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임신 증상과 치료방법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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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임신 증상과 치료방법을 알아보자!!


2017. 1. 30.

실제로는 임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스스로 임신했다고 믿으며 임신하였을 때와 흡사한 신체적 증세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 드물게 나타난다. 남성이 자신의 아내가 임신했다고 믿는 일도 상상임신의 범주에 포함 된다고 한다.




자신이 스스로 임신을 했다고 착각하는 병인데, 그 영향이 심리적인 곳에서 그치지 않고 신체에도 나타난다. 실제로 월경이 중단되고 자궁이 확장되고 입덧이 시작되고 젖이 분비되고 유두 색소가 침착되고 배가 불러오는 등 주로 임산부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상 임산부에게서 보이는 모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아도 된다. 증상은 한가지만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장내 가스로 인한 복부 팽창이나 복부 지방만으로 임신으로 인해 배가 불러온다고 오인하기도 하며 간혹 장의 움직임을 태동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다만 실제 임신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임신테스트기를 통해서 임신 여부를 판단해보면 임신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타난다. 상상임신의 증상이 실제 임신과 너무 비슷하여 상상 임신 환자의 18% 정도가 병원에서 임신으로 진단받았다는 보고도 존재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부풀어진 소문으로, 상상임신을 하고 괴로워하다 동생이 보는...>

상상임신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로 임신을 강렬히 갈망하는 심리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 또는 종양 때문에 벌어진다고 이해되고 있다. 임신을 간절하게 원하거나 그 반대로 임신에 대한 걱정이 상상 임신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심리적 원인이 내분비계에 변화를 가져와 유방의 발달이나 유두부위 색소 침착 등의 실제 임신 증세를 나타내기도 한다.



치료는 대개 심리적인 문제에서 오는 병이기 때문에, 임신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면 대부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필요 시 정신적 치료를 해주는 것이 좋다. 무월경과 같은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한다.

상상임신을 겪은 여성은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등이 생길 수 있으며 가족의 따뜻한 보호와 적절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진단이 매우 어려웠다. 의사가 임신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려도 환자는 자신이 임신했다고 주장하고, 외관상 배가 불러오는 경우도 있어서 의학 지식이 없는 주변인들이 보기에도 임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사만 돌팔이라는 오명을 쓰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X-Ray와 초음파 검사 등으로 아주 손쉽게 임신여부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에게 이 사실을 직접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하면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쉬워졌다. 


또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상상임신은 바로 블러디 메리, 메리 1세의 상상임신 사건이다. 당시 부족했던 의학 수준때문에, 여왕이 강력히 자신의 임신을 주장하는데다 실제 배까지 불러와 대부분의 대신들은 그녀가 임신한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으나 출산예정일이 지나도 산통이 오지 않아 그녀가 가임신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평범한 개인이 가임신을 해도 후유증이 큰데, 왕위 계승권자의 출생이 달린 국왕의 상상임신 이었던지라 여파가 컸다. 여왕의 출산을 앞두고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축하 선물이나 축하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도 일찌감치 축하 사절을 보내거나 보낼 준비를 하던 상황이기도 하였다. 결국 잉글랜드 왕실과 정부는 본의 아니게 위신이 실추되었다. 당사자인 메리 1세는 자신이 가임신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 결국 끝내 인정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가 임신을 하였다면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만약 그녀가 실제 출산을 했더라면 잉글랜드가 카톨릭화 되었을수도 있었고, 극단적인 경우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동군 연합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바로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였기 때문. 실제로 당시 메리 1세의 반대측은 임신 사실에 크게 낙심했다가 상상임신이 밝혀지고 난 이후 환호를 하였다고 한다. 정작 펠리페 2세는 메리와 동침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데다, 성관계에도 적극적이지 않아서 임신했으니 자기를 보러 와 달라는 메리의 편지를 무시하였다. 훗날 가임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메리 1세가 자신을 영국으로 불러들일 계략으로 취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