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엘튼 존'
본문 바로가기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엘튼 존'


2017. 7. 3.

영국의 음악가 엘튼 존 1947년 3월 25일, 런던 북서부 피너 출생. 당시 피너는 미들섹스 주에 속한 런던권 위성도시였으나, 1965년에 그레이터 런던으로 편입되었다. 출생 이름은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였다. 지금의 이름 엘튼 존(Elton John)은 6년간 활동하던 영국의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의 멤버 "엘튼" 딘과 롱 "존" 볼드리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 1968년 3월 1일에 발매된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 음반에 표기할 이름으로 정했던 것으로 2개월 뒤, 5월 7일 스코틀랜드 공연을 끝으로 블루솔로지를 탈퇴하면서 당사자들의 허락을 맡고 이것을 예명으로 선택해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2년 1월 7일, 엘튼 허큘리스 존(Elton Hercules John)으로 법적개명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음반을 발표하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거머쥔 살아있는 전설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음악을 만들어내며 끊임없는 창작력을 보여주는 진정한 천재 음악가이며 영미 음악계에서 거목으로 평가받는 음악가 중 하나. 그를 명칭하는 닉네임은 Rocket Man, Captain Fantastic. 영국의 작사가이자 엘튼 존의 음악에서 작사를 맡고 있는 음악적 동반자 버니 토핀과 1967년 6월 17일부터 장기간의 작사/작곡 협업을 이루고 있다. 버니 토핀의 닉네임은 Brown Dirt Cowboy. 2017년 6월 17일부로 협업 50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거둔 뮤지션 5위로 공인 집계되었다. 공인된 음반 판매량이 1억 6,700만 장을 넘고, 비공식 기록까지 합치면 2억 5,000만~3억 장에 이른다. 1~4위는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 6위부터는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리아나,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 AC/DC, 휘트니 휴스턴, 퀸, 롤링 스톤스, ABBA 등이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싱글 판매량을 거둔 뮤지션 중 하나.

2017년 기준으로, 1969년 1집 Empty Sky로 시작해서 발매된 모든 음반은 67장이나 한다. 이는 정규 앨범, 라이브 앨범, 사운드트랙 앨범, 컴필레이션 앨범, EP, 그 외 앨범까지 전부 합친 결과. 싱글은 솔로 명의와 듀엣, 블루솔로지까지 합쳐서 150장에 육박하고 피처링 싱글, 프로모션 싱글까지 포함하면 200장을 훌쩍 넘긴다. 또한 2017년 6월 기준으로, 공식적으로 발매된 모든 곡은 731곡이나 한다. 이는 라이브 실황을 제외한 솔로 명의, 듀엣, 피처링, 블루솔로지 등을 포함한 결과. 본인 명의로 발매된 곡은 538곡이고 그중 버니 토핀과 작업한 곡은 396곡이다. 발매 곡만 해도 700곡이나 하지만 미발매 곡까지 포함하면 1,000곡을 가뿐히 넘는다.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지만, 엘튼 존은 작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작곡가/가수(composer and singer)로 분류된다. 싱어송라이터의 정의에 따르면, 작곡뿐 아니라 작사까지 꾸준히 겸해야 엄격한 의미의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1968년 "틴 팬 앨리" 시절 때 작사까지 맡은 곡들이 상당수 있고 무명 시절 이후에도 가끔씩 작사에 기여한 적도 있어서인지 넓은 의미로 싱어송라이터로 분류하기도 하는 듯. 특히 1978년 12집 A Single Man에는 대부분의 수록곡이 엘튼 존 공동 작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세한 내용은 '게리 오스번' 문단 참고. 무명 시절 이후로 자신이 작사를 맡은 곡들은 Border Song의 마지막 구절, "Don't Go Breaking My Heart"의 일부,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의 대부분, "The Goaldiggers Song", "Flinstone Boy", "Song For Guy"를 포함한 대부분의 A Single Man 수록곡, "Cartier", "Queen" 등이 있다.

통상적으로 솔로 음악가의 데뷔 연도는 1집 정규 음반 발매 시점으로 치기 때문에, 첫 솔로 싱글 I've Been Loving You가 발매된 1968년이 아니라 1집 Empty Sky가 발매된 1969년을 데뷔 연도로 본다. 반면에 음악 활동 시작 시기는 <콜벳스>(The Corvettes)를 결성한 1961년이다. 콜벳스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아마추어 밴드로, 로큰롤/블루스 곡을 커버해 연주하며 피너의 교회, 클럽 등을 돌며 활동했다. 1962년 가을에 결성된 블루스 밴드 <블루솔로지>(Bluesology)의 전신이기도 한데, 콜벳스가 몇 차례의 공연을 끝으로 1962년 봄에 해체되었다가 6개월 뒤에 블루솔로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튼 존/1960년대 문서 참고. 블루솔로지 결성 3년 뒤 1965년 7월 23일, 블루솔로지의 첫 싱글 Come Back Baby를 발매했는데 이 곡은 레지 드와이트와 블루솔로지 명의로 발매된 싱글이며 엘튼 존으로 활동하기 3년 전이었다.


