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에서 패배한 닭은 요리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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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에서 패배한 닭은 요리해서 먹는다?


2018. 4. 14.

닭의 종류 중 하나인 싸움닭으로 싸우게 하는데, 흥분한 수탉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인간이 보고 즐기는 행위. 싸움닭은 모두 수탉이며 암탉은 수탉보다 신체스펙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계란을 낳아다 바쳐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기 때문에 싸움닭으로 쓰는 일이 없다. 가만 냅둬도 알아서 계란을 낳아다 바치는데 굳이 죽여 없앨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투계'라고 하며 예전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해오던 놀이였으나, 도박이 관여하기 마련이고 또 자산을 낭비하는 행위인지라 점점 사양길을 걸었다. 여러나라(특히 미국)에서 불법이며 동물보호법 발효에 따라 한국에서도 투견과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하지만 동남아 등지에서는 전문적으로 발달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특히 닭싸움을 좋아하여, 식객 중에서 성찬이 토종닭을 구하는 에피소드의 취재일기에는 "(토종닭의) 수탉은 동네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닭싸움 시킨다고 훔쳐가서 볼 수 없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닭발에 칼이나 유리조각을 달고 싸움을 붙인다. 국내에서는 면도날을 붙인다고 한다. 닭장등에서 수탉이 여러마리면 수탉들이 서로 싸우는 경우는 종종있지만 닭들이 싸우는데 쓰는 며느리발톱으로는 투계처럼 심하게 다치는 일은 생길수 없다. 깃털 한두개 뽑히는 정도. 그야말로 유혈이 낭자... 근데 패자는 경기 끝나면 치킨 신세. 수탉은 워낙에 투쟁본능이 충만한 동물이라 살이 베이고 눈알이 빠져도 달려들어 싸우기 때문에, 승패가 날 때쯤에는 워낙에 서로 많이 다친다. 

하지만 수탉도 전투력이 개체차이가 심해서 일방적으로 줘패는 경우도 발생한다. 승부가 별로 어렵지 않게 끝났을 경우 승리한 닭은 조류전문 수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1개월 동안 투계를 쉰다. 패자는 무조건 치킨 신세이며 승자의 경우 다시 싸울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서 다시 싸울 수 있으면 치료 후 휴식기에 들어가고 재기불능 상태면 역시 패자와 마찬가지로 치킨이 된다. 그 이유는 싸움용 닭이 필리핀 물가 기준으로 전문직 종사자 월급에 해당되는 비싼 가격이기 때문이다. 한번만 이겨도 그 몇 배의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웃긴 건 투계장 한쪽에는 수의사와 요리사가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아있는데 수의사의 책상에는 구급상자가, 요리사의 책상에는 가스레인지가 각각 놓여져 있다. 그래서 투계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닭은 수의사에게, 패배한 닭은 요리사에게 각각 간다. 승리해서 수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닭이라 하더라도 다시 싸울 수 없는 몸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요리사에게 인계된다. 그러니까 닭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퍼펙트로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다만 투계도박사들은 투계로 만든 치킨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데 패한 녀석을 먹으면 나도 잃는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어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즐겼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기성자라는 인물이 거론된 기록이 있는데 이 사람은 싸움닭 키우는 데 누구도 따르지 못하여 왕이나 부유한 귀족,부자들에게 단골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통 닭을 두어달 정도 정도만 훈련시켜 싸움닭 고수로 만들었다고. 기성자가 조련한 싸움닭이 무적이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버릇을 들였다고 한다. 한 군주가 보통 닭을 맡겼는데 보름 정도 지나서 성과를 질문하자 기성자는 '아직 다른 무리의 사소한 싸움에 이끌리듯이 따라가고 도저히 침착함이 없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한달 가까이 지나 다시 성과를 질문하니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자 기성자는 무척 기분 좋은 듯이 '다른 무리의 사소한 싸움은 피하며 눈빛만으로 다른 닭을 제압하고 함부로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싸운다면 분위기를 타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며 적어도 기초적으로 이 몸이 다할 것은 다했습니다' 라고 스스로 보고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인지도가 투견에 비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까이는 일이 적다. 투견의 경우 칼이나 유리조각을 달고 하지는 않지만 그 쪽은 칼이나 유리조각보다 단단한 이빨이 있다. 애당초 닭싸움이 벌어지면 칼이 없어도 피투성이가 되는 게 일반적. 닭의 발톱은 꽤나 날카롭다.

