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 미아리복스 파문사건
본문 바로가기

이하늘 미아리복스 파문사건


2015. 3. 10.

이쯤에서 다시 정리하는 이하늘 미아리복스 파문


때는 2004년,  베이비복스는 SES-핑클과는 다른 섹시하고 파워풀한 이미지로 남성팬들한테 큰 사랑을 받던 그룹이었음

1999년 중국 진출에도 성공하여 대만,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서 
진출한 국가 차트를 모두 휩쓰는 영예를 안기도 함
외국인 가수 최초로 중국 음악차트에서 1위를 하기도 했음

베이비복스 해외 활동을 지켜보던 미국의 음악 레코드사 '벙갈로 뮤직'에서 
베복측에 "우리가 미국 진출 시켜줄테니 우리쪽 뮤지션들 중국 진출 좀 도와줘"라고 제안

이에 베복측은 흔쾌히 수락하고 7집 음반 작업에 돌입함
장르도 역시 미국 힙합에 영향을 받아 벙갈로 뮤직측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던 
힙합계의 거장 투팩(2pac, 1997년 사망)이 생전 녹음해놨던 음원을 합법적으로 샘플링함

그리고 뮤직비디오에만 40여억원을 투자하는등 베복 음반중 가장 많은 예산이 소모됐음

하지만 당시 국내 가요계는 걸그룹보다는 솔로가수들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힙합이라는 색다른 도전을 한다라는 반응엔 대다수가 부정적이었음

그동안 베복은 알엔비, 펑키, 디스코, 테크노 등 많은 장르를 시도한 그룹이었고
베복 멤버와 회사측도 이번 음반을 통해 상업적인 성과보단 도전에 의의를 두기위해

타이틀곡 '엑스타시' 활동을 꼴랑 3주로 잡음 
(이 대목에서부터 베복은 투팩 음악을 통해서 상업성만 노리진 않았다는걸 알수있음)



2004년 4월 베이비복스는 7집 '엑스타시'로 복귀함 

나오자마자 선정적인 가사와 안무등이 화제가 되고 힙합팬들 사이에서는 왜 저노래에 투팩 목소리가 들어가있냐며 비아냥 거림
힙합 음악에 관심이 없던 베복팬들은 덩달아 투팩이 누구냐며 관심을 갖기도 함

하지만 역시 곡은 대중성도 없었고 예전만한 인기를 누리지못함 
어쨌든 활동은 3주정도로 마무리 되었고 더블 타이틀곡 'Play'로 활동을 이어가게 됐음


그러던 2004년 6월 DJ DOC 멤버 이하늘이 Mnet 방송에 출연해서 Q&A시간을 가짐
어떤 사람이 이하늘한테 '투팩이 누구에요?"라고 질문을 던짐

그러자 이하늘이 “투팍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두 번 죽였다. 베이비복스를 만나면 혼내(‘야무지게 빠따’)주겠다”,
"투팩 음원을 무단도용했다"라고 말함

이에 베이비복스 측 프로듀서 랩퍼 플로스-피가 

"베이비복스 음악에 최선을 다했는데 하늘씨의 음악성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DJ DOC의 랩도 그저 미국랩을 빌려 쓰는 정도에 그쳤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이 없어 보인다. 자신도 남의 것을 가져다 활용하면서 '다른 사람의 것은 아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공인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라고 대응함 

이 발언에 뚜껑따인 이하늘은 본인 사이트에서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SEX 가수)'라고 디스하면서 난리가 남
하지만 김진표도 이하늘 발언에 옹호했고 안티들도 베복을 미복이라고 칭함

베이비복스 이미지는 한순간에 실추해버렸고 이어 베복측은 이하늘을 고소하겠다며 공식 사과를 요청함

이하늘 기자회견 열어서 '베이비복스에게 했던 발언은 ㅈㅅ, 하지만 난 아직도 투팩 존경하고 니들이 입은 명예훼손보다 
투팩이 얻은 명예훼손이 더 크다"라고 발언

그리고 바로 다음날 공싸에서 다시 입장을 번복하고 "생각해보니까 미복이라는 별명 니들한테 잘어울려" 드립 시전함

사실상 미복 발언터진 날을 기점으로 7집 활동을 더 이상 이어갈수 없었지만 베이비복스 팬클럽과 방송 관계자들은 
베이비복스를 밀어줬고 뮤직뱅크에서는 몇주동안 베이비복스를 클로징 무대로 세움

하지만 이 사건은 투팩 가족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투팩 가족측은 베이비복스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기에 이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될건 투팩의 음악 저작권은 투팩 가족측만 갖고있는게 아님. 
예를 들어 DJ DOC의 음악도 본인들이 저작권들 다 가지고 있는게 아닌거 처럼 ㅇㅇ

베복이 합법적으로 음원을 사들였다는거에 대해 오해가 풀리는데에만 약 3년이란 시간이 걸림

베이비복스는 더이상 활동을 할수없다는 판단하에 7집 활동을 종료하고 
결국 심은진이 팀에서 탈퇴하면서 베이비복스는 해체를 결정
참고로 그 당시 베이비복스가 아시아권에서 가진 영향력은 어마무시했고 국내에서도 최장수 걸그룹이었음.
2004년 약 10억원의 개런티를 받고 일본시장에 진출하려던 프로젝트가 무산되서 소속사 dr뮤직은 빛더미에 오르고 부도직전까지 감


당시 베이비복스 멤버들의 나이 - 김이지 (25세), 이희진 (24세), 심은진 (23세), 간미연 (22세), 윤은혜 (20세)
평균나이 고작 22.8세.........


해체 이후 윤은혜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렸지만 나머지 멤버는 연예계 활동보단 사회 봉사활동을 위주로 하고 있음
(한 사람 발언으로 여러 사람 인생 망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