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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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


2015. 7. 24.

미국 펜실베니아의 가로등이 깜박이면서 갑자기 희미해졌다. 1만 8800개의 진공관과 30톤 무게의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알라딘 등잔', 컴퓨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도구는 신체의 일부분을 연장한 것이다. 망원경은 눈을, 자동차는 발을, 그리고 원폭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주먹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연장했다는 데 문명사적 의미가 있었다. 타임지가 에니악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표지 인물로까지 등장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946년 2월 15일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대학 특설 실험실엔 국방부 관계자와 보도진 등 200여명이 모여있었다. 이 대학 존 모클리와 프레스터 에커트 교수 팀이 3년 동안 연구해온 세계 최초의 전자 계산기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전자 숫자 적분 및 계산기) 완성식이 열리는 자리였다.


운영 요원 한 사람이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에니악 내부에 있던 1만 8800개의 진공관이 일제히 깜빡이며 연산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에니악은 '9만7367의 5천승'을 순식간에 계산, 참석자들 사이에선 탄성이 터졌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인 컴퓨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당시의 타임지는 "1백명의 전문가가 1년 걸려 풀 문제를 2시간에 풀었다"며 현장의 흥분을 전했다.


20세기 후반의 정보화 혁명을 가능케 한 컴퓨터의 개발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전쟁 수행을 위한 군부의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야포나 미사일을 발사할 때 대기 온도, 풍속 등에 따른 사거리를 포수들에게 알려주는 탄도 하나를 계산하려면, 약 200단계를 거쳐야 했고, 노련한 수학자가 가장 정교한 탁상 계산기를 이용하더라도 7∼20 시간이 소요됐다. 에니악은 동일한 작업을 30초에 할 수 있었던 것.


에니악의 영광은 그러나 너무 짧았다. 길이 30m 중량 30톤의 이 공룡 컴퓨터를 수용하기 위해선 42평 정도나 되는 큰 공간이 필요했다. 150㎾의 전력을 사용하며 수만개의 진공관이 너무 많은 열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방을 에어컨으로 냉각시켜야 했다. 진공관들을 자주 갈아끼워야 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대기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비용도 비쌌다. 당시 미 육군이 에니악 인수의 댓가로 펜실베니아 대학에 지불한 돈은 48만 684달러. 50년의 시차를 무시하더라도 지금 5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이후 50여년 '광속의 발전'이라 불리울 정도로 급격한 발달을 했다. 이제는 에니악보다 1만배 이상 가볍고 처리 속도는 5천배 이상 빠른 3㎏ 가량의 노트북 컴퓨터를 3000달러면 살 수 있다. 미국의 한 컴퓨터 전문가는 "만약 자동차 산업이 컴퓨터처럼 발전했다면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단돈 2.75달러에 살 수 있을 것"이란 말로 컴퓨터의 비약적 발전상을 요약했다. 전쟁에서 대포를 신속-정확하게 발사하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는 이제 TV 오디오 전화기 기능을 통합하며 인쇄술 발명 이후 가장 큰 정보 혁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기계를 발명해 놓고 인간은 오히려 '사고' '추리' '창조' 등 단어의 전통적 의미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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