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거짓말을 용인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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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과연 거짓말을 용인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에이미 코니 배럿이 결국 미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특별한 반란표 없이 배럿을 인준했으며 민주당은 역시나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배럿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명하다. 때문에 미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그가 현재 미 연방대법원이 수행한 일련의 진보적 판결을 사실상 퇴행시키는 결정에 참여하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Citizen’s United 대 미 연방 선관위 판결과 같이)
물론 배럿은 이러한 부정적 여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청문회 자리에서 거듭 ‘개인적 가치관을 판결에 반영하지 않을 것’ 을 천명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는다. 배럿은 실제로 자신의 가치관을 부적절하게 드러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할 시 임신 중단을 허용치 않는 병원을 늘려야 한다는 가치관 하에 표결한 것으로 보이며, 노틀담 대학 교수로 재직 시 임신 중단을 합법화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비판하는 광고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기도 하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 않겠냐만은, 특히 미국은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거짓말에 대해 굉장히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물리는 나라이다. 배럿 역시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청문회에서의 담화로 무마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미국은 안타깝게도 거짓말에 점점 무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물론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생산해 내고 퍼트린, 그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수많은 거짓과 가짜뉴스들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또한 그는 아무리 거짓이라도 이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전달할 경우 이것이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본인이 어느 정도의 팬층을 거느리고 공신력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배럿이 청문회에서 했던 선언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한들 트럼프 지지층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이다. 대안우파와 그들이 양산하는 가짜뉴스로 경도된 시민들은 이제 그것만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대법관이라는 지위가 주는 무게 때문에 배럿은 선배 대법관들이 만든 판례를 쉽사리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 연방대법관들은 정의로운 법의 수호자가 아닌, 애시당초 자신의 가치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 점은 긴즈버그에게도 적용된다)
6:3 이다. 다시 레이건 시절로 되돌아갔다. 적어도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은 결국 40년 전으로 후퇴했다. 물론 사회 질서의 퇴행은 그것보다 조금 느릴 것이다. 그러나 퇴행을 위한 기반은 모두 갖추어졌다고 본다. 아주 조용히 말이다. 배럿은 이제 겨우 48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