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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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2015. 12. 28.

Alan Mathison Turing (1912~1954)

1912년 6월 23일 런던 출생. 1954년 6월 7일 사망.



컴퓨터의 기초 원리를 제시했지만 불운한 말년을 보내다 끝내 자살한 비운의 천재 수학자 튜링은

1912년 런던에서 태어나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아인슈타인이 말년을 보낸 미국의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당시 프린스턴대학교는 전 세계 과학의 최고봉이었으나 요즘에는 서울대보다도 과학 부문에서 논문 인용횟수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수수께끼'라는 뜻의 독일군 암호작성기 '에니그마'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영국 정보기관 밑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는 이 일 이후 연대 컴퓨터의 기초 원리를 제시하지만 자기가 컴퓨터의 혁명을 일으켰다고는 그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는 원래 고도의 순수 수학에 몰두하는 평범한 교수였지만 여러 가지 기호를 모두 이진 부호로 엮어 수학 문제를 자동적으로 푸는 기계를 발명했는데 이게 나중에 전자 계산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할 거라고 생각하고 많은 양의 은화를 녹여서 주괴로 만든 뒤 땅에 파묻었는데 그 위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는 또 단순한 커피잔을 중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는지 도둑 맞을까봐 사무실에 설치된 라디에이터에 쇠사슬로 묶어놓았습니다. 그는 또 동성애자였는데, 영국 정부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동성애를 합법화하는데 그 전까지는 중죄로 다스렸습니다.

그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애인을 찾았는데 나중에 이 일로 그의 삶은 파멸로 치닫게 됩니다.그는 에니그마와 비슷한 형식의, 그러나 훨씬 더 큰 기계를 만들어 끝임없이 암호를 바꾸어 대는 에니그마의 가능한 모든 결합의 경우를 저장하는 거대한 기계를 만들어 엄청난 양의 조합을 만들어 내 그는 그 기계를 '청동 여신'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 기계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교했지만 1946년에 개발된 에니악을 사람들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합니다. 어쨌는 그는 에니그마를 해독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 다시 그는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컴퓨터의 기본 이론을 제시했지만 1952년에 갑자기 공장 노동자와 동성애를 한 혐의로 체포되어 그의 모든 업적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그는 순식간에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는 감옥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는데 영국 정부는 게다가 징역을 면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호르몬 요법의 실험 대상이 될 것을 강요해 그는 생체 실험을 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치료 도중 가슴이 커져 마치 여성의 유방처럼 변형되는 등의 여러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심한 고통과 엄청난 정신적 상처를 입은 그는 마침내 1954년 어느 날 실험실에서 사과에 청산가리를 주입해 한 입 베어먹고 그 자리에서 4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전쟁에 공적을 세운 뛰어난 수학자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만든 영국 정부는 그가 죽은 뒤에야 동성애를 범죄로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정부 때문에 한 과학자가 아깝게 죽은 일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다음은 그에 관한 기사 한 토막...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27세에 이미 현대 컴퓨터의 모델이라고 할 ‘튜링 머신’을 고안했다.

연산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든 게 1943년. 세계 최초로 알려진 ‘에니악’보다 2년을 앞선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난공불락이었던 독일의 ‘애니그마 암호체계’를 뚫고 들어갔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 그는 적국의 교신 내용을 ‘수신자’보다 먼저 해독하고 있었다. “그가 없이도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성적(性的) 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내동댕이쳐진다.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10년간 감옥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명령한다.

에스트로겐 주사는 일종의 ‘화학적 거세(去勢)’였다.

지속적인 여성호르몬의 투입으로 그는 치명적인 신체의 변화를 겪게 된다. 발기불능, 중추신경계 손상….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유방(?)이었다.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1954년 6월 7일. 튜링은 치사량을 정확히 계산한 뒤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사과에 주사했다. 그리고 백설공주처럼 ‘독사과’를 베어 문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사회가 나를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순수한 여자가 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그것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사형선고를 내린 동시대에 대한 야유였다.

열다섯의 나이에 수학 교과서가 지루했던 천재 튜링. 그는 인공지능 개념을 처음 생각해냈다. “답이 컴퓨터에서 나왔는지 사람의 뇌에서 나왔는지 분간할 수 없다면 기계는 이미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기 전 그는 생명체의 형상 생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신의 비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던 것은 아닐까.

그 후 20여년이 흐른 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었을 때 그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모양을 로고로 택한다.

‘진정한 컴퓨터의 아버지’에 대한 경의(敬意)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