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발라드계의 감성변태 '유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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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발라드계의 감성변태 '유희열'


2017. 5. 7.

유희열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가장 성공한 대중 음악인 중 한명이 된 사람이다. 김동률, 이적, 신승훈, 윤종신, 김현철, 윤상 등과 함께 한국 발라드의 정립자라 불리우는 유재하의 후계자 자격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는 평가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으로 유재하를 이어받는 탁월한 작곡-작사-연주 능력을 인정받는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을 했다. 90 학번인데 2004년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여 마음고생을 하다 예민한 소년들이 흔히 그렇듯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작곡가 지누의 증언에 따르면 고교시절에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 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사실. 유희열 본인 말로는 소위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다고.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가족들(함께 살던 어머니와 형)과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그는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감성을 발견하게 된다. 피아노는 고3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여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다.


여담으로 고3 시절 現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박승동(당시는 경복고 교사)이 담임 선생님이였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유희열이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게 데모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꺼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걸 할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한다. 후에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몰랐던 백지 상태에서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니... 대학 재학 중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란 곡으로 대상 수상.
물론 이로 인해 학업은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클래식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클래식에 대해선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서 학교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그 곡에 대한 작곡가와 이름을 맞추는 시험을 볼 때 딸랑 한 문제만 맞췄는데 그 곡을 맞춘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황기순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춘 것이 기억나서 맞췄다고 한다. 
반면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이미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이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추측된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인기있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이다.

음악행보의 시작은 인디밴드 키보디스트였다. 김장훈이 이끄는 밴드인 <김장훈과 한국사람>이였는데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MBC 명랑히어로 '김장훈 편'에서 밝혔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다고...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김장훈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Final Countdown'을 삐딱한 자세로 무심하게 연주하는 유희열을 보며 '쟤 어쩜좋냐' 싶어 자신이 거두었다고 한다. 근데 정작 김장훈은 유희열을 가두어두고 하루종일 반주만 시켰다고.


이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후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였다.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김현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인이 밝혔다. 윤종신, 이승환 등과 함께 작업을 하던 프로뮤지션으로서의 초창기 시절 유희열은 작곡과 프로듀싱만을 전문적으로 하기를 꿈꾸었으나, 김현철이 '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고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보아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이후 이승환 4, 5, 6, 7집, 이문세 10집, 이소라 2집, 윤종신 5집 등에 참여하여 작사, 작곡, 프로듀싱등의 음악활동을 펼쳤다.

이후 1996년 발매된 토이 2집부터 토이를 원맨밴드로 전환하게 되었고,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특유의 변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다. 그 외에 1999년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내기도 했다.

토이 2집 발매 직후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적이 별밤지기를 맡았던 시절 첫 잼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이적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자기가 헤어진 첫 사랑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르다가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터뜨리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이적도 상당히 진땀 뺐다는 후문. 이 때 '별밤 잼 콘서트에서 막 운 사람'으로 처음 유희열을 접한 이들도 꽤 된다고 하더라.


유희열의 특징은 '자뻑+변태 중년' 캐릭터가 대중에게 기묘하게 호감으로 먹힌 케이스. 유려한 말빨과 겸손하고 개념있는 행동 등으로 까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가끔 인터넷에 얼굴가지고 까는 사람이 있다고 라디오에서 밝힌 바 있다. 팬들 사이에 통하는 통칭이 감성변태.

작곡하는 곡마다 하나같이 난이도가 괴랄하다는 특징이 있다. 가수 죽이려고 만든 노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일례로 위 기사에서 예시로 나온 안녕 나의 사랑이라는 노래에서 성시경이 언제 쉬는지 들어보자.

주위에 트위터를 하는 지인들이 많은데, 반대로 이 사람들처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하고 있지 않다. 본인 스스로는 기계에 약해서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를 쓰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라디오에서는 음표를 찍느라 바빠서 트윗을 할 시간 없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핑을 자주하는 듯하며 인터넷상의 유행어를 스케치북이나 라디오천국에서 자주 선보인다. 하지만 라디오 사연에서 SCV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무슨 의미인지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1박2일에 출연했을 때 게임 문제 때문에 김종민에게 패배했다.

개그맨 신보라와 외가쪽으로 6촌 사이란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신보라가 데뷔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유희열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 방송국에서 봐~' 라고 하길래 유희열은 방청 온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TV에 나온 신보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후에 둘이서 싼타페 cf를 찍었다.


