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백우선 (윤건)을 들고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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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백우선 (윤건)을 들고있는 이유


2014. 8. 17.

제갈량은 왜 항상 백우선을 손에 들고 있었을까?

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은 언제 어떠한 장소에서도 푸른 실로 짠 두건을 두르고 백우선을 들고 있다. 이러한 차림은 더운 여름이나 전쟁중에 쾌적하기는커녕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왜 이러한 차림을 한 것일까? 특히 왜 백우선을 들고 있었던 것일까?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백우선을 갖게 한 것은 그가 지혜의 덩어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또 그를 신선처럼 초월한 존재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앞에서 인용한 '어림(語林)'에 의하면, 사마의가 제갈량과 대치했을 때, 몰래 무후의 모습을 엿보았다. 그때 제갈량은 흰수레를 타고, 갈건을 두르고, 모선을 쥐고, 삼군을 지휘하고 있었으므로 사마의는 '명사라 할만하다!'라고 감탄했다 한다. 그러면 제갈량이 백우선을 손에 든 것은 명사, 또는 유장의 품격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간주해도 좋다. 구석방의 글에서는 모선과 우선을 구별하여, 모선은 곧 주미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선은 더욱더 한말에서 남북조에 걸쳐 통용되던 명사의 차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성도대학학보'에 발표된 오천외의 '제갈량의 죽음'에서는 새로운 설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에 의하면 제갈량이 백우선을 손에 들고 전장에 나타난 이유는 건강 때문이라고 한다. 제갈량은 자신의 병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서 이러한 차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제갈량은 관리 집안 출신이었지만 부모가 빨리 죽어 몰락했던데다, 전란이 빈발하여 생계가 곤란하였다. 때문에 17세 이전부터 생활의 중압감을 등게 업고 각지를 유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년 제갈량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원운보(性源韻譜)'의 기록에 따르면 제갈량의 외모는 다음과 같다.

"신장이 팔 척에, 몸은 말랐으며, 얼굴은 거칠고, 마치 송백 같았다. 피부는 바싹 말라 있었지만 혈색과 경맥은 윤택했다"

체질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오랜 기간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고, 46세 때에서야 비로소 소중한 자식을 얻었다. 만년에 자식을 얻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이상의 설로는 제갈량이 왜 싸움에 임해, 흰 수레를 타고 푸른 실로 짠 두건을 썼는가는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왜 백우선을 손에 들고 있었던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모선은 주미이고 명사와 유장은 이것으로써 풍격을 나타냈다. 다만 나관중은 이것을 대대적으로 우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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