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벤다졸은 주로 개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동물용 구충제. 상품명으로는 파나큐어(panacure)가 있다. 원리는 장내에서 당의 흡수를 막아 기생충을 굶겨 죽이는 것이다. 동물 대상으로는 수십 년째 안정성을 인정받고 있어 자주 사용되다가, 더 좋은 구충제들이 나오면서 잘 찾지 않게 된 약품이었다.
그러던 중 아래의 사건 덕분에 갑자기 장안의 화제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미국인 조 티펜스는 2016년 9월 1일 노동절 연휴에 스위스로 여행갈 준비를 하다가 코에 불편을 느껴 병원에 찾아갔고, 검사 도중 우연히 폐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밀진단 결과 소세포 폐암 4기였음이 밝혀졌고, 휴스턴의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방사선치료와 항암제를 비롯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2017년 1월 PET 검사 결과 폐의 종양은 제거되었지만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더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했고, 의사로부터 앞으로 기대수명은 3개월이며 치료보다는 호스피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절망적인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때 지인인 한 수의사로부터 쥐에게 펜벤다졸을 복용시켰더니 기생충뿐만 아니라 암세포도 제거되었다는 실험결과가 있어서 자신도 펜벤다졸을 복용했더니 정말로 나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는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펜벤다졸과 함께 비타민 E, 커큐민, CBD 오일을 복용하는 자가처방을 시작했다. 그 후 4개월 뒤인 2017년 5월 PET 검사 결과 놀랍게도 전신의 암세포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치료방법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처음에는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자신의 펜벤다졸 치료법을 전파했지만 후에는 블로그를 개설하여 공개적으로 펜벤다졸 치료법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병원치료가 아닌 펜벤다졸 치료법만으로 암을 치료한 75건의 개인적인 임상사례를 갖고 있으며, 그중에는 4기 췌장암이 7명이 있으며, 그 중 2명은 완치, 5명은 완치는 아니지만 기대수명보다 훨씬 오랫동안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상기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티펜스는 펜벤다졸이 모든 암에 대한 만병통치약(Magic Bullet)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본인과 본인 주변의 임상사례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암에 대해 효과가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펜벤다졸이 암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들은 여럿 찾아볼 수 있으나, 직접 인간에게 투여되었을 때의 약효와 부작용이 확인된 적은 없다. 때문에 약효보다 부작용이 더 클 가능성이 있으며, 의사들 역시 원리가 비슷하고 약효도 검증된 약들이 이미 존재하는데 굳이 펜벤다졸을 투여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내의 경우 연세대학교 김영태 교수진이 실험쥐에게서 항암 효과를 찾은 한 건의 실험자료가 있으나, 이 연구를 시행한 김영태 교수 본인도 인터뷰에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충제 이외의 항암 목적으로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든 약은 약효와 인체 독성에 대해 정밀한 분석이 완료된 뒤에야 상용화가 가능한데, 펜벤다졸을 암 치료에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입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약을 투여받았다가 간독성 등으로 몸이 나빠져, 이미 상용화된 다른 정식 항암치료를 미루거나 중단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조 티펜스의 치료 사례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례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러한 임상 사례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또한 위 인터뷰에서는 크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펜벤다졸 치료 도중 조 티펜스는 다른 항암제의 임상실험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2019년 11월 29일, JTBC가 조 티펜스는 실은 다른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복용한 임상시험자였으며 암은 키트루다로 치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폭로했다. 게다가 입수한 CT화면에 따르면 암세포는 간과 폐에 퍼졌을 뿐이라고 한다. 그의 표현인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전이 양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는 것. 인터뷰에 참가한 의사들은 현재 유튜브에 나타난 진통, 암 조직 분리 등도 위약효과나 일시적 현상일 뿐 펜벤다졸의 영향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따라서 조 티펜스의 완치결과가 과연 펜벤다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참여하고 있었던 항암제 임상에 의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조 티펜스는 펜벤다졸 복용 시 이미 다른 신약 임상에 참여 중이었으며, 비타민 E, 커큐민, CBD 오일까지 함께 복용했기 때문에 펜벤다졸 단독 복용만으로도 항암 효과가 있다고 일반화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항암제 이외의 대증요법 도중에 갑자기 암이 완치된 기적적인 사례는 매우 극소수이기는 하나 펜벤다졸 없이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조 티펜스는 자신의 PET 검사 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어 의구심을 낳게 한다. 더군다나 펜벤다졸을 추천했다는 수의사에 관한 정보가 전무하다. 조 티펜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티펜스에게 펜벤다졸의 유익성을 설파한 수의사의 (전문가로서의) 견해가 가장 중요할 것인데 관심은 일반인인 조 티펜스와 펜벤다졸로 쏠려있는 것이 현상황의 문제점이다. 수의사에 대한 인적사항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런데???
