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7.
연의중심으로 제 생각을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삼국지의 최대 이벤트이자, 뛰어난 사람을 얻기위해 스스로 몸을 구부리는 유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바로 삼고초려이죠. 이 내용은 제갈량의 출사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유비가 미천한 자신을 찾아와줘 그 은혜가 하늘과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단 유비 뿐만 아니라 예부터 천하의 대인을 찾아갈때는 그가 비록 뛰어난 군주이더라도 스스로 찾아가서 몸을 굽히는 태도를 취했는데요, 주나라의 무왕이 태공망을 찾아갈때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조조역시 삼고초려를 했고, 초나라의 항우도 범증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특히 연의를 보면 제갈량은 유비가 천하를 통일할 운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고 유비를 피하다 나중에 유비와 함께 나서면서 '나도 범증의 운명을 겪게 되는구나'하며 되뇌이는 부분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참조함)
물론, 유비의 간곡한 청이 있고, 유비역시 천하의 기재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한실부흥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제갈량에게 고개를 숙여 가르침을 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만약 제갈량이 그렇게 천하의 기재이고 그 능력이 상당히 유명했다면 왜 아직까지 초야에 묻혀서 있었냐는
겁니다. 다시말해 가까운 형주의 유표나 오나라의 손책, 손권이 출사를 부탁하지 않았냐 하는 겁니다.
게다가 그 정도 인기면 유비를 따라나가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손권이라도 찾아갔으면 확실한 자리를 했을텐데 하는 느낌도 받습니다. 더 이상한건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비견했다면 오히려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은근슬쩍 선전하고 다닌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까지 보면 확실히 연의의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점이 보입니다. 출사하기 싫어서 은둔하던 사람이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한다? 조금 의구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럼 좀더 생각해 봅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그렇게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견줄 정도이며, 그 명성이 형주와 강동지역에 널리 퍼졌다면 왜 유표나 손씨 집안에 직접 찾아가지 않거나 등용되지 않았냐 하는 거죠. 한가지 더 의문을 잡자면 세상에 그렇게 추녀로 알려진 황승언의 딸과 결혼했냐는 겁니다.
실상 황승언은 형주의 유지집안이었습니다. 제갈량이 그 집의 딸과 결혼을 한 것은 아마 아무기반도 없이 능력만 좋은 그가 출세하기 위한 어느정도 인맥을 텃다고도 보여집니다. 물론, 이것 하나만 가지고 그렇게 단정짓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소설삼국지를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그가 이미 세상에 출사할 뜻이 있었다는 부분이 몇 군데서 보입니다. 그중 한가지 일화는 바로 유비가 신야목으로 있을때 제갈량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유비를 찾아가 신야의 병력을 늘일수 있는 방법중에 하나로 호구조사를 실시할 것을 알려주고 돌아갑니다. 훗날 유비가 직접 제갈량을 세번이나 찾아갔을때야 비로소 그를 알아보고 자신의 실수를 탓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견하고 다닌것이죠. 초야에 묻혀서 세상을 방관할 사람 같았으면 대게 천하대세를 논하는 것에서 그치거나 아니면 자신을 찾는 군주를 신나게 망신주고 도망치거나 아에 숨어버립니다. 즉 자신이 누구니 날 알아달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아마 예형이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것입니다.
세 번째는 연의에서 미화되긴 했지만 제갈량이 제법 뛰어난 군사적 지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겁니다. 후대 사람들중 그의 군단지휘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많기는 하나 불리한 촉의 군대로 위나라의 대군을 상대로 밀고들어가는 대담함과 치밀함 그리고 기산을 중심으로 한 그의 여러전투에서의 지휘능력은 많은사람들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며, 게다가 그가 쓴 병법은 그가 평소에 병법연구에 관심이 많았다는 한 증거이며, 이는 자기가 나중에 쓰일때를 대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상에서 제가 연의를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아마 제갈량은 은둔하기 보다는 벌써부터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인물로 생각됩니다.
그럼, 왜 손권이나 유표를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유표는 이미 채씨 일족이 상당한 위력을 떨치고 있어 자기가 찾아가 봤자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요, 손권역시 삼강의 험준함과 함께 주유, 노숙, 장소 등 뛰어난 전략가와 지략가 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전을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반대로 유비의 경우를 보면 무장은 충분하나 그들을 전략적으로 이끌수 있는 군사(軍師)가 없었으며 그다지 뛰어난 문관역시 없었습니다. 사마휘의 평가대로 '백면서생'에 불과한 인물들이 다수였죠. 때문에 제갈량이 직접가면 치열한 노력없이도 그의 천하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유비군에서 상당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제가 판단하기로는 제갈량은 은둔하기 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출사하기를 학수 고대하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참고로 어디서 주장되었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제갈량은 유비를 여러번 찾아왔는데 유비가 시큰둥 하게 여기자 자신의 천하정세와 천하삼분지계를 직접 유비앞에서 설명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선전한 후에야 등용되었다고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