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드디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거나, 보긴했지만 실망했던 분들을 위해 몇가지 단상을 공유한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팬이다. 심지어 그가 필리모크래피에서 지워버리고 싶어할 "불면증"도 재밌게 봤다)
인터스텔라 제대로 감상하기 (스포일러 없음)
(인터스텔라)
1.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속편
만약 당신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지 않았거나, 봤지만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인터스텔라"로 얻을 수 있는 최대 감동의 50%밖에 얻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얼마만큼 감동을 얻었든지 상관없다). 이 영화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완벽한 응답이다. 나는 아무도 이런 사실을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관객층을 넓히려는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고, 공식 속편인 2010년 '오디세이'(2010 우주여행)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으리라 추정한다.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인터스텔라가 적어도 몇가지 부분(감정의 흐름, 대중의 이해도)에서 전편을 능가한다는 사실이다!
(2001 : 스페이스오디세이)
2. 난해한 물리학 이론 따위는 잊어라
이 영화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사람들은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현대 물리학을 "이해"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놀란의 동생이 칼텍에서 상대성이론을 공부했다거나, 물리학자가 영화의 조언을 해주는 과정에서 논문을 썼다는 기사들은 마케팅 전략일 뿐이며, 이 영화의 본질을 체감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휴먼드라마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현란한 과학 이론은 휴먼드라마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보조장치일 뿐이며, 매우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매우 풀기 어려운 물리학적 문제를 다룬다는 정도만 생각하자. 한 가지 첨언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아인슈타인이 기틀을 세운 현대 물리학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고 본다.
(인터스텔라)
3.물리학적 비쥬얼은 철저히 즐겨라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현대 물리학의 개념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인셉션에서 인간의 인식 영역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웜홀이나 블랙홀 장면도 압권이지만, 후반에 등장하는 5차원 공간 장면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큐브릭이 표현하지 못했던, 아니 그가 인류에게 던졌던 수수께끼 장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다.
영화의 등장하는 난해한 이론은 철저히 무시하고, 눈앞에 펼쳐진 신비로운 우주와 그 속에서 인류를 구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즐기면 된다. (비디오로 나오면 반복해 볼 것을 추천한다)
4. 그래비티와의 비교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Gravity)"와 비교하려 할 것이다. 나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파생된 이란성 쌍동이며, 우주라는 배경 외에는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는 상보관계라고 생각한다.
먼저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다룬 미시적 주제인 인간 본연의 고독과 공포를 온전히 물려받았다. 우주 공간에 혼자 남은 것만큼 두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반면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거시적 주제인 인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신에 대한 고찰을 물려받았다. (45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캐릭터가 누구인지 찾아보라)
(그래비티)
5. 에필로그 : 4명의 감독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머리 속에는 4명의 감독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첫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눈을 감기 전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둘째: 알폰소 쿠아론은 영원한 2인자 자리를 머물게 될 것인가?
셋째: 놀란은 도대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넷째: 스필버그가 만들지 않았다! (큐브릭 프로젝트를 물려받아 스필버그가 완성한 A.I. 참조 바람)
"이 영화는 (인셉션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져서, 역사상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