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해 온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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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해 온 이순재


2017. 10. 15.

이순재
"나이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버리면 늙어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예요."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에서-


1956년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HLKZ-TV에서부터 출연했으므로, 그의 연기 인생은 대한민국 텔레비전 드라마 역사의 처음부터 맥락을 같이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함경북도 회령군 출생,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출생지는 회령이지만, 5살 때(1938년)에 조부모님이 계신 경성부(서울)로 왔고, 해방 후 부모님도 서울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어릴 때 힘들게 살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등록금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50년, 6월 25일 동생 수영복을 사러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54학번이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래 정치학과에 들어가려 했으나 떨어지는 바람에 철학과로 원서를 넣어 재수해서 들어갔다. 이후 평범한 학생연극부에 입부하면서 배우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1964년 12월 7일 동양방송 공채 1기 탤런트로 입사해 본격적인 텔레비전 연기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전국 노래자랑의 송해(1927년생) 다음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연예인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원로 배우.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했으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상도, 야인시대, 이산, 베토벤 바이러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했다. 빈틈없는 자기관리와 신념, 그리고 대체로 선역을 맡아서 이미지가 좋다. 연극부 출신이면서, 집음 장비가 나빴던 옛날 연극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래서 고령인데도 발성과 발음이 아직까지도 뛰어나다. 복합모음인 ㅙ와 단모음인 ㅚ 발음을 구분할 만큼. 



특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우연히 본 야동에 빠져 가족 몰래 보던 것이 들켜 빈축을 사게 된 일명 '야동 순재' 캐릭터로 인해 젊은 층에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지껏 그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역할이었으나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다. 하이킥은 젊은 출연자들도 고충을 토로한 일일 시트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고령이심에도 정정한 모습에 감탄할 따름. 1934년생 배우가 시트콤에서 야동 가지고 개그 연기를 하면서 인기까지 높다니,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이순재는 타고난 천재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올라운드 그 자체다.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제대로 된 악역이 뭔지를 보여준 반면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최고의 개그 캐릭터이기까지 했고 '야인시대'에서는 자상한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뭘 맡겨도 제대로 소화해내는 모습은 되려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하이킥 이후 원로 연기자로서 굵직한 사건이 터지면 그의 의견을 묻는 인터뷰가 잦다. 실제로 그가 못마땅해 하는게 요즘 들어가보면 다들 대본은 안보고 딴짓한다든가 하는 일들. 남에게 훈련을 강조하며 본인 스스로도 매일 발성연습을 몇시간씩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일단 이게 기초작업이고 연기로 가면 시간이 더 왕창 들어간다. 본인은 오랜 연기 인생의 비결로 암기력, 금주, 연구를 꼽았다. 특히 술에 대해서는 당시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배우들은 지금 대부분 연기에서 은퇴했다고 금주를 강조했다. 실제로도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대신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만든다.

스스로 작품 복은 좋은데, 상복은 없는 배우라 말할 정도로 히트작은 많지만 굵직한 상과는 인연이 없다. 하이킥의 야동순재 역으로 무한도전 팀과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을 공동 수상한 게 가장 큰 상일 정도. 연기대상을 탈 뻔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김혜자와 강부자에게 밀려 수상을 못 했었다. 긴 세월 연기해 온 그에게 연기대상 한번 안기지 않는 방송사들이 이상하긴 하다.

하이킥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으며, 엄마가 뿔났다에서 보여준 '노년의 사랑'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도 신구와 함께 가장 인지도 있는 남성 장년 연기자일 것이며, 그 실례로 그가 라이나생명 실버 보험 광고에서 말한 대사는 개그 콘서트의 도움상회에서 패러디 되며 좋은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실제로 전화를 해보면 이름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텔레비전 보험광고에서는 보험가입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은 물어본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그러나 이후에는 무자격자의 보장내용 설명이 금지되어 광고내용이 변경되었다. 이후 보험설계사 자격을 취득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속작인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이순재 역으로 출연했다. 전작을 이어 출연하는 단 두명인 배우(다른 한 명은 풍파고 교감분의 홍순창). 