최근에는 문명 5에 나오는 정복왕 간디와 합성된 '유희열 사태'가 미친듯한 싱크로를 달리고 있다. "순순히 카라를 내놓는다면 유희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결국 유희열 사태에 대해 알아 버렸다. 포인트는 개그대신 노래욕심.

신동엽의 후계자. 초/중/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경복고 방송반 선배인 신동엽이 인정한 변태라고 한다. 신동엽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이 중학생때 진명여중 퀸카랑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걔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거지?"라는 호기심에 방송반으로 데려왔다고.해당영상 2분 45초부터.

이런 인맥 관계로 신동엽은 1990년대 중반 자기가 진행하던 MBC 표준FM <내일로 가는 밤>이라는 야간 라디오 프로그램에 당시 무명이던 유희열을 고정 패널로 채용하기도 했다. 
스스로 '병든 차인표'라고 칭하는것도 모자라, 스스로 앤드류 넬슨, 유스케 산타마리아와 닮았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케미스트리가 라디오천국에 출연했을때 인정했다. 심지어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시절 코너 이름을 차인표가 출연하는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를 패러디한 '벼래별게 내 가슴에'였었다. 라디오천국 진행 당시 열심히 밀던 호칭은 '기무타꾸' UV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유희왕이다. 뭐가 왕인지는 생략...

예능중에서는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듯, 자기가 나오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외에 라디오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유일한 예능, 여성에 어필하는 법을 무한도전 레슬링특집에 비유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헬스클럽을 다닌적이 있는데 유희열의 트레이너가 유희열을 부르는 호칭은 "혈님"

한편, 유희열의 어머니는 한복 디자이너로 유명한 오이순 한국 의생활 문화원 원장이시다.

최근에는 진중권, 윤종신과 서로 외모 논쟁에 들어가고 있다."진중권과 윤종신의 외모논쟁은 전파낭비"

아이유와 함께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눈을 감고 발을 뻗은 모습이 캡쳐되었는데... 아이유와 하도 얽혀서 매의 눈이란 기믹이 새로 추가되었다.

TV 전문 매거진으로 유명한 텐아시아에서 새로운 유행어로 희르가즘을 만들어냈다!!! 희르가즘의 정의는 직접 가서 보길 바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베스티즈의 한 네티즌이 만든 용어에 정의를 붙인거지만 센스가 좋다.



아끼는 후배들을 누구보다 더 잘 챙겨주는 거 같다. 에픽하이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오랜만에 출연 했을 때, 타블로 손을 잡고 변태눈빛으로 "이렇게 무대 위에서 보니깐 좋아요."라고 약간 울컥하는 어투로 말했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후배가 무너질뻔 했다는게 안타까웠던 듯. 대기실에서는 타블로를 야하게 엉덩이를 만졌다고 한다. 유희열의 말로는 "아끼는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면 그렇게 만진다."라고 말했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는 초대 시장 신해철의 후임으로 DJ를 맡게된 유희열의 첫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즉 2대 시장. 1997년 10월부터 2001년 3월까지 프로그램 진행을 했는데 게스트들이 엄청 화려했었다.

유희열의 정신적 지주 김장훈을 비롯, 윤종신, 전태관, 김종진, 장필순, 한동준, 윤상, 김광민, 이현우, 이적, 김진표, 이소라 등 깊이있는 음악과 동시에 20대 시절의 유희열과 게스트들의 정신세계를 여과없이 보여주던 프로그램. 지금도 많이 저질이지만 홀몸이던 그 시절에 그에게 두려움이란 없었다. 오프닝 시그널은 Blonker의 Traveling. 막방에서 그야말로 폭풍눈물을 쏟아냈는데 당시 녹음한 음성파일이 아직도 인터넷 상에 돌아다닐 정도로 청취자에게도 큰 반향이 있었다. 나중에 2011년 성시경이 시장이 되면서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막방 공개라는 '굴욕'을 당한다.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신해철의 대중적 인기가 높은 편이었고 고정팬도 많았던지라, 또한 아직 유희열의 메인DJ로서의 역량이 분출되기 전이라, 살짝 어색+버벅대기도 하고, 실제로 다신 음악도시 안 듣겠다고 글 올리거나 보내는 이도 많았다고. 본인 스스로 방송에서 그런 반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 그의 이름을 잘못 듣고,가수 유열이 진행하는걸로 착각한 사람들도 한동안 많았었다고. 
고 신해철이 진행하던때는 사이비교단 같던 분위기가(나쁜뜻이 아니라 진행자의 카리스마가 그 정도라는 뜻) 유희열로 넘어가니 시골 동네 반상회같아졌었다. 두 DJ의 놀랍도록 비슷한점은 낮에 안틀어주는 좋은 음악을 틀었다는것.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음악을 엄청 내보냈다.
네이버에 이름만 치면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대에는 유희열이 추천하는 뮤지션의 음반을 교보 핫트랙스에 직접방문해서 ABC순으로 진열된 CD중 찾아서 구입하던 시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쯤 되면 ABC순이 아니라 교보 핫트랙스 광화문점의 월드뮤직 코너에가서 직원에게 문의해서 재고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던 시대.

