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7.
페로몬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낸다. 이점은 호르몬과 비슷하다. 그래서 형과 아우의 이름처럼 몬이란 돌림자를 쓴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페로몬은 호르몬과 다르다. 우선 페로몬은 동물의 몸 밖으로 분비된다. 또한 페로몬의 목적지는 자신의 몸이 아닌, 남의 몸이다.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고, 신진대사에 변화가 일어나고, 직접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페로몬의 주인 자신이 아니라, 페로몬을 만난 다른 누구이다.
강력한 화학적인 메시지
페로몬은 곤충이 짝을 유인할 때 사용된다는 사실에 관심이 쏠리면서부터 유명해졌다. 곧이어 페로몬은 단순히 짝을 찾는 것 이외에도 많은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의사 소통의 도구라는 것이 알려졌다. 파리 한 마리가 떠난 밥알 위에는 다른 파리들에게 보내는 이런 화학적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 동지들이여, 먹을 것이 여기에 있다. 개미들이 일렬 종대로 협동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닐 수 있는 것 역시 모두 이들이 주변에 흘리는 화학 물질의 덕이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곤충이나 물고기들이 이들 화학적 메시지에 본능적으로 순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반응은 선택
인간에게도 페로몬에 해당되는 물질이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은 안드로스텐과 코퓰린이다. 이들은 땀과 소변, 겨드랑이 등에서 발견되며, 냄새를 맡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킨다. 간단히 말하면, 페로몬 때문에 이성이 좀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사람은 페로몬이 명령하는 대로 홀린 듯이 짝을 짓는 곤충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생각이 많은 동물일수록 페로몬에 대한 반응은 선택 사항이 된다. 매혹적인 체취에 어느 순간 마음을 빼앗길 수는 있지만, 달콤한 기분만으로 짝을 고르지는 않는 것이다.
감추어진 배란
인간에게는 뚜렷한 발정기가 없다. 겉만 봐서는 언제가 임신 확률이 높은 배란기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우리와 가까운 원숭이만 해도 때가 되면 엉덩이가 부어 오르고 특별한 냄새를 낸다. 여자들도 월경주기에 따라 스스로 분비하는 페로몬의 배합이 바뀌고 남성의 페로몬에 더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그 변화는 아주 미세할 뿐이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배란 신호를 주변 사람에게 철저하게 은폐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인간에게 페로몬은 흔적일 뿐이다.
향수는 페로몬의 무덤
일반적으로 향수는 인공 페로몬으로 알려져 있다. 향수를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은 향수가 이성을 유혹하는 거스를 수 없는 본능적인 냄새라는 환상을 대중에게 심어 놓았다. 하지만 많은 연구는, 향수가 이성을 끄는 데 있어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히려 여성의 향수는 월경주기에 따른 체취 신호를 은폐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짙다. 월경 주기에 따른 체취의 변화는 향수의 간섭 효과에 쉽게 묻혀버리고 만다. 결국 향수는 인공 페로몬이 아닐 뿐 아니라, 나아가 페로몬이 뭇 남성에 대해 매력을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남성의 코가 느끼는 향수
그렇다고 향수가 이성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향수 냄새는 페로몬과는 다르지만, 분명히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향수가 일으키는 감정은 조금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냄새에 민감한 편인 여성은 향수를 뿌린 남성에게 호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남성은 향수를 뿌린 여성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실제로 남성들은 여성의 짙은 향수 냄새를 맡으면, 오히려 여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방해 받는다고 느낀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기만하거나 성적인 도전을 하는 것으로 느낀다.
향수에 대한 남녀의 오해
여자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스스로 향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남자들이 향수 냄새를 은근한 유혹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게 된다. 반대로 대부분의 여성들은 향수를 사용하는 남자들은 어느 정도는 유혹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복합적인 매력
향수는 냄새 자체가 절대적인 매력을 갖는다기보다는 주변 상황이나 이미지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력을 만든다. 남녀를 불문하고 캐주얼한 차림의 여성이 향수를 사용하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정장을 차려 입은 여성이 뿌린 향수 냄새를 맡으면, 오히려 도도하다든지, 접근이 어렵다는 인상을 받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와 향수
냄새에 남는 기억은 말로 되살려지는 기억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조각 냄새를 통해서도 큼지막한 과거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냄새를 맡는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향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현상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향수 냄새의 아름다움을 깨닫기에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할 때마다 맡게 되는 냄새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엄마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쓸쓸함에 베어 있는 향수 냄새는 아이들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