2009년에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업(Up)에서 주인공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연기했다.인터뷰 "일반적인 연예인 더빙" 수준이 아니라 역대 연예인 사상 최고의 애니메이션 더빙으로 평가받을만큼 절륜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한 평론가는 "초콜렛"이 아닌 "쪼꼬렛"이라는 할아버지 캐릭터에 맞는 발음을 구사한 것을 극찬하기도 했다.


자신의 긴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으로 1982년 KBS사극 <풍운>에서 맡았던 흥선 대원군역을 꼽았다. 또한 다시 한번 더 연기하고 싶은 배역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윤보선 대통령 역을 자주 맡았다.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에서 4번. 


가상의 대통령 역도 몇 번 맡았는데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대물, 한반도 등이 그 예. 그런데 이렇게 가상의 대통령일 때는 주로 차기 대선을 앞둔 임기 후반이고, 후임 대통령이 될 등장인물에게 우호적이다.
여담으로 다수 작품에서 국왕 역할도 종종 맡지만 대체역사물인 마이 프린세스, 더킹 투하츠에서는 국왕이 아닌 국왕의 최측근 역을 맡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괴수물 <대괴수 용가리>(심형래 괴작이 아니라 판문점에서 솟아난 원조)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1967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왕비호는 이순재를 까보라는 요청을 주변에서 자주 받았지만 '그건 진짜로 욕먹는다'는 이유로 결국 고사했다(한 것도 겨우 "어이! 이순재!"라고, 존칭을 빼고 부른 정도...)

2010년부터는 케이블TV 생명보험 광고, 상조회사 광고에 고정 출연 중.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죽을 걸 생각하라고 강권 중.

특히 금융감독원에서 보험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 규정을 강화해서, 이순재 역시도 생명보험공사가 주관하는 보험설계사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고. 그 결과, 역시 서울대 출신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동중에 모의고사 문제 풀기에, 보험사의 교육팀으로부터 교육, 자격요건에 해당하는 30시간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고, 생명보험 관련 문제에서 60점 이상으로 낙방 한번도 없이 합격해 78세의 보험설계사가 되셨다. 

활동 초기에는 텔레비전 외에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는데, 2010년 12월 10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었던 돈키호테에서 오랜만에 연극 배우로 출연했다. 기존에 많이 상연되던 뮤지컬 버전인 맨 오브 라만차의 각색이 아닌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중후한 희곡 버전을 택했고, 여기에 일부 한국식 풍자 요소를 더해 연출했다고 한다. 이순재의 배역은 타이틀 롤인 돈키호테. 다만 단독 캐스팅은 아니고, 후배인 한명구가 번갈아가며 출연했다. 종연 후에도 꽤 인기가 있었는지, 2012년 초순에 같은 극장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다.

2013년 꽃보다 할배에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H4로 출연 꽃할배 열풍을 일으켰다. 출연진중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며, 빠른 걸음과 멈추지 않는 직진본능으로 '직진순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촬영 내내 엄청난 학구열과 열정을 보여줬고 여행지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동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물사랑의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자막으로 뜨는 별명은 '숲속의 친구'.

아끼는 연기자 후배로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언급한 이병헌, 김명민, 이승기, 하지원 등이 있다. 특히 김명민을 향한 칭찬 및 애정이 대단하다. 김명민이 배우로서 노력하는 자세를 보고 있자면 당연한 것일지도.

참고로 상당히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인데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폭군을 보여줬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촐싹거리는 개그 캐릭터를 보여줬으며 아이돌학교에서는 자상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인 이순재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대한민국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8년의 13대 총선에도 민주정의당으로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6년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해줬다고 한다.

정치적 성향은 전반적으로 보수이다. 2011년 10월 22일 KBS 1TV에서 진행한 4대강 정비 사업 홍보 방송 '특별생방송 4대강 새물결맞이'에 출연하여 5분 50초간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에 나무가 무성하고 강에 물이 풍부하게 흐르면 우리 삶도 풍부해진다'라며, 4대강 사업을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새로운 행복이 만들어지게 하는 사업'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2012년 대선에서도 박근혜를 지지했다.

다만 게이트 후 이런 발언을 한 것 보면 지지를 거뒀음을 알 수 있다.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어려운 한 해, 불운의 한 해였다. 반드시 극복되리라 믿는다"는 인사말을 건네 더욱 분명히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