첫 방 오프닝이 나름대로(?) 레전설이다.이 오프닝을 언젠가 다시 틀었던 적이 있는데, 이 날 게스트로 나왔던 이적은 웃다가 혼절했다.
특이하게도 코너 중에 "알고 싶어요"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다름아닌 "아우성"으로 유명한 구성애가 고정게스트였다고 일종의 성(性) 상담 코너 같은 것이었는데, "우리도 성에 대해서 너무 터부시하면 안된다."라는 취지에서 배워보자는 차원이었다고. 지금과는 달리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나름 파격적이었을 수밖에...

신해철이 음악도시를 진행하던 시절엔 게스트로 매주 출연했는데,아직 대중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신비주의 작곡가였던 그가 연신 이미지를 깨는 발언과 드립을 양산하자, 애청자들 사이에선 그의 이름을 '유희얄'로 부르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또한 가수 이름과 곡 제목을 워낙 많이 틀려서, 신해철이 그걸 잡아주면서 약올리는 것도 나름 코너의 재미였다. 유독 이나중 탁구부에 집착하던 것도 이 시기의 특징.

참고로 유희열이 MBC라디오에 복귀할 때, 과거 음악도시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는데, 12시에 진행하던 이소라의 음악도시가 10시로 당겨졌고, 이소라 전에 음악도시를 진행했던 유희열의 올댓뮤직은 12시부터 1시까지 방송되었으며,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이 방송되었던 것이다. 즉,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5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의 음악도시 시장들이 줄지어 방송을 했던 것.

그 이후 2014년 4월 중반까지 4대 시장은 성시경이었으며 취임 1주년을 맞아 2012년 6월 1일 '영빈관' 코너에서 유희열이 출연했다. 이때 코너 오프닝곡으로 2대 시장의 권한으로 신청곡을 틀었다. 바로 이시대 최고의 댄쓰곡은 모다?. 하지만 성시장의 막방 카운터펀치로 "유희열 씨의 라디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자료를 저희가 준비해 봤습니다"라며 대응했다.

유희열의 올댓뮤직 All That Music은 과거 음악도시 DJ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희열이 오랜만에 라디오에 복귀하여 진행한 MBC FM4U에서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 오전 12시부터 오전1시까지 2002년 10월부터 시작, 2004년 4월에 DJ직을 그만두었다. 유희열의 회고에 따르면 역대 라디오 방송 중 제일 재밌었던 방송이었다고.


당시 이 이전 방송은 이소라의 음악도시였고 그 다음 방송은 전임시장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이었다. We are the Children of Darkness! 그야말로 공전불후 최강의 라인업. 다만 유희열의 방송시간은 다른 두 DJ와는 달리 1시간으로 절반가량이었다.

오프닝 뮤직은 Fantastic Plastic Machine의 Philter. 당시 여러 방송중 스타일리쉬한 곡을 틀어주던 그러한 방송이었다. 공중파 라디오에서 시부야계 음악이나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대중적으로 알린 프로그램은 올댓뮤직이 거의 처음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했을 정도.

오늘날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라디오천국의 전신으로 여겨지는데, 특유의 루저정서와 안 생겨요 정서를 방송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 얇은 다리에 알만 톡 나와 있어서 '곤봉다리' 등의 특유의 자학개그도 인상적이다.

ATM을 듣는 사람들을 만나면 두 손가락을 콧구멍에 꼽고 "ATM!"DMC
이라고 말해야 하는 룰이 존재했다. 특히, 뿜자에서 솔로들을 처절하게 울렸던 She's gone, All by my self 등이 이를 잘 상징한다. 특히 이런 곡들은 원키로 부르게 했다... 농담으로라도 듣기 좋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참고로 반주는 유희열...

