유학하던 주인공 왕옌을 통해 이런 관점을 보여준 바 있다는 점이다. 작중에서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이 농부로 분장하고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공연한 것에 대해 왕옌이 "너희는 중국인의 체면을 깎고, 망신시키고 있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역사적으로 힘든 시대를 겪어내던 아시아인들이 시대적 고통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들의 체면이 깎이는 것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