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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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


2017. 2. 28.

취리히에 있다 파리로 돌아온 다다이스트들은 파리 다다를 구성했다. 이들은 파리 다다란 이름보다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이들이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은 초현실(surreal)을 다루는걸 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현실은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은 무의식(unconsciousness)의 세계를 말한다.


대중에게는 주로 살바도르 달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미술사나 미술 평론 쪽에서는 달리보다는 다른 예술가나 이론가들을 더 높게 평가한다. 트리스탄 차라, 앙드레 브르통, 조르주 바타이유 등이 대표적.

특히 비평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영향이 크다. 브르통이 사실상의 수장이었기 때문. 브르통은 1922년 무렵 루이 아라공(Louis Aragon)과 함께 다다이즘(Dadaism)에 동조해 활동하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고 따로 나간다. 브르통에게 있어 ‘초현실(surréalité)’이란 이성의 간섭 없이, 논리에 지배되지 않고 드러나는 ‘절대적 현실성’이었다. 브르통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에서 사전적으로 정의한 ‘초현실주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초현실주의. 남성명사. 순수한 심리적 자동기술(automatisme)로서, 이를 통해 말로든 글로든, 그 외 어떤 방식으로든, 사유의 실제 작용을 표현하는 것. 이성에 의한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사유의 받아쓰기."

그 뿌리가 다다이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보니 초현실주의도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혼재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본래 초현실주의는 문학운동으로 출발했다. 브르통이 주요 멤버로 꼽은 이들은 문학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 하면 떠올리는 자동기술법(automatism)도 사실 문학적 방법에 가깝다. 브르통은 필리프 수포(philippe soupault)와 함께 1919년에 쓰고 1년 후 『자기장(Les champs magnétiques)』이라는 최초의 자동기술 창작물을 출간하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은 브르통이 1차 세계대전 중 근무했던 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기법으로, 노이로제 환자들이 뱉어내는 독백과 같은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한 빠르게 받아 적는 방식이었다. 이것을 초현실주의자들은 종이 위에 글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고 접어서 다음 사람에게 넘기면 앞의 글 또는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놀이를 하면서 자동기술을 적용했다. 또한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자동기술을 하는 모습이 일종의 클리셰가 되고 무시받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이루어진 일들이다. 물론 다른 멤버들은 잠에서 갓 깬 몽롱한 상태, 잠속에서 헤메인 기억의 조각들이 다 날아가기 직전의 상태까지밖에 도달할수 없었던 반면 초현실주의그룹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던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는 잠든 상태 자체로 시를 읊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그 능력 덕분에 브르통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데스노스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색을 띄게 되는 데스노스는 결국 브르통에게 그룹 축출을 당했고 둘은 그 이후로 치열하게 디스전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의 말을 인용하면서 초현실주의 미술이 '시적 효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고, 자동기술법도 미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병치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도 정확할수록, 이미지는 보다 강력해질 것이며- 정서적으로 더 강한 힘과 시적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초현실주의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는 이성주의나 과학주의와 타협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 재밌는 건 프로이트도 초현실주의자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의 개념을 오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사실 프로이트는 자동기술법을 조금 쓰긴 했지만, 이내 이 방법에 회의감을 느끼고 상담 쪽으로 진료 방향을 튼다. 반면 연배가 아래인 자크 라캉의 경우는 초현실주의자들과 절친했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은 예술계에서 만큼은 초현실주의에 끼친 영향 때문에 아직도 영향이 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대미술의 흐름과도 연관이 깊다. 사진의 등장으로 현실의 대상을 자연스럽게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현대미술에게 무의식의 세계는 큰 메리트일 수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세계대전으로 논리니 이성이니 같은 것에 회의를 느낀 예술가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예술 자체가 사실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론의 기초도 모르는 것이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에게 어떤 삘을 주는 게 목적이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임마누엘 칸트는 '취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유일하게 공통된 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좋아하는 취향을 하나씩쯤은 가지고 있다.'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공통된 사실이나 진리 도출이 불가능한 분야가 예술이다. 단지 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