사실 ATM은 과거 음악도시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첫째로, 팩스, 엽서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라디오 매체가 인터넷으로 전환되며 라디오DJ 유희열의 얼굴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된 것. 심야 라디오에 더없이 어울리던 유희열의 목소리와 발음에 반해 그를 검색해본 사람들을 충공깽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DJ본인의 성향보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급변했었다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연륜이 더해지며 보다 더 능글맞아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음악도시와 ATM 두 방송의 막방을 비교해보면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진다. 울먹거리는 청년의 순수한 모습과 능글거리는 총각의 모습. 실제로 ATM 막방에 이런 말을 했다. "음악도시 막방에 찔찔 짰던 게 너무 창피하다"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뮤지션답게 무한도전의 가요제에 초대되었다. 그러나 취급은 영... 마치 정재형이 그러하듯 첫번째로 입장하여 멤버들에게 맹폭을 당했다. 못친소부터 변태라느니는 기본이거니와 하이라이트는 노홍철의 신발 들이밀기 게다가 뒤에 BoA가 입장하는 바람에 무대에서 테이블로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 때 음악후배 길(리쌍)이 멤버들을 열심히 말렸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이 후 유재석의 불타오르는 '24시간이 모자라' 무대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더니, 유재석과 파트너를 이루었다. 야동에 감성을 버무렸다고... 알다시피 유희열은 가창력이 정말 떨어진다. 안습.

감성변태와 날유의 만남이었기에 둘의 변태성으로 작업이 순조로울 것이라 예상했던 모양이지만, 유재석의 한결같은 댄스 사랑에 진저리를 쳤다. 결국 백분토론까지 하며 유재석을 R&B알약으로 치료할 것이라 선포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유재석은 댄스댄스댄스 노래를 부르고 있어 앞날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작곡한 멋들어진 R&B와 표절(?) 댄스곡의힘으로 유재석을 설득하는데 성공, 발라드그룹 하우두유둘을 결성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와 유재석의 저질스런 가창력 선상파티에서는 유재석에게 리드보컬을 넘기고 백댄서를 하며 괴이한 체조댄스를 추는 등 개그를 책임졌다. 점수는 56점...

결국 김조한을 섭외하여 가르침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유희열과 김조한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대비되자 스스로도 좀 창피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고... 이 후 김조한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이 노래를 솔로로 부르기도 했다. 물론 반응은 말할 필요가 없다.

무한도전을 위해 곡을 세 곡이나 써주었다. Please don't go my girl, 댄스왕, '그래, 우리 함께'. 그래서인지 살이 쪽 빠졌고 방송에서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비춰주었다. 일명 "완건조 차인표"라고...

유재석에게 물든 것인지 오히려 본인이 댄스 뮤직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무대에서도 그만 유일하게 스탠딩 마이크를 이용한 춤을 추었다. 나름대로 열창을 했지만 알앤비 대디의 평은 역시 유재석보다도 한 수 아래 유재석 45점 유희열 43점.... 물론 그의 작곡 능력은 본인 말마따나 '쓱 써서 팽 풀어' 명곡이 나오는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그보다도 가창력이 정말 안구에 습기가 차 이슬로 떨어질 지경.

K팝 스타에서는 시즌 1~2의 심사위원이었던 SM엔터테인먼트의 보아를 대신해 안테나 뮤직을 대표하여 시즌3의 새로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유희열의 심사위원 합류는 신의 한 수', '시즌3의 실질적인 우승자는 유희열'등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시즌 3 첫방 당시 동시간대 타 방송과 시청률 경쟁이 뜨거워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참가자들 실력이 시즌2보다 한단계 높다는 점과 심사위원의 심사멘트가 시즌2의 보아보다 낫다는 평이 주로 지배적이다. 또한 거대 기획사에 맞서는 소규모 기획사 안테나 뮤직이 들어옴으로 인해 싱어송라이터나 인디 밴드에게 갈길을 제공해준다는 긍정적인 평도 같이 얻었으며 정작 시즌3 보다 유희열이 더 떠버리는 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반대로 SM이라는 최고아이돌들이 속해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최대 기획사가 빠지고 소속가수들이 상당히 적은 조그만 기획사가 들어온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아주 극소수의 의견도 존재한다. 

