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3.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불상을 보면 불상에 대한 몇 가지의 의문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 중 첫째는 불상의 머리털이 좀 특이한데 무슨 소라처럼 생겼다는 것이고, 둘째는 머리의 정수리가 두툼하게 생긴 것이 마치 상투처럼 생겼다는 것이고, 셋째는 온 몸에 금칠을 왜했냐는 것이고, 넷째는 드믈게 일으키는 의문인데, 손 모양이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지식인에 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긴 하지만 불교에 대한 부실한 이해로 인해 모르는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기에 이 점에 대해 분명히 하고 싶어서 입니다.
첫째 의문에 대해
언젠가 불상은 왜 곱슬 머리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답하기를,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불교 경전의 내용을 모르는 피상적인 답변입니다. 물론 표현 자체는 간다라 미술의 영향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게 된 원형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한 동안은 불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불상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모양은 아무리 위대한 것이나 좋은 것일지라도 무상함을 잘 알고 있었고, 부처님에 대한 최상의 예배 예경 존중 존경은 부처님이란 모양이 있는 대상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가르치신 위 없는 가르침,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또 초기엔 성인의 특이하고 위대한 모습을 그대로 그려낼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초기엔 불상을 만들어서 모시려 해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일반사람과 다른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가졌던 부처님의 모양을 함부로 만들 순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조각한 조각에도 부처님은 보리수나 발자국 정도로만 나타납니다.
후대에 가면선 점차로 그것만으로는 부족을 느끼고 실질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일어납니다.
불멸 후 약 100년 뒤에, 우빠굽따라는 스님은 아라한의 지위에 이르렀으면서도 부처님의 생전 모습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부처님을 뵙고 싶어하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전형적인 존경심의 발로입니다.
과거에 어떤 위대한 분이 있었다면 그런 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성도를 방해했던 마라가 나타나기에, 존자는 마라에게 부탁을 합니다.
너는 부처님을 친견했고, 또 신통이 있으니 부처님의 모습을 내게 보여 줄 수 없겠느냐.
마라는 기꺼이 찬성하고 대신에 자신이 부처님의 모습으로 출현하더라도 자신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본대로 부처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다니는 모습을 신통으로 나타내자, 존자는 그 거룩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절을 하고 맙니다.
그러자 마라가 말합니다. 내게 절하지 않기로 하셨잖소?
존자가 말합니다. 내가 언제 그대에게 절했는가, 부처님께 했지...
그처럼 부처님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상 위대한 사람의 32가지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32가지 특징을 지니는 사람은, 전륜성왕과 부처님 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방금 언급한 32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가, 머리털의 끝이 모두 위로 향하여 오른쪽으로 감아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위 나발(螺髮 : 소라모양의 머리털)이라고 합니다. 머리털이 소라모양으로 돌돌 말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곱슬머리로 오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사람의 머리털이란 직모 아니면 곱슬 또는 반곱슬 정도죠.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경전의 이런 표현을 읽는다면 아, 곱슬머리를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곱슬머리라면 그것이 위대한 사람의 특징이라는 게 무색해지겠지요.
소라의 모양을 본 사람들은 대충 그 머리털이 어떤 모양일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털이 어찌 그럴 수 있나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단지 과거에 존재했던 성인에 대한 존중의 결과물이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32상은 전륜성왕과 부처님에게만 나타나는 아주 아주 드문 신체 특징입니다. 따라서 실지로 그런 사람이 출현한 시대에 그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살지 않은 이상은 그런 신체 특징을 볼 일은 없습니다.
부처님이 출현했을 때, 인도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관상가들을 불러다가 아이의 미래를 점치곤 했습니다. 부처님도 태어나서 곧장 관상가의 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관상의 정보에는 부처가 갖는 32가지 신체적 특징에 대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실지로 성불을 하고 세상에 법을 펼 때,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소문으로 듣고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부처임을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부처님의 머리털은 귀한 보물처럼 여겨져서 후대에까지 전수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구법승들 중엔 이러한 부처님의 사리를 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가 없는 것같군요.
당시에 목격한 스님의 글에 따르면 정말로 소라처럼 돌돌 말렸고, 굵기는 연뿌리를 꺾으면 보이는 섬유질처럼 아주 가늘었다고 합니다.
당기면 펴져서 길게 늘어나고 놓으면 다시 도로록 말렸다고 합니다.
둘째는 불상의 상투모양입니다.
이것도 흔히 그냥 머리를 상투처럼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만, 이것도 역시 부처님의 32상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이것을 살상투(肉髻)라고 하는데, 정수리에 살이 솟아올라서 마치 터번을 감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상투처럼 생겼지만 상투와는 무관합니다. 혹자는 이를 예로 들어서 부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하기도 합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단순히 미술의 풍조나 당시의 헤어스타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하지만, 불상의 이런 표현은 경전에 근거를 둔 것이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불상을 만들 당시 아무도 부처님을 본 사람이 없으므로 경전의 그런 표현들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자신들이 이해한대로 다르게 나타낸 것만은 분명합니다.
셋째 왜 하필이면 금불상인가?
혹자는 금의 성질을 설명하면서 금이 가진 상징성을 이야기합니다만, 이것도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역시 32상의 하나로써 부처님은 신체가 황금빛으로 빛났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네번째 불상의 수인(手印 : 손의 모양)에 대하여
불상, 특히 석가모니 불상은 "선정인"에서 오른 손은 풀어서 오른 무릎쪽으로 내린 형상입니다.
이는 이른바 "항마촉지인"이라는 수인(손의 자세)로써 부처님이 성불할 당시 마라의 방해를 받을 때 마라를 항복시켰을 때 사용했던 자세입니다.
그 자세 자체는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성불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몇 가지 내용들은 불교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요즘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설명하고, 그 설명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불교를 오해하는 사례가 많기에 특별히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