1970년대 빌보드 앨범 차트(빌보드 200)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뮤지션이다. 1972년 5집 Honky Chateau부터 1975년 10집 Rock Of The Westies까지의 연속 기록과 1974년 컴필레이션 앨범 Elton John's Greatest Hits까지 포함해 총 7장이 1위에 올랐다.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 역사상 최초로 "1위 데뷔(Hot shot debut)"를 이룬 뮤지션이기도 하다. 1975년 5월 발매된 9집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의 기록이고 7주 동안 1위로 머물고 있었다. 두 번째 기록도 같은 해 1975년 10월 발매된 10집 Rock Of The Westies가 세웠다. 이후 빌보드 200 차트 데뷔 1위의 세 번째 기록은 1976년 스티비 원더의 18집 《Songs in the Key of Life》이고 싱글 차트(빌보드 핫 100)에서 데뷔 1위 기록을 세운 곡은 1995년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2008년에는 빌보드 200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션 5위로 꼽히기도 했다.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1위 곡을 가장 많이 올린 뮤지션이고 가장 많은 곡들을 진입시킨 뮤지션이다. 1위로 오른 곡들은 15곡이며 카펜터스와 동률. 진입한 곡들은 72곡이고 2위는 64곡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이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라고 해서 한국의 성인가요를 연상하면 안 되는 것이, 1990년대에는 R&B가 이 차트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고 2000년대에는 전자음악의 요소를 지닌 곡들이나 인디 록 음악도 수시로 진입하는 등 적어도 차트에서는 음악 장르 정의가 모호하다. 그냥 록이든 팝이든 경력 있는 뮤지션들은 이 차트에도 오른다고 봐도 된다.

1997년 9월 13일 발매된 다이애나 스펜서 추모곡이자 기존의 Candle In The Wind를 개사한 Candle In The Wind 1997 싱글은 다수의 국가에서 1위로 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여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5,0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CD 싱글, 1950년대 싱글 차트가 생기고 나서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팔린 싱글이다. 이는 기네스북에도 공식적으로 오른 것이다. 미국과 영국 역사상 최초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자 동시에 미국에서 유일하게 다이아몬드를 기록한 싱글이기도 하다. "White Christmas"는 1950년대에 발매된 곡으로 반세기 동안의 판매량을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집계량을 보자면 "Candle In The Wind 1997"가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왓포드 FC의 팬이다. 1976년에 팀을 직접 사서 1976~1987년과 1997~2002년 두 차례에 걸쳐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있다.

1979년 5월 1~6일 이스라엘, 20~28일 소련에서 투어를 진행한 첫 번째 서방국가 록 뮤지션이며, 소련에서 앨범을 발매한 첫 서방국가 뮤지션이다. 1978년 12집 A Single Man의 제목을 《Elton John Sings' in Russian》으로 변경해서 발매한 것.


1992년 3월 엘튼 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 EJAF)을 설립했으며 사회적 소수자 인권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이 재단 주최로 1993년부터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함께 개최되는 후속 파티(Elton John AIDS Foundation Academy Awards Viewing Party)의 호스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인맥의 핵심 인물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1992년 버니 토핀과 함께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199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단독으로 입성했다. 2013년 버니 토핀과 함께 조니 머서 어워드(Johnny Mercer Award)를 받았다. 이 상은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서 부여하는 특별상 중 최고 권위의 상이고 특별상 중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뮤지션만이 대상이 되는 유일한 상이다.

1996년 '음악과 자선활동에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았다. 1998년 신년 서훈 명단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대상자로 올라, 1998년 2월 24일 '경(Sir)'이 되었다. 엘튼 존보다 먼저 기사작위를 받은 뮤지션은 클리프 리처드(1995년 서임), 그리고 폴 매카트니(1997년 서임) 둘 뿐이다. 둘 모두 196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뮤지션으로, 엘튼 존의 선배이다. 기사작위를 받은 시기가 다이애나빈 사망 및 Candle In The Wind 1997의 대성공과 맞물리는 바람에 이 기사작위의 가치를 폄하하는 시각도 있는데, 대영제국 훈장 문서에서 뮤지션의 서훈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엘튼 존은 기사작위 바로 아래 훈격인 3등급 CBE 훈장을 받은 두 번째 뮤지션이다. 엘튼 존 이후로 CBE는 비지스의 3형제가 6년 뒤 2002년에 받았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Candle In The Wind 1997"이 없었대도 엘튼 존이 기사작위를 받는 것은 멀지 않은 일이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데뷔 25년 경과라는 헌액요건을 충족하자마자 헌액되었고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뮤지션 중 가장 먼저 기사작위를 받는 등 뮤지션으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를 다 누린 것처럼 보이지만,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에는 상복을 정말로 못 누린 뮤지션이었다. 주요 음악상 시상식에서 노미네이트(수상 후보)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으로, 특히 1970년대에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11번 노미네이트만 되고 수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0년대 시점으로 그래미 수상은 5차례밖에 없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업적이 재평가되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등 굵직한 행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제대로 대접받는 편이다. 자세한 상훈 내용은 '수상 및 서훈 내역' 문단 참고.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1976년에는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가 1988년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했다. 2005년 12월 21일, 시민결합이 허용되자 1993년 10월부터 12년간 사귀던 캐나다의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 법적 파트너가 되었고 2014년 3월부터 영국과 웨일스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해지자 그해 12월 21일 결혼했다.

과거에는 선글라스와 의류 같은 패션 상품이나 차량, 꽃 등의 수집광으로 유명했지만, 2010년대 들어서 그런 걸 사 모으는 건 이제 지겨워도 새로운 음악을 듣고 음반을 모으는 것은 여전히 즐겁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6일, 애플 뮤직 Beats 1에서 라디오 방송 "Rocket Hour"의 진행을 맡아 DJ로 데뷔했다. 본인이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것을 워낙 즐기다 보니, 해외는 물론이고 한국의 팝/록 음악 마니아들에게까지도 선곡이 좋다고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17년 6월 5일, 100회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