본인만 고사하지 않는다면 이후에도 무난히 심사위원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고 실제로 3인체재로 가게 되었다.역시 첫화부터 진솔하면서 날카로운 심사평을 들려준다는 평. 아무래도 아이돌 중심적으로 평가하는 박진영, 양현석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심사하는 모습이라 참가자 심사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3,4기의 2등,3등은 해당 시즌이 종료한 후 계약을 맺거나(3기) 본인들의 선택과 기획사의 의중이 일치해(4기, 예외가 적용) 계약을 맺었고 5기의 우승자는 우승 확정 직후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인 기획사 선택에서 안테나 뮤직을 택해 소속 가수가 되었다.

또한 JTBC에서 방영하는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MC를 맡게 되었다. 무한도전 가요제 참가 당시 시종일관 티격태격거리며 중간점검 당시는 공동 진행자 역할을 맡기도 한 당시 파트너 유재석과 공동 진행이다. 유재석의 첫 종편 데뷔작이기도 해서 관심을 한몸에 받고있는 상황.


그리고... 팀장이면서 동네북 신세가 돼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사방에서 탈탈 털렸다. 유재석이 칠판에 글씨를 쓰는 유희열을 보고 학원 선생님 같다고 놀린 건 애교 수준일 정도로. 유재석 팀이자 후배 작사가인 김이나에게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존중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유희열 사생활) 생각을 하면 제 손이 더 떨려요"라고 까였고, 방송의 적에서 농락했던 후배 존박(역시 유재석 팀)에게는 "(노래를) 희열이 형처럼 하느니 안 하는 게 나아요", (유희열이 아이돌 그룹에서 외모가 딸리는 멤버가 메인보컬감이라고 하자)"근데 형은 왜 노래 못하세요?"라고 디스당했다. 심지어 같은 팀인 허경환과 신사동 호랭이한테도 디스당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1차 역주행 송 경합에서 져서 유재석의 랩이 들어간 역주행 송을 1주일간 벨소리로 써야 했고, 그 다음주에 또 져서 무대 중앙에서 무릎꿇고 손들고 벌을 섰다.

초반 시청률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유재석과의 케미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15년 10월부터 2016년 7월 종영까지 완벽한 진행으로, 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가 활동을멈춰 지금은 거의 잊혀질 뻔한 많은 추억의 가수들을 소환하여 많은 이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다른 뮤지션과의 관계중 신해철과는 애증(?)이 겹친다. 유희열이 "신해철의 음악도시"의 후임DJ로 활동한 초창기, 기존의 팬덤으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아 적잖은 마음 고생을 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물론 이후 명실상부한 2대 음악도시 시장으로 활동했다.

신해철의 경우 그런 유희열에게 바치는 노래로 넥스트의 싱글 "희열, 나 여기 있어(Here I stand for you)"를 발표했다는 드립을 친다. 본인들도 이 음악을 라디오에서 틀 때마다 이 드립을 수시로 날린다.

그리고 유희열은 그런 신해철을 "마지막 로맨티스트"의 보컬로 토이 앨범에 참여시켰다. 국내 가요 역사상 가장 느끼하다고 평가받는 곡 가운데 하나로, 신해철은 이 노래를 부르며 '얘도 제 정신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유희열은 초반부 신음소리에 가까운 애드립을 넣는 신해철을 보며 '역시(?) 신해철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곡의 마무리에 반주가 끝나고 "됐냐?"라는 신해철의 물음에 "예"라고 답하는 유희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문닫는 소리로 음악이 끝이 나는데 볼륨을 높일 경우 신해철이 나지막하게 내뱉는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7집 Da Capo의 마지막 트랙 '취한 밤'은 앨범 완성 후이자 신해철 사후 만들어진 곡이다. 포토그래퍼와 앨범에 쓰일 사진에 대해 논의하다가 신해철의 부고를 듣고, 다 필요없다며 엎어버리고, 술에 만취하고는 집에 돌아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게, (신)해철이 형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그 감정으로 곡을 쓰더라"면서 "참 그 형 답더라. 과거에 나를 라디오 <음악도시>로 불러준 형이었는데 가는 상황에서도 내게 곡을 한 곡 주고 갔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김장훈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여친을 사귀고자 했던 유희열을 소개팅으로 낚아 "한국사람"이라는 인디밴드의 키보디스트로 활동시킨다. 즉, 여자 소개시켜준다고 했던 자리에 여자 대신 나와 있었다. 이후 연습 과정에서 김장훈이 유희열을 감금하기도 하는 남고생감금사건(?)이 자행 되었다고.

