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연변 음식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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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연변 음식 여행기



연변(延邊, Yánbiān, 옌볜)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지린성의 행정 구역으로, 지급시에 상당한다. 주도(州都)는 연길(延吉)이며, 면적 43,509km²이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227만 1,600명이며, 인구 중에서는 한족이 64%, 조선족이 32%, 만주족이 2%를 차지한다.

북쪽에 위치하여 기후는 추운 편이다. 연길의 1월 평균기온은 -13.6℃이며, 7월 평균기온은 21.5℃이다. 연강수량은 528mm로 적은 편. 서북쪽 둔화의 경우 더 추워서 1월 평균기온이 -16.6℃에 달해 중강진(-16.1℃)과 비슷한 수준. 기후 상황은 한반도와 비슷한 편인데, 한반도에서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도 십중팔구 비가 오고, 한반도에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는 여기도 추위에 시달린다.

일제강점기엔 간도(間島)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만주국 때 간도성이 설치됐다. 만주국(1932-45)과 중화민국 시대(1945-49)에 연변의 여타 지역은 간도성/송강성에 속해 있었으나, 돈화는 길림성에 속했었다. 한편 훈춘 사건과 간도 참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중공 수립 직후인 1952년 9월 3일 조선족자치구가 되었다. 6.25 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으로, 그리고 중공군에 참전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위해 숱한 피를 흘렸는데 1952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자치구(延边朝鲜族自治区)가 전후 1955년 조선족이 극히 드문 돈화가 편입되며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로 격하된 것.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자치구가 1급이고 자치주가 2급이다. 비록 조선족자치구가 위구르나 티베트, 내몽골 자치구와 같은 동급의 자치구역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명칭뿐이더라도 내려앉은 것.

돈화를 제외하면 조선족의 비율이 50% 정도이다. 자치주는 기본적으로 소수민족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지정되는데,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가 백두산 방문했을 때 가이드가 직접 언급한 바로는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수십 년 이후에는 자치주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조선족의 출산율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한국보다도 낮은데,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의 합계 출산율이 0.98이었다. 통계상으로 보면 1999년까지 출산율이 2명대에 달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중국의 인구 조사 데이터를 인용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90년대에 이미 출산율이 1명 이하였고, 2010년에도 0.6명대라는 조사도 있다. 이촌향도, 계획생육정책을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급속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동북 3성 자체가 극도의 저출산과 고령화, 타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중국 내에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지만 연변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과거에는 연변자치주 지역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 예전만 못하다. 연변 지역이 중국 대도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고, 공장이 들어서기에도 중국 내 단둥 같은 주요 항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인접해있다는 것이 그나마 연길이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었지만 폐쇄된 북한의 상황 때문에 북한의 항구를 쓰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구매력이 형편없어지면서 공업의 발달이 지체되었다. 아울러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이나 중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 일하러 가서 인구도 감소했고,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60년대 한국 풍경이 펼쳐질 정도이다. 2015년 기준 자치주의 1인당 GDP는 6,441$로 중국 평균(8,068$)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며, 지린 성에서는 9개 지급 행정구역중 7위를 기록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최동남단의 혼춘(琿春)을 동북 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창구로 여기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도시로의 육로 이동도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연변자치주 곳곳의 가게들을 보면 간판에 한국어를 위에 쓰고 아래에 중국어를 병기한 경우나 좌우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 놓은 곳이 많은데, 간판에 한국어를 써 넣지 않으면 가게 허가가 안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8]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은 한국식의 세련된 폰트나 북한 폰트, 한족이 운영하는 곳은 굴림체나 돋움체, 궁서체 계열을 많이 쓴다. 자치주 외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하얼빈, 무단장 등의 도시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간판 형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훈춘의 경우 러시아 접경으로 러시아어 - 한국어 - 중국어의 3개 언어 병기를 볼 수 있으며 이 곳 조선족들은 러시아어를 섞어 쓴다.

어쨌거나 한국과 이래저래 교류가 많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한국의 깊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서 한국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노래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도 쉽게 맛볼 수 있지만, 한국 영사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연변 주민들이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700여 km(옌지 기준) 떨어진 선양의 대한민국 총 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이 거리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최소 9시간 걸린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창구이다. 북한 제조업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으면서 주요 소비재들이 중국을 통해서 수입되고 있고, 아울러 북한경제가 장마당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장마당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돈주들의 돈줄 상당수도 연변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며 한국 소식들이나 영상매채들도 연변을 통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요한 창구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주로 함경도 일대의 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에는 남한가요가 북한에서는 연변가요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정도 정보가 퍼지고 한국 가수들의 공연도 여러번 벌어진 2000년대 이후로는 다들 남한가요라고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자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다. 다만 생각보다 별볼일 없는 듯. 이후로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