대신에 이렇게 투계용으로 전문 사육된 수탉은 사육과정도 과정이고 품종(샤모 등)도 품종인지라 이게 닭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고한 모습을 보인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과 길고 높게 솟은 꽁지깃, 긴 목은 도도할 정도. 게다가 이런 투계용 닭의 닭고기는 일반닭에 비해 지방의 비율이 낮고 근육의 비율이 높아서 맛있는 편에 속한다.

닭에게 먹이는 모이도 좀 특별한데 각종 비타민제부터 시작해서 곤충, 동물들의 눈알과 내장, 장기와 고기(!)를 먹이는 경우도 있고 닭주인 자신들만의 비법과 노하우가 담긴 알약을 먹이기도 하는데 이건 절대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는 진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아무리 비싸더라도 승리에 도움이 되는 모이라면 무조건 먹인다. 일부 몰지각한 닭주인은 히로뽕을 먹이기도 한다.

고추장을 닭에게 먹이면 파워업을 해서 이길 확률이 올라가는 거 같다는 카더라가 있다. 동백꽃에 나오는 전설의 츤데레 캐릭터 점순이가 주인공을 갈굴 때도 사용되었으며 주인공 역시 닭에게 고추장을 먹인다. 근데 진다. 싸움닭은 육식을 하는데, 특히 뱀이나 미꾸라지 같이 긴 동물을 목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줬다고 한다. 그래야 목이 길어지고 잘 싸운다고. 

흔히 닭싸움이라고 하면 "도끼질" 즉 서로 볏을 노리고 쪼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싸움이 막장에 달해 고급 기술을 쓸 체력이 남지 않았을 때나 하는 것이다. 투계의 기본 전술은 뛰어올라 발(며느리발톱이 있는 뒤쪽)로 차는 것으로, 진짜 투계에게 차이면 어설픈 닭은 단방에 심장이 멎어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의 닭싸움과는 확실히 많이 다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투계를 비난하고 있지만 동남아에선 이런 비난에 대하여 무시하며 되려 닭을 많이 먹는 주제에 이런 비난 집어쳐라라는 투로 대한다.<우리가 먹고 사랑하는 동물들>에서 지은이 할 헤르조그는 "동남아 투계를 비난하면서 KFC나 맥도널드 너겟용으로 도살되는 닭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미국인이 나은건가."라고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좀 꼬집은 바 있다.


하지만 투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동물학대이기도 하지만 도박이 얽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닭싸움은 십중팔구 도박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인기를 얻고 판이 커지면 이권도 같이 커진다. 이권이 사행성을 부추기고 갱이나 조직폭력배 등 불법적인 세력이 이를 노리고 찾아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남아의 투계산업도 이런 쪽의 문제가 장난이 아니게 심각한 경우가 많다. 경기 결과를 두고 살해협박 및 아예 살인 같은 문제가 넘친다. 뭐 깊이 따지자면 투계만 이런게 아니라 무에타이나 축구같은 스포츠도 도박 문제가 심각하기에 위에 서술한 책자에서 지은이도 그러한 도박문제는 돈이 된다면야 어느 스포츠도 피할 수 없다.미국조차도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약물을 쓴다든지 동물학대이긴 하지만라는 뜻을 쓰고 있다.

그밖에 발리에서의 닭싸움 문화에 대한 인류학자 기어츠의 연구는 발리의 남성과 닭 사이의 관계, 그리고 닭싸움을 통해 공동체가 결속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한 고전으로 여겨진다. 덤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기어츠가 닭싸움을 관찰하러 갔을 때 정부의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이때 기어츠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도망쳐서 같이 구경하던 동네 사람의 집에 숨었다고 한다. 그는 지위상 연구자 자격을 대면서 도망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때 저도 모르게 도망쳤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했다가는 그 이후로 연구하기가 까다로웠을테니 친화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 친절하긴 했어도 이때까지 거리를 두었던 마을사람들이 기어츠 박사를 같은 마을의 주민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투계의 한 품종인 '샤모(軍鷄)'가 알려져 있다. 근육이 잘 붙어서 일반 닭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고 유명하며 맛의 달인에서도 다룬 바 있다. 다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사육하고 먹는 데 일정한 제약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