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6.
황해도 지방의 한 마을은 설날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널찍한 멍석위에서 청년들이 윷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박달나무로 밤윷 만들기가 더 어렵다니까. 그냥 우리처럼 가락윷으로 놀면 해마다 따로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텐데."
"에이, 여자들이 크고 무거운 가락윷으로 놀기엔 좀 무겁지 않아? 그러니 밤알만하게 깎아줄 수 밖에."
"밤윷은 저 아래 지방에서 진해진 것이라고 하더구먼, 그나저나 밥공기에 넣어 흔들다 던지는 걸 보니 꼭 애들 장난치는 것 같더라고."
청년들이 윷을 다 깎고 나자 드디어 윷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마을 사람들은 크게 세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정월 초하루면 항상 윷점을 보시는 어르신네들과 아랫방에서 윷가락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여자들, 그리고 큰 방에다 멍석을 깔고 벌칙을 정하고 있는 남자들로 말입니다.
"소나무 장작은 왜 장작 - 구음장단, 꿍따기 꿍딱- 소나무 장작은 왜 장작 - 꿍따기 꿍딱……"
마당에 모여 있던 한 패가 먼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었습니다. 그러자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윷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윷이다, 윷! 자, 먼저 갑니다.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잠깐,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먼저 걸로 잡고 한 번 더 치면……"
그 때 한 청년이 가운데 방을 쳐다보며 큰 소리루 물었습니다.
"영감님, 새해 운세가 어떻습니까? 우리 마을에 풍년이 들겠습니까?"
가운데 방에서는 윷점이 한창이었습니다. 윷점은 윷가락을 세 번 던져서 나온 순서대로 뜻풀이를 찾아 새해의 좋고 나쁨을 점쳐 보는 놀이입니다.
"자네가 개, 걸, 도라고 했나? 그건 어린애가 젖을 얻는 운세일세. 올 농사는 분명 풍년일 거야, 암."
"나도 봐 주게. 난 도, 모, 모였네."
"와, 자네는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는 운세라네. 아마도 작년에 산 땅에서 수확을 많이 얻으려나 보네."
마을의 설날 하루는 이렇게 윷놀이를 하면서 저물어 갔습니다.
아마 윷놀이를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친구는 없을 거야. 겨울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편을 나누어 윷가락을 던져 노는 윷놀이는 참 재미있어. 그런데 이런 윷놀이에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단다. 윷판은 왜 그렇게 생겼는지, 윷가락의 모양에 따라 붙여진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인지 그럼 윷놀이에 담겨 있는 비밀을 찾아 떠나볼까?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인 윷놀이
윷놀이는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민속 놀이입니다. 보통 설날에 많이 하고, 정월 대보름에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윷놀이는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농부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고 풍년을 점치던 데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윷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또 윷놀이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지요.
윷판의 비밀
윷판에는 모두 29개의 동그라미가 있습니다(지금은 윷판을 사각형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김문표의 주장에 따르면 그 동그라미는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운데 동그라미는 북두칠성의 첫째 별이고 이 별을 중심으로 늘어서있는 나머지 동그라미는 모두 28개의 별자리를 나타낸다고 말이지요.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윷가락의 둥근 부분은 하늘, 반대편의 각진 부분은 땅을 상징한다. 그리고 윷이 네개인 것은 땅의 숫자이고 도, 개, 걸, 윷, 모의 다섯 가지는 하늘의 숫자이다. 이것을 가지고 말을 움직이면 그것은 곧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윷놀이는 별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이 더 강합니다. 다만 윷놀이가 설날부터 대보름까지만 노는 놀이였으므로 새해 농사와 관련이 있었고 따라서 천문과도 관계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도, 개, 걸, 윷, 모'의 비밀
요즘 민속학자들은 윷놀이의 기원을 고조선에서 찾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행정 제도는 전국을 동, 서, 남, 북 중의 5부로 나누고 각 부를 중앙의 5가(김가, 박가 할 때의 가)가 다스리는 부족연합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5가의 성이 바로 도, 개, 걸, 윷, 모라는 주장이지요. 고조선 사회는 농업보다는 목축이 더 유행했던 시기여서 동물 이름을 사람의 성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도는 돼지, 개는 개, 윷은 소, 모는 말이었지요. 하지만 걸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편 도, 개, 걸, 윷, 모를 부여의 관직이름에서 찾는 학자도 있습니다. 부여에서는 여섯 가지 가축으로 관직의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 관직의 이름은 마가(말), 우가(소), 저가(돼지), 구가(개), 대사 등이었는데, 대사의 '대'를 한자의 대(大)의 뜻인 '크다'로 해석해서 '걸(乞 : 클 걸)'이라고 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또, 걸이 양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부여의 여섯 가지 가축에는 양과 낙타도 들어가는데, 양을 가리키는 한자어로는 '결'이나 '갈'이 있습니다. 이 결이나 갈이 변해서 걸이 되었다는 주장이지요. 만일 걸을 양으로 보게 되면 도, 개, 걸, 윷, 모의 순서는 가축이 달리는 빠르기 순서가 되니까 맞는 것도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