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소련이 대립하전 시절, 제2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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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이 대립하전 시절, 제2세계


2017. 12. 3.

제2세계

빨간 부분이 제2세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시절 소련 및 공산권 국가들이 세운 블록을 말한다. 여기서 공산주의 국가일지라도 소련과의 관계가 험악하게 벌어져,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과의 대립에 중립을 표방한 국가는 제외된다. 즉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소련과의 관계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제2세계였지만 그 이후에는 제3세계로 분류되었다.

넓게는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공산주의국가나 쿠바 등 기타 대륙의 공산국가가 포함되기도 하는데, 다만 이들 중 중국과 같이 소련과는 독자적인 공산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나라는 제2세계가 아닌, 제3세계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럽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는 이들 제2세계 국가들은 구 소련과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국어로 쓰이는 편이며, 로마 대주교인 교황의 영향권 아래 있는 제1세계와 달리, 역사적으로도 동로마 제국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영향을 받고 동방정교를 믿으면서 유럽의 제1세계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국가들이다. 물론 오스만 투르크에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한 이후로는 제각각의 교회로 찢어져 나갔지만.

평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역사도 꽤나 복잡하고 냉전시기를 평화적으로 벗어난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문명의 경계면 역할을 수행하던 동유럽이 중심인지라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드물다. 몽골, 튀르크 등 이민족에게 장기지배당하면서 중세이전의 왕국 문명은 거의 파괴되거나 잊혀졌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여러 민족들이 불연속적으로 분포해 민족분포를 기준으로 국경을 다시 그으면 엄청난 숫자의 월경지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접경국가와도 싸우고 이민족, 이교도끼리 계속 치고 받는 혼돈뿐인 가난한 동네라는 이미지.

그래도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엔 동구권(및 북한)의 전후 복구 속도가 워낙 빨라 잠시나마 제1세계에 경이로움 동시에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늦어야 60년대 초중반 까지고, 이후로는 제1세계의 경제발전 속도가 훨씬 빠른 한편 제2세계는 정체되면서 역전되었다.


실은 제2세계는 절대 다수가 단지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가로서 뭉쳐있었을 뿐이었고, 그나마도 틈만 나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안달이었다. 1953년 동베를린 사태, 헝가리 혁명, 프라하의 봄, 폴란드의 반소 운동 등 동구권에서는 숱하게 소련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더욱이 이는 대부분 소련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그나마 중국이나 유고슬라비아처럼 소련의 위성국가가 아니었던 경우는 거의 냉전 초기부터 아예 따로 놀았다. 유고슬라비아는 제3세계 운동의 지도자격 국가 중 하나였고, 심지어 중국은 제3세계 운동에 기웃거리다 결국 중소결렬 이후 핑퐁외교를 통해 미국과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그 와중에 북한은 중국-소련간 불화로 인해 생긴 틈 사이에서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독자노선을 걷는다.


한편 제2세계 국가들은 내정으로도 소련의 KGB나 동독의 슈타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6.4 항쟁, 북한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가 없는 독재 정치 등,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정치가 횡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들은 한때나마 사회주의를 선망했던 제1세계 좌익세력들을 실망시켰으며, 이후 이들이 사민주의 노선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소련마저 무너지고 2세계 국가들이 대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수용한 이후로는 낙후된 경제와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민족갈등으로 인한 소요사태로 인해 이 동네 이미지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발칸 반도 분리주의자들이 벌이는 유혈사태나 우크라이나 내전만 봐도...

그래서 현대까지도 제2세계 국가들 중 동유럽과 러시아는 백인국가임에도 제1세계 키보드워리어들로부터 "니들이 무슨 유럽이냐, 아시아 놈들이지." 혹은 "너네들은 어디 가서 유럽인이라 하지마라, 쪽팔린다!" 라는 인종차별적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이미지가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