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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비가 죽을때까지 사진 찍은 파파라치 비극적인 죽음으로 전세계를 울렸던 여인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혔던 사람 영국의 왕세자빈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윌리엄 왕자)과 5위인 해리 왕자의 친어머니이다. 서열 3위인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왕세증손과 서열 4위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의 친할머니이기도 하다. 1981년에 찰스 왕세자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나, 불화 끝에 1992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가 1996년에 이혼했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해 봉사와 자선활동에 헌신하여 영국인들과 세계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이혼 다음 해인 1997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흔히 다이애나 비라고 부른다.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을 때 정해진 공식적인 호칭은 다음과 같았다...
'엘튼 존' 두번에 걸친 자살시도 사건 1968년 엘튼존은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린다 우드로라는 여성과 교제했다. 엘튼 존보다 두 살 더 많고 키도 더 크고 재산도 더욱 많았던 중산층 여성. 두 사람은 196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났고 엘튼 존이 밴드 블루솔로지에서 활동하던 시기(사실상 막바지였다. 1968년 5월 7일 스코틀랜드 공연을 끝으로 밴드에서 탈퇴했다.)에 셰필드의 한 카바레 클럽에서 공연을 했을 때였고 당시 클럽에서 한 DJ가 린다 우드로를 때리던 광경을 목격해 엘튼 존이 이를 막으면서 린다 우드로를 구한 계기였다. 곧바로 서로 눈이 맞아 엘튼 존은 다음 블루솔로지 공연에도 보러 오라고 하면서 한동안 사이좋게 지내었다. 엘튼 존이 DJM 음반사에서 버니 토핀과 함께 작사/작곡가 직원으로 일하던..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엘튼 존' 영국의 음악가 엘튼 존 1947년 3월 25일, 런던 북서부 피너 출생. 당시 피너는 미들섹스 주에 속한 런던권 위성도시였으나, 1965년에 그레이터 런던으로 편입되었다. 출생 이름은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였다. 지금의 이름 엘튼 존(Elton John)은 6년간 활동하던 영국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의 멤버 "엘튼" 딘과 롱 "존" 볼드리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 1968년 3월 1일에 발매된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 음반에 표기할 이름으로 정했던 것으로 2개월 뒤, 5월 7일 스코틀랜드 공연을 끝으로 블루솔로지를 탈퇴하면서 당사자들의 허락을 맡고 이것을 예명으로 선택해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2년 1월 7일, 엘튼 허큘..
수입 맥주의 비밀
연기력, 카리스마, 아우라를 가진 독특한 배우 고현정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출신인 만큼 출중한 미모에 연기력도 좋고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성공해서 배우로서는 손색이 없다. 탑여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성격으로 예능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고느님'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오만불손하다'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그 누구에게 사생활이나 성격, 인성 뭐로 까이든 간에 작품에서 연기로는 까는 사람이 없는 배우.화려한 연기 경력이나 파란만장한 개인사 모두 통틀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야기거리가 많은 여배우 중 한명이다. 대표작으로 모래시계와 선덕여왕이 있다. 1989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 그런데 연기자로 데뷔는 KBS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주인공 집안의 딸인 말숙 역으로 했다. 미인대회 출신이면서..
포토샵 같지만 실제 직접 찍은 사진들
2차세계대전당시 미군이 사용한 단기외국어습득법
삼겹살 족발 곱창 돼지국밥의 진실
단군신화에 관한 고찰
자존감이 낮을수록 과소비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액션배우 이소룡 이소룡은 중국계 미국인 영화배우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인 아버지인 유명 경극배우 이해천(李海泉)과 중국계+독일계 혼혈인 어머니인 하애유(何愛瑜)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하애유가 홍콩의 4대 명문 가족 중 하나인 하동가족(何東家族)의 자손 중 하나라고 한다. 명문가의 자손인 셈. 아버지 덕분에 이소룡도 매우 이른 나이에 데뷔했는데, 갓난아기 시절부터 영화에 나왔을 정도였고 아역배우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예명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소해천이라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 친구가 길을 지나다가 길거리 경극 공연에서, "대룡이 소룡을 낳으니 곧 이어지는구나!"라는 대사를 듣고, 대룡이 이해천이라면 진번은 소룡이 어떻겠느냐고 권해서 지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몸이 약해서, 7살 되던 무렵 ..
후라이팬에 불 났을 때 대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