펜벤다졸을 복용하여 소세포폐암을 완치했다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전세계적인 품귀현상이 발생하였다. 특히 말기 암환자들은 어차피 시한부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사재기하고 있다.
식약처는 절대 먹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 의약품은 국민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되므로 설령 정말로 펜벤다졸에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이상 의사들이나 국가기관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의 경우 많은 대중이 오해하는 것처럼 항암제로 돈을 벌고 싶어서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임상적 근거로 매뉴얼 밖의 대체요법을 매우 기피하고 있다. 많은 의사들은 굳이 펜벤다졸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도라지나 홍삼을 달여 먹는다거나 여러가지 성분이 많이 든 외국산 영양제를 사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펜벤다졸의 경우, 이 약의 기전에 의한 항암 기전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연구된 부분이 있으며, 해당 기전으로 작용하는 더 좋은 항암제인 "탁솔"이 있는데, 굳이 안전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펜벤다졸을 먹을 이유가 없다며 먹지 말기를 당부했다. 애초에 벤지미다졸 유도체 계열 약물의 항암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고, 특히 인간구충제인 알벤다졸에 대한 연구 결과는 매우 많이 쌓여 있다.
더욱이 실제 암환자로서 투병기를 올리던 몇몇 유튜버들이 조 티펜스가 주장하는 펜벤다졸 치료법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임상실험을 자처해 복용경과 등을 올리면서 펜벤다졸 신드롬을 부추겼다.
블로그나 유튜브 후기 등을 보면 가장 큰 효과는 통증완화사례가 가장 많이 보인다. 말기 암 투병 중인 코미디언 김철민(1967년생)도 복용 후 목소리가 돌아오고 통증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실제로 치료 효과는 없더라도 통증완화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다면 이것만으로도 말기암환자에게 크나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2월 6일 페이스북 올라온 자료에 따르면 간수치는 정상이고 암수치도 9월 400대에서 200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펜벤다졸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면서 사람용 의약품인 알벤다졸의 오프라벨 처방에 대한 기사도 나왔다.
인체 대상으로 만든 약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예측할 수 없다. 의사와 약사, 그리고 국가기관이 펜벤다졸을 먹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펜벤다졸이 다른 항암제에 비해 인체에 특별하게 나쁘다거나 항암 효과가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임상실험조차 거치지 않은 약을 먹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 어떤 약물과 요법으로도 생명 연장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들이야 그놈의 장기적 부작용보다 단기적 죽음이 먼저 닥칠 상황이기에, 본인이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복용해보는 경우가 있다.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중인 다른 대부분의 항암제들 역시 강력한 부작용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고, 죽음보다 심각한 부작용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항암작용을 하는 널리 쓰이는 항암제 탁솔 역시 아래 펜벤다졸의 부작용이라 기술되어 있는 골수 억제 유발, 간독성, 말초신경병증 등의 다양한 부작용이 밝혀져 있으며, 사망 사례 또한 보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환자들이 아닌 일반적인 암 환자들이 복용하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벤지미다졸 유도체들은 기본적으로 소화기 장애 및 간독성, 골수 억제 유발을 지니고 있어서 이걸 먹다가 간이 약해져 오히려 다른 항암제를 복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의약학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간독성 때문에 오히려 치료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골수 억제 유발에 관하여서도 장기간 과다복용 시 범혈구감소증을 유발할 수 있다. 펜벤다졸의 경우 최소 이 두 부작용은 이미 실제 환자 사례로 확정된 부작용이다.