그렇다고 유희열이 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한손으로 하기 싫은 티 팍팍 내며 공연을 하거나 공연 직전에 잠적하기도 했다고 한다. 약속시간에 늦는 게 잦아 다른 밴드 인원들이 그동안 당구실력이 100이 넘게 늘었다고. 이때 유희열은 "형, 난 리베로야"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어쨌든 친하긴 친하다. 김장훈이 잠적하는 등 여러 기행을 벌일 때 관련자들이 유희열의 집에 전화를 걸며 김장훈 어딨냐고 묻기도 했을 정도로.
1996년 3집으로 가수로서의 입지가 다져지기 전에 "유희열의 음악도시"의 출연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알렸다. 유희열의 추천을 통해 김장훈의 게스트 출연이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완전 고정이 아닌 방송 반응에 따라 앞으로의 거취가 결정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김장훈의 매니저가 "형, 우리 잘 해야해!" 했었다고. 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고정이 되어 마지막 방송에까지 출연했다. 지금도 라디오에 두 사람이 출연하면 당시의 이야기를 할 정도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라디오 방송에서 서로에게 섹드립을 수시로 날리는데, 이 강도가 보편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며 주변사람이 의심을 가질 정도. 심지어 유희열이 장가간 이후에도 이러한 시선은 지속된다.

정재형의 경우 함께 안테나뮤직에 소속된 아티스트로 양자모두 키보드로 포지션이 겹친다. 심지어 박새별까지 키보드를 주로 사용하는지라 안테나 뮤직 워리어즈의 경우 키보디스트가 세명인 상황.

다만 정재형의 섬세한 터치만큼은 모두가 인정한다. 다만 루시드폴의 <세계음악기행> 중 안테나뮤직워리어즈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공연때 많이 틀린다고. 참고로 해당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는 서로가 노래를 못한다며 까고 있다. 정재형에게는 콧소리가 많다고, 유희열에게는 그게 노래냐고, 루시드폴에게는 노래인지 시낭송인지 모르겠다며 까고 있다.

라디오나 TV 등의 방송에서 화려하고 정확한 유희열의 언변에 정재형이 먹히는 분위기였으나, 무한도전 출연 이후 정재형의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방송상에서의 입지도 더욱 굳건해진 듯.


정석원은 유희열을 소위 말하는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일단 유희열이 아직 민간인이 되기 직전의 신분에서 이장우의 솔로 데뷔 앨범에 참여하게 된 것 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유희열은 이후로 내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고 농을 쳤다. 이승환, 윤종신 등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 것도 정석원의 역할이 크다. 정석원은 당시 이승환에게 잘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면서 주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이승환의 4집 앨범에 변해가는 그대, 부기우기 이 두 곡을 선사하면서 등장. 

유희열은 본인이 진행했던 라디오천국에서 토이도 015B의 객원보컬제를 영향받아서 도입했다고 인증했다. 또한 정석원에 대한 존경심을 방송에서도 자주 표한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은 안 친하다고한다. 유희열은 존경, 그러나 정석원은 어색하다라는 말이다.

유희열은 The Sixth Sense에서 메인테마를 작곡하기도 했다.

유희열이 다수 참여한 윤종신의 5집 '우(愚)'는 윤종신 음악 인생의 전반기를 대표하는 앨범. 윤종신 음악 커리어의 최고 앨범을 꼽을 때 늘 1,2위를 다툰다.

윤종신은 당시 유희열에게서 천재끼를 보았는데 너무 칭찬해주면 거만해질까봐 앞에선 "어 그래 잘하고 있어 더 해봐"라고 데면데면하게 반응하고 안 듣는 곳에서 정석원과 "쟤 진짜 천재야"하면서 놀라곤 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윤종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환생'도 "희열아 슈가팝 하나 써봐"라고 툭 던지자 건반을 두드리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유희열이 천재인 걸 유희열만 몰랐을 때 적절하게 잘 이용했다며, 한국 음악 명반 100선에서 토이 앨범보다 자신의 5집이 더 높은 순위에 있다는 게 그 증거라고 우쭐(?)댔다.

