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꿰뚫어 본 세종 대왕의 음악가 정신
본문 바로가기

21세기를 꿰뚫어 본 세종 대왕의 음악가 정신


2014. 7. 13.

정축(丁丑)년인 1997년은 1397년 4월 10일에 탄생하신 세종 대왕 탄신 제 6백년이 되던 해였다. 세종 대왕은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22세의 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올라 예악(禮樂)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구현한 임금이다. 뿐만 아니라 예부터 내려온 정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고 황폐화된 문화 예술을 바로 잡아 국가가 평화롭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고려 중엽부터 세조에 이르는 3백여년 동안은 중국계 음악이 상당히 성행했던 시기였다. 이것은 온 국민이 중국계 의식 음악 을 즐겼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궁중에서만이 중국 음악에 편중 되어 있었으며 국민들은 우리 나라 전래의 향악(鄕樂)을 즐겼다.이와 같이 중국 음악 일색이던 궁중 의식 음악을 정비, 개선하는 작업을 세종 대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과감히 단행하였다. 즉 중국에서만 의존하였던 악기를 제작하고 세종 대왕 스스로 작곡도 하였으며 동양 최초로 음의 싯가를 표시 수 있는 기보법인 정간보를 창안하는 등 대음악가로서의 면모를 발휘 하였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의 적극적인 음악가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많은 기록들이 남겨져 있다. 많은 기록들 가운데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아악은 본래 우리 나라 음악이 아니고 중국 음악이다. 중국 사람이라면 평소에 들었으므로 익숙하여 제사때 연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는 향악을 듣고 죽어서는 중국계 음악인 아악을 듣게 되니 어찌된 일인가?> (세종실록 권 30)



<박연이 중국계 아악을 중심으로한 조회악을 바로 잡으려 하나 어려울 것이다. 우리 나라 음악이 비록 최선은 되지 못하나 중국에 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으며 중국의 음악이라고 해서 어찌 그 음악이 바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 권 50 )



이와 같이 세종 대왕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중국에서 문화와 예술을 수용하되 우리에 맞도록 수정하는 즉 우리 나라化 시켜 외국 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이나 모방을 지양하는 그야말로 21세기의 음악가 정신을 보여주었다.
세종 대왕은 그야말로 주체 의식이 있는 음악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삼대 악성 중 한 명인 박연을 중심으로 남급, 정양에게 중국계 음악인 아악 이론을 정리하게 하고 아악기 제작에 힘 쓸 것을 당부하였다. 즉 세종 7년 가을에는 중국계 아악을 연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만 그때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제작할 수 없었던 편경의 재료인 경석을 경기도 남양에서 발견하였다.


그 이후부터 악기 제작소를 두어 중국의 편경에 뒤지지 않는 맑은 소리의 편경을 직접 제작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금, 슬, 생황 등 많은 아악기와 향악기인 거문고, 가야금 등도 같이 만들었다.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종 대왕은 궁중음악이 중국계 음악에 편증됨을 걱정하면서도 아악 이론 정리와 아악기 제작 사업을 지원한 일은 세종 대왕의 큰 도량에서 온 소치이지 결코 그로 말미암아 향악을 푸대접한 것은 아니다.세종 대왕은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27년 4월에 용비어천가를 지어 반포한 뒤로 향악의 창제를 결심하여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를 나타내었다. 세종 대왕은 향악을 일으키는데 주동역활을 한 것을 우리는 다음의 글귀로 엿볼 수 있다.


<종묘, 조회, 공연에 쓰이는 음악은 전조(前朝)의 여러 가지 음악을 주워 모은 까닭으로 대단히 미비하니 이제 새로 여러 음악을 정하고 옛 음악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가감하여 정한다.> (세종실록 권 126)



이 시기에 새로 지어진 음악은 발상, 정대엽, 보태평, 여민락, 취화평, 취풍형 등 대작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새로운 음악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세종 대왕이 직접 참여했다는 사살은 다음 기록들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신악(新樂)을 의정부와 관습 도감에서 함께 보고 가부(可否)를 말해 주면 내가 손익(損益)을 하리라,> (세종실록 권 126)


<임금은 음률(音律)에 밝으시어 신악(新樂)의 절주(節奏)는 모두 임금이 몸소 지은 바로 막대로 박자를 짚어 장단을 삼고 짧은 기간 내에 이를 정하였다.> (세종실록 권 126)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삼대 악성의 한 사람인 박연이 중국 음악 이론을 정리하였다면 전통적인 우리 음악인 향악을 지켰으며 새로운 창작 음악을 일으킨 대음악가로서의 세종 대왕의 음악적 업적을 세종 탄신 6백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상기해 봄으로써 그 분에 대한 하례(賀禮)를 대신하자.


고려시대의 전통음악


황진이의 사랑 노래, 황진이의 시조들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시대 왕들


조선시대의 다빈치, 천재 정약용


[역사]발해의 문화, 발해의 역사


곰 몰락한 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비참하고 불운했던 광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