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30.
언젠가부터 IPA라는 글자만 보면 심장이 콩닥거리고 침샘이 흥건해지는 이상 증세를 겪고 있다. 최초 발병 지역은 이태원으로 추정된다. 경리단길의 맥주 골목을 중심으로 창궐한 서울의 '맥덕(맥주 오타쿠)'들은 이제 IPA 딱지가 붙지 않은 맥주는 취급도 안 하는 모양새다.
일찍이 이 맥주가 우리나라에 없었던 건 아니다. '세븐 브로이'라는 이름의 국산 IPA도 있었고, 원액과 효모를 구해 집에서 직접 IPA를 담가 먹는 선구적인 '맥덕'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래도 요즘 같은 붐은 차마 예상치 못했다. IPA를 동네 마트에서 보게 될 줄이야.
최초의 인디아 페일 에일(Indian Pale Ale)은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맥주를 인도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맛의 변질을 막고자 알코올 함량을 높이고,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듬뿍 넣어 마시던 중에 탄생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라거가 주류 맥주로 자리 잡으면서 잠시 잊혔던 IPA는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서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소비자들이 좀 더 비싸고 개성 있는 맥주를 찾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기존의 라거 계통에서는 느낄 수 없던 IPA의 폭탄 같은 홉 향과 쌉쌀한 풍미는 미국 전역의 맥주 장인들을 열광케 했고, 그들이 소개한 아메리칸 IPA의 다채로운 세계는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다시금 주목 받게 된 IPA는 영미권의 소규모 양조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고급화되기에 이르렀다.
IPA의 범세계적 인기와 관련, 국내 1호 시서론(맥주 소믈리에) 자격증 보유자인 손봉균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몰트보다 홉이 더 흥미로운 재료일 수밖에 없어요. 로스팅 강도에 따라 기껏해야 대여섯 가지 맛을 내는 몰트와 달리, 홉은 곡물 등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 맛을 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홉의 함량이 높은 IPA는 브루 마스터가 자기만의 개성을 담아내기 매우 좋은 장르라고 할 수 있죠. 소비자에게도 홉 특유의 쓴맛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고요. 쓴맛이라는 게 본래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미각이라, 한번 길들여지면 다른 맥주는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집니다."
어쩐지, 요즘 따라 국산 맥주가 몽땅 오징어로 보이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