앞선 김장훈과 뗄레야 뗄 수 없다.

유희열과 윤종신이 모이면 김장훈을 씹는다. 우선, "해방 직후에 흡연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며 나이드립을 친다. 심지어 과거 소속사를 자주 옮기는 것을 두고 철새라고 놀려댔다. 또한 굶고도 지금의 키라며 많이 먹었으면 압둘자바처럼 되었을 거라는 둥 키로도 놀린다.


그러다가 유희열과 김장훈이 모이면 윤종신을 씹는다. 2008년 벌어졌던 윤종신이 회와 매정관련 망언, 영계백숙 유료 배포 사건 등으로 한창 까일 때 유희열과 김장훈 두 사람이 라디오에서 수시로 언급했다. "라디오 천국 윤종신 이대로 좋은가"라는 컨셉으로 방송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고등학생 때 단체로 플라멩고 춘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했고 사실로 밝혀지자 한동안 라디오에서 다음 앨범의 타이틀 이름은 플라멩고라며 놀려먹었다.

반대로 김장훈과 윤종신이 모이면 유희열을 씹는다. 나보다 마른 사람은 처음봤다느니, 마른 이유가 기생충 때문이라느니, 여자를 밝힌다느니, 자기 곡은 쉬운걸로 발표하면서 다른사람이 부탁해서 준 곡은 되게 어렵게 만들어서 준다느니 이마의 핏줄이 어떻다느니...

즉, 세 사람은 매우 친하다!? 이는 과거 음악도시,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장훈이 3집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포장마차에서의 만남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지금이야 윤종신이 각종 예능 등에서 MC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과거 인지도가 비슷비슷할 때는 노총각4인방 컨셉 외에, 이 세사람의 앙숙 컨셉도 적잖이 유명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실제로 음악도시에서 유희열 주관하에 두사람의 대결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가끔 김장훈이 라디오에서 빙고드립을 치는데 그게 이걸 뜻한다.

윤상과 3인방이 엮이기도 하는데, 1박 2일에서 윤종신과 유희열에 따르면 윤상의 리즈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느니, 헤어스타일이 김병지 선수 닮았다느니, 반대로 유희열에 따르면 윤종신을 처음 봤을 때 "알 밴 시샤모"라느니, 반대로 유희열을 처음봤을 때 "과연 저 친구가 피아노 건반을 눌렀을 때 피아노 건반이 들어갈 수 있을까"라며 놀리기도 했다.

유희열이 한참 7년 동안 음반작업을 하고 있을 때, 2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던 윤종신의 각종 사건 사고로 대타DJ를 맡기도 했다. 장 수술과 관련한 문제로 두 번, 신혼여행으로 한 번. 야행성인 유희열이 2시에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진행하다보니 몽롱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로를 놀리는 관계지만 필요할 땐 도와주고 도움 받는 친구같은 관계. 2012년 12월 발매된 월간 윤종신 2012년 12월호 'Merry Christmas Only You'는 다름아닌 유희열 작곡이다. 중간에 깨알같은 유희열의 나레이션은 덤 그리고 깨알같이 2013년에 서로 데모로 디스한다.

이보다 앞선 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은 윤상 작곡인데 윤상이 곡을 제때 내놓지 않아 작업이 엎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급하게 편곡을 하는데 마침 옆 스튜디오에 있던 유희열이 편곡에 도움을 주고 참견을 하다하다 못해 키보드까지 직접 치고 갔다. 곡 마지막에 "미안해"라고 읊조리는 부분 역시 유희열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월간 윤종신 2015년 10월호 '기억의 주인'의 편곡에도 참여. 윤종신 작사작곡에 유희열과 박인영 공동 편곡이다.

여담으로 윤종신이 있던 술자리에 합류했던 유희열이 처음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이승환과는 서로가 서로의 과거를 폭로하는 사이. 유희열은 이승환의 아기몸매, 탈모, 여자에게 잘 보이려드는 행동 등을 폭로한 바 있다. 이승환 역시 그런 유희열에게 지지 않고 그의 해군홍보단 시절의 모습과 그의 음악활동, 마찬가지로 여자에게 보이는 행동 등을 폭로한 바 있다. 해상병 362기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사이. 유희열은 자기의 어린 시절 어두운쪽 방면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인물로 이승환을 꼽은 적이 있고, 이승환은 어린왕자라 불리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의 원인을 따져보면 유희열이 기저에 깔려 있다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왜 내가 유희열을 망쳐놨다고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면서 항변. 재밌는 점은 이러한 말이 나온 원인이 함께 유흥문화를 보냈기 때문인데 당시 이승환은 여자에게 이상하게 인기가 있는 유희열에게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고. 정작 유희열은 이승환이 아닌 신성우나 장호일에게 질투를 느꼈다는 안습.

