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손학규계 국회의원 이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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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손학규계 국회의원 이찬열


2018. 1. 17.

이찬열

대한민국 18, 19, 20대 국회의원(수원시 장안구/수원시 갑)



화산 PAP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1998년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첫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4년 뒤에는 경기도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이 당시는 워낙 한나라당이 나오기만 하면 당선이 되던 시절이라서 현역 도의원임에도 큰 차이로 3위 낙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공천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박종희로 훗날 이찬열과 많은 인연(?)을 쌓게 되는 인물이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손학규계로 분류된 인물로 2007년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할 때 같이 당을 옮겼다. 그리고 대선 참패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2008년 총선에 수원시 장안구 지역구 후보로 공천받아 출마하였으나 패배했다. 하지만, 이때 당선된 박종희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2009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해당 지역구에 손학규 차출론이 제기되었고, 자신도 손학규의 공천을 주장하였지만 손학규 자신이 고사하면서 이는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손학규의 절대적인 지원 아래 유명 아나운서 출신인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를 누르고 당선에 성공했다. 이는 박찬숙이 영통에서 옮겨온 후보라는 점과 사실상 손학규의 대리인으로 선거를 치룬 것에 기인한 성과였다. 또 아내와의 결혼 스토리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반장 부반장으로 만난 아내가 사고로 무릎이 파열되는 장애를 당하면서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그대로 결혼한 이야기가 알려진 것이 표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19대 총선에서는 김용남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고,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박종희를 누르고 3선 의원 고지를 밟게 되었다. 

2016년 10월 20일 손학규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 다음 날 따라 탈당하였다. 다만 한국정당사에서는 보기 드물게 좋은 분위기에서 탈당하였다고 한다. 우선 탈당의 이유로서 손학규 대표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한 "삶의 도리" 때문이라 밝혔으며, 떠나는 인사로서 "제가 몸은 떠나도 민주당을 사랑하고 민주당 당원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인이 분위기 좋게 나갔으며, 손학규와 워낙 친했구, 본인 정치인생사에서 손학규의 도움이 절대적이였던걸 알기에 민주당 의원들이나 민주당 지지자들도 나쁜감정없이 이찬열을 보내기도 했다. 탈당에 앞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추 대표는 이 의원에게 '손 전 대표를 업고 다시 당에 오시라', '한자리 아니라 두자리도 깔겠다'며 덕담을 건넸다고 한다. 

2017년 2월 7일 국민의당 합류를 선언한 손학규를 따라 2월 10일 국민의당에 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