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하고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 새누리당이 이해를 잘못한 모양이다.”
이 말은 누가 했을까. 바로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이는 2016년 1월 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과거 김 위원장의 저서에서 그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언급하며 고용유연화를 찬성한 것을 거론하며 박근혜 정부 최후의 대형 입법사안이었던 노동개혁법안의 처리를 압박하자 발화된 메세지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독일과 우리는 다르다.” 던 김종인 위원장은 4년 만에 입장을 바꿨다. 여당의 공정경제 3법에 대응하여 고용유연화를 재추진하게 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입장을 180도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뀐 입장과 별개로 그의 논리는 상당히 일관성은 있다. 산별노조의 전면적 도입과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 ‘전제된’ 고용유연화가 그의 기본 입장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의 경영참여 및 경영감시 활동을 넓히고자 하는 목표 역시 아직까지는 변화가 없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의 입장도 달라진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이 고용유연화의 전제조건으로 거론한 사회적 제도들은 우리나라에서 그간 얼마나 개선됐을까. 간단하게 살펴보자.
1. 사회안전망은 유효한가? : 아니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입법될 시점인 2002년 전후의 독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액 비중은 약 25~26% 수준이었다. (출처 : 통계청 KOSIS) 반면 당시 한국은 2002년 4.8% 라는 아주 낮은 수준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나타냈다. 문제는 당시 한국은 IMF 를 거치며 이미 비정규직/파견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로 인한 노동시장 이중화가 자리잡은 이후였다는 것이다.
그 후로 약 16년이 지난 2018년 시점에서도 독일은 25% 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기록하고 있으나, 한국은 아직 11.1% 에 머무르고 있다. 물론 이는 2002년 대비 2.5배 가량 증가한 수치이나 증가하는 속력이 선형이라면 한국은 2035년은 돼야 2002년 독일의 지출비중에 간신히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GDP가 함께 성장하리라곤 확신할 수 없다. 결국 정부지출에 대한 지리한 논쟁이 또 다시 발생하게 된다.
2. 산별노조를 위한 준비는 마련돼 있나? : 전혀
다시 시계를 2016년 2월로 돌려 보자. 당시 대한민국 대법원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바로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 는 판결이었다. 이는 당시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부의 조직형태 변경과 관련된 소송의 최종 판결이었는데 결국 대법에서 두 가지 예외사항까지 만들어 주며 발레오만도 지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당시 대법은 발레오만도에서 그 유명한 ‘창조컨설팅’ 을 동원하여 지회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시키기 위한 꼼수를 동원한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판례 때문에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산별노조 무력화가 훨씬 더 쉬워졌다. 협상이 잘 되지 않을 경우 기업별 노조로 빼내어 협상력을 낮춘 후 입맛대로 단체협약을 진행할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때 대법원장이 누구였을까? 바로 그 유명한 “양.승.태” 님 되시겠다.
3. 고용유연화가 완전한 해법이긴 한가? : 글쎄요
김종인 위원장은 고용유연화 의제를 꺼내들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다양한 근무형태의 발생을 현재의 노동법으로 모두 관할하기 어렵다’ 라는 추가적인 근거를 덧붙였다. 이는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형태를 모두 경제적으로 포괄하기 위한 최종 목적지가 아직까지도 ‘고용유연화’ 일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경직된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노동구조는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권 보장에서부터 차등적으로 권익을 보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규직의 해고를 쉽게 한다고 하여 노동시장이 평등해진다는 논리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정작 독일의 하르츠 개혁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미니잡의 범위 확대 및 기존 실업부조와 사회부조의 통합이었지 쉬운 해고는 아니었다. 독일식 직업 재교육 모델이 한국에 들어맞을지도 알 수 없다.
사실 홍준표 씨 같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미국식 고용유연화를 떠드는 국민의힘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의 의제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이것을 지금 이러한 식으로 화두를 던지는 것은 결국 김 위원장이 어떤 정치적 딜레마에 처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힌트와도 같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