앞선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방송에 나와 하는 것. 애초에 이승환이 전국투어를 할 당시 키보디스트로 유희열이 참여한 바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당시 유희열은 천일동안을 부르는 이승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실제로 드림팩토리 전신인 우리기획 시절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져 왔고, 드림팩토리에서 나온 이후에도 해당 사이트엔 유희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유희열은 이승환이 1995년에 발표한 4집 <Human>에 수록된 "변해가는 그대"라는 곡을 필두로 이승환의 5집, 6집, 7집까지 참여했다. 이승환의 음악적 전성기를 함께한 프로듀서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이후 유희열과 음악적 성향이 달라지면서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게 되는데, 이를 두고 이승환은 "음악이 많이 달라진거죠. 희열이 같은 경우는 처음엔 나랑 같이 많이 했지만 태호 (오태호) 랑 그랬듯이 이제 서로 음악들이 많이 달라져서 자연스레 같이 안하게 된거고..." 라 말했다. 이승환은 점점 가볍게 가고 싶었던 반면, 유희열은 점점 무거운 음악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승환은 5집 앨범 Thanks to에서 유희열을 "늘 자신을 놀래키고 분발케 하는" 두 명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다. 

이승환 역시 토이 앨범에 "애주가", "좋은 사람 Sad Version" 이 두 곡으로 참여한 바 있다. 재밌는 점은 이승환이라는 이름이 아닌 이철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승환이 '이소라의 음악도시'에 나와 밝혔던 바에 따르자면 어린 시절 자기가 동경했던 이름이라고. 하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다 안다.

지금 오덕으로 유명한 이승환이지만, 이것이 유명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주변 인물들에게 다양한 물품을 선물했던 것. 실제로 자신의 라이브투어에 참여해 준 사람들에게 아직 국내에 플레이스테이션이 정발되지 않은 시절 선물했었다.

이러한 영향인지 유희열은 자기 앨범에 참여해 준 아티스트에게 선물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예를 들어 2007년 당시 윤하는 메이커 가방을 선물받았는데 정작 성시경은 벨트 선물받았다 한다. 물론 성시경의 체격이 워낙 커서 그것도 벨트 두 개 이어붙인 거라고 한다.

윤상과는 이 동영상 하나로 설명된다.


본인 데뷔 전부터 팬이었으며, '내가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옛날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예전에 갈기머리 하고 노래하는 게 너무 멋있어서 한번 저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등의 발언으로 여러번 빠심(?) 을 인증한 바 있다. 한때 자기 음악색이 뭔지 고민하던 때 윤상이 "색이 없는 것도 네 색이야" 란 말에 용기백배 했다고. 그의 그림책 '익숙한 그 집 앞'의 첨부 앨범에는 대놓고 윤상의 오마주로 만든 트랙이 있으며, 소품집 '여름날'의 셀프타이틀 트랙의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라는 노랫말은 윤상 3집의 명곡 '문득 친구에게'에서 따온 것이다.

윤상의 보컬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 등에 자주 객원보컬로 초대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자주 부르고, 윤상 노래도 자주 틀어주며 윤상 찬양모드로 간다. 얘기를 들으면 둘 다 결혼 전에는 서로 집에도 자주 놀러 다녔던 모양.

둘이 안 맞을 것 같은데 죽이 잘 맞는지, 유희열이 오만가지 개드립을 시전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걸어도 다른 사람 같으면 당황하거나 부끄러워 할 윤상이 그걸 또 맞장구치면서 다 받아준다.

특히 윤종신과 더불어서는 세 사람은 1박 2일에 출연한 바 있는데, 세 사람이 서로 폭풍디스하는 부분이 백미

99년 음악도시 시절에 앗!윤상이다. 코너를 들어보면 지금보다 더 날이선 윤상의 과감하고 독기어린 멘트들을 들을수있는데 유희열은 찬양과 함께 그런 멘트들을 잘 말아주는 모습을 들을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