일부에서는 항암제 부작용이 펜벤다졸보다 더 독하다고 항암제보다 펜벤다졸을 권장하지만 펜벤다졸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도 고작 한두 달 먹고 말하는 부작용에 불과하고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꿔서 말하면 부작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펜벤다졸 복용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그저 환자 본인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암 학회에서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장이 괴사하는 '등', 입원치료를 받는 사례'들'로 미루어볼 때 장 괴사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도 부작용 사례를 3건 공개하였다. 한 건은 구역, 구토를 보인 위장관 계열, 또 한 건은 통증 및 암 병세 악화, 마지막 한 건은 사망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펜벤다졸에 부정적 방향으로 편향적 보도를 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저 3건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비록 커뮤니티 글이긴 하나 댓글을 보면 간호사로 추정되는 사용자가 펜벤다졸 때문에 애를 먹은 스토리가 보인다. 환자가 급성 신부전으로 사망하고 보험금 때문에 보호자가 의료기록 고쳐달라고 찾아와서 난리를 피운 모양.
이슈가 되기 시작한 12월 3째주 차 치료사례에 따르면 이미 완치사례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펜벤다졸은 항암효과와 그 원리가 많은 문헌을 통해 입증되어 있고, 수십 년간 개 구충제로 판매되어왔다는 점에서 비암상 시험의 안전성 또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나중에 다른 효능이 밝혀져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례도 많이 있으므로 (대표적으로 비아그라. 원래는 혈압약이었다) 동물 대상으로 사용했던 의약품이라는 점은 펜벤다졸 사용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러 부작용들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미 시판되고 있는 항암제들 역시 사망을 포함한 많은 부작용이 밝혀져 있으므로 이 또한 펜벤다졸을 복용해서는 안되는 이유로 합당하지 않다. 결국 펜벤다졸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의약품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탁월한 효능과 안정성을 가진 항암제라도 그것을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하지 못했다면 식약처나 의사 입장에서는 절대로 환자에게 권할 수 없고, 권해서도 안 된다.
즉, 임상시험만 통과한다면 펜벤다졸 사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통 임상시험에서는 환자 모집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지만, 펜벤다졸의 경우는 펜벤다졸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찾는 환자들이 많으며, 국내에서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불법적으로 해외 구매를 시도하는 환자가 있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각지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많은 환자들이 임상 대상을 자처하며 자체적인 임상 결과를 업로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고통받는 환자들의 간절한 마음과 열화와 같은 성원을 등에 업고 당장이라도 공식적인 임상시험을 수행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제약회사도, 심지어는 펜벤다졸의 개발사조차도 펜벤다졸의 임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펜벤다졸의 임상시험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이 물질이 이미 40년 전에 개발된 물질이라 특허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가 막대한 비용을 무릅쓰고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그 비용을 높은 단가의 항암제 독점 판매로 회수하고 이윤을 얻기 위함인데, 펜벤다졸은 특허가 만료되었으므로 임상시험이 성공하더라도 죽 쒀서 개 주는 꼴만 된다. '물질특허는 만료되었더라도 용도특허는 새로 받을 수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임상시험 수행한 회사가 비싸게 파는 '항암제' 펜벤다졸을 구입할 이유가 전혀 없고 훨씬 저렴하게 시중에서 판매되는 '개 구충제' 펜벤다졸을 먹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똑같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는 임상시험에 성공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고, 실패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이상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펜벤다졸의 임상에 도전할 이유가 전혀 없다. 펜벤다졸이 항암효과가 있는 것 자체는 분명하나, '항암효과가 있는' 수천 수만의 물질 중 임상 3상의 벽을 넘어 안전성과 효능을 인정받는 물질은 극소수이다. 펜벤다졸 또한 공식적인 검증을 거쳤을 때 흔하디 흔한 실패한 의약품 중 하나로 밝혀질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논리하에서는 펜벤다졸이 항암제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임상을 거쳐 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낮으므로, 식약처가 직접 임상시험을 진행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여 5천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그러나 식약처는 임상시험을 감독하는 기관이지 시행하는 기관이 될 수 없으며, 설령 시행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정부 부처에서 이 청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펜벤다졸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아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항암제 부작용만큼 심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