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y Metal의 생성(∼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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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Metal의 생성(∼1960)


2014. 6. 22.

1.Heavy Metal의 생성(∼1960)


1)HM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HM은 블루스(Blues)와 로큰롤(Rock'N'Roll)이 합쳐진 것이다. 브리티쉬 HM(British HM), 엘.에이. 메틀(L.A. Metal), 스래쉬 메틀(Thrash Metal), 데스 메틀(Death Metal) 등 아무리 수많은 장르로 나뉘어졌다고 할지라도 HM의 기본은 블루스와 로큰롤인 것이다. HM이란 용어가 쓰이기 전 까지는 보통 Hard Rock(이하 HR으로 약칭), 또는 Heavy Blues(이하 HB으로 약칭)으로 불려졌는데, 그 어원은 바로 '강한 로큰롤', '무거운 블루스'라는 뜻 그대로 블루스와 로큰롤에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HM이란 용어는 72년 뉴욕의 밴드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YSTER CULT)가 데뷔했을 때 매니저인 샌디 펄먼이 다른 밴드와의 차별성을 위해 만든 단어로 미국의 작가 윌리엄 배로즈의 소설 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비록 일개 밴드의 캐치프레이즈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단어만큼 젊은이들의 의식을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 등 몇몇 예를 빼고는 없을 것이다.

2)HM의 고향은 영국(英國)이다!

아시다시피 블루스는 흑인의 음악이다. 그리고 로큰롤은 이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가 합쳐진 것인데, 공교롭게도 미국을 고향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예에서 보듯 백인들에게 총애(?)를 받은 로큰롤이 50년대를 선풍적으로 휩쓴 반면에, 고통에 찬 삶을 애절하고 우울하게 표현하는 블루스는 아직도 흑인들에게만 애호되고 있었다. 그런 음지에 머물고 있었던 블루스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전혀 새로운 지위를 확립시켜 준 것은 영국의 뮤지션들이었다. 존 메이올, 알렉시스 코너로 대표되는 이들은 인종차별의 영향이 아직도 강했던 미국-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공립학교에서조차 흑인은 거부당했었고, 진정한 평등이 시작된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이후, 즉 6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였다-보다는 흑인에 대한 감정이 공평했었고(아니 거의 경의에 가득 찼다), 흑인 뮤지션들은 본국보다는 오히려 유럽에서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여하튼 이 두 사람은 열심히 블루스의 지위 확립에 힘을 기울였으며, 그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영국적인 향취가 덧붙여진 화이트 블루스/블루스 록(White Blues/Blues Rock)는 다시 미국으로 역수입되기에 이른다.

또한 그들은 그 휘하에 제프 벡, 브라이언 존스, 찰리 와츠, 믹 테일러 등을 키움으로써 초기 HB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의 3대 기타리스트와 그들이 모두 관여했던 YARDBIRDS와 CREAM, 그리고 그보다는 약간 후대인 LED ZEPPELIN, DEEP PURPLE, BLACK SABBAT H가 등장하면서 영국은 HR/HM의 탄생지(誕生地)로 대접받기에 이른다.

3)왜 CREAM인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블루스를 발전시킨 사람은 영국의 백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백인의 감성은 흑인과 같을 수는 없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테크닉으로 무마시키려 하였으니, HR은 이러한 백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발생했다. 즉 존 메이올과 알렉시스 코너에게서 사사(事師)한 젊은 뮤지션들은 테크닉을 더욱 연마시켰던 것이고, 그들의 힘에 입어 그때까지 단순한 3코드의 4소절의 연속이었던 블루스는 근대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의 전위(前衛)에 위치한 그룹이 1966년 결성된 CREAM이다. '신(神)의 손'이라 불리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 베이시스트 잭 부르스, 드러머 진저 베이커의 단 세 사람으로 구성된 CREAM은 그때까지의 음악의 개념을 바꾼 밴드로 칭해질 만큼 다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일례로 이들이 상용한 거대한 기자재(機資材:Equipment)의 벽과 더블 베이스 드럼을 중심으로 한 무대 구성은 현대에 있어서도 거의 모든 밴드들이 그대로 답습(踏襲)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연주였다. 원래부터 테크니션으로 알려져 있었던 만큼 이들은 특히 라이브에 강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이 세 사람은 즉흥연주(卽興演奏:Improvisation)라는 새로운 정형(定型)을 완성해내었다. 산처럼 쌓인 앰프와 스피커에서 토해내는 거대한 음량과 서로 불꽃을 피우는 세 사람의 경쟁적인 즉흥연주는 그때까지의 정격적(正格的)인 화이트 블루스/블루스 록에 적극성과 공격성을 가미함으로써 HR으로의 이행(移行)을 예고했다 .

4)지미 헨드릭스의 등장!

아쉽게도 CREAM은 2년 뒤인 68년 해산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방향성은 뮤직 씬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니, 곧이어 SAVOY BROWN, KILLING FLOOR, 10 YEARS AFTER, FREE, FLEETWOOD MAC 등이 나타났고, 그들은 CREAM이 제시한 새로운 브리티쉬 헤비 블루스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HM의 진정한 발전은 한 천재적인 기타리스트가 출현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의 이름은 지미 헨드릭스, ANIMALS의 채스 챈들러의 눈에 띄어 66년 뉴욕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흑인 청년이었다. 왼손잡이인 그는 그의 독특한 연주 모습만큼이나 새로운 발견을 하였는데, 바로 퍼즈 페달을 사용한 디스토션(Distortion)에 의한 왜곡된 기타 사운드였다. 뒤틀리고 변태적인- 물론 그때의 기준이다 -그리고 힘이 넘치는 무거운 음은 문자 그대로 '추(醜)함의 미학(美學)'이었다.

그는 그의 짧은 생애동안 신이 자신을 세상에 내려보낸 의무를- 새로운 사운드의 가능성을 열어준 실험을 차례로 보여주었는데, 기타에 불을 지른다거나, 기타를 이빨로 연주한다거나하는 파격적인 라이브에서의 연주양식(演奏樣式) 등은 여타 장르와는 다른 독특한 성질과 특성을 오늘날의 HM에 부여해 주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전설(傳說)'로 승화시킨 최초의 HM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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