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인류를 먹여살린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구황작물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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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인류를 먹여살린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구황작물 감자


2017. 8. 16.

감자
속씨식물문 가지목 가지과 가지속에 속하는 식물. 남미 안데스 산맥 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고산기후에서 잘 자란다.

어원

조선시대에서는 북에서 유입되었다고 해서 초기에는 북저라고 불렀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감자'라는 단어는 중국 표현 감저(甘藷)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단, 처음에 감저는 감자와 고구마의 통칭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고구마는 단감자, 사탕감자, 호감자, 왜감재, 양감재 등등으로 감자 앞에 접두어를 붙여서 표현했다고 한다. 아직도 함경도나 황해도 지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고구마를 표현한다. 반대로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부르고 감자에 접두어를 붙여 하짓감자라 부른다. 감자 역시 북감자나 알감자 등으로 접두어를 붙여 표현하는 지방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바로 감자라는 단어가 통칭에서 특칭으로 변화한 역사를 보여준다. 실제로 바꿔 부르는 건 방언이 아니라 표준어 쪽이라는 것. 김동인의 소설 제목인 감자도 사실은 고구마를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말방울과 닮았다고 해서 마령서(馬鈴薯)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土豆' 라는 표현을 쓴다. 대만이나 홍콩 쪽은 전자가 주류인듯.

일본에서는 이 마령서를 일본식으로 읽은 바레이쇼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입말로는 보통 '자가이모'라고 부른다. 자카르타에서 온 뿌리식물이라는 뜻. 참고로 고구마는 현재 가고시마의 사쓰마에서 왔기 때문에 사쓰마이모. 가끔 자가이모와 바레이쇼를 따로 구분해서 파는 아스트랄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역사

원래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인 작물. 기원전 3000여년전부터 재배되어 왔고, 이후에 이 일대에서 주식으로 먹어왔다. 다만 이때의 감자는 밍밍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국에다가 넣거나 반찬을 곁들어먹는식으로 먹었던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감자를 말려서 비상식량이나 전투식량으로도 애용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 쌀밥에다가 반찬이나 국을 곁들어먹는게 일반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에 들어왔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럽 상륙의 계기는 식용이 아니라 예쁜 꽃을 보기위한 관상용이었다. 국내에는 19세기 초반에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수분 75%, 녹말 13∼20%, 단백질 1.5∼2.6%, 비타민C가 풍부하며 지방이 거의 없다.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고 생산력도 높다. 추운 곳일수록 당분을 많이 축적하기 때문에, 춥고 건조한 곳에서 더 맛있는 감자가 나온다. 때문에 구황작물로 유명했으며, 세계적으로 인구 부양의 문제가 심각해진 18~19세기에 폭발적으로 그 수요가 증가했다. 


그러나 도입 이후 한동안 아일랜드와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유럽지역에서는 감자는 인기가 없었다. 감자가 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도 있었고, 교회는 성경에 없으며 색깔이 관능적이며 마치 시체를 땅에 묻듯 묻어야 나는 작물이라는 이유로 악마의 작물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유럽인들 관점에서는 맛이 없었다. 맛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현대인이 먹어도 맛이 없다. 참고로 토마토도 먹으면 죽는다는 괴설이 있었는데, 이를 믿었던 옛 사람들은 감자튀김에 토마토 케첩을 찍어 먹는 현대인을 참으로 괴악하게 볼 것이다. 
하지만 이 때의 감자는 아주 못 먹을 정도의 맛은 아니였으며 결정적으로 18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갑작스러운 흉년이 들기 시작하자 기근 대책을 위해 감자를 심을 필요성이 생겨나, 왕과 영주들은 농민들에게 감자 심기를 강요했다. 물론 '강요'라는 표현 답게 "어? 저 아일랜드 것들은 감자 먹고도 잘 사네? 우리도 한번 심어보자!"와 같은 의미였다. 물론 그걸 강요한 귀족들은 안 먹었지만. 결국 19세기 초 세르비아에서는 감자를 안 심으면 곤장을 때리겠다고 농민들을 협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감자를 심고 수확했는데, 그래도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왜냐면 농민들이 감자를 심고서는 일반 채소인 줄 알고 이파리만 먹어서 시름시름 앓는 막장크리가 터져버린 것. 심으라고 강요한 귀족은 안 먹는 음식이니 일단 노동력 확보랑 기근 대책을 위해 무조건 심으라고 했을 뿐이고, 농부들은 가느다란 줄기를 가진 감자를 왜 심는지 이해가 안 갔을 터이다. 결국 시행착오를 거친 실험 끝에 어디를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는데도 꽤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다고. 당시의 의사들을 반강제로 가둬놓고 감자를 부위별로 먹인, 왠지 마루타가 생각나는 실험은 꽤 유명하다. 

그리고 농민들이 감자를 거부한 이유 중에 하나로는, 높으신 분들이 감자를 심게 한 속뜻을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즉 심으라는 대로 감자를 재배하면 '니들은 감자 먹으면 굶지는 않지?' 하면서 다른 곡물(특히 밀)은 모조리 다 빼앗아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곡물이면 몰라도 감자는 시장에 가져가도 사 갈 사람도 없으니, 말 그대로 1년 내내 감자 외엔 구경조차 못하면서 하루하루 연명만 하는 가난뱅이로 굴러떨어질 게 뻔한 것. 실제로 아일랜드는 그렇게 됐다.

1~2차대전 중 밀 재배면적이 부족한 독일이 어떻게든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감자의 역할이 컸다. 감자에서 추출한 당분으로 설탕을 만들고 전분을 따로 추출해 빵을 만들고 나머지를 발효시켜 알콜화하여 연료로 사용했다. 과연 최고의 구황작물. 감자의 1 에이커 당 생산칼로리는 약 920만으로 옥수수 (750만),쌀 (740만),밀 (300만),콩 (280만)보다 높다. 게다가 단순히 단위면적당 칼로리만 높은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열량작물들을 키우기 힘든, 춥고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빠르게 수확할수 있는 작물이니 그 가치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 이미 단위 면적당 인구부양력이 높은 작물을 갖고 있던 아시아권과 달리, 유럽에서 감자의 보급은 폭발적인 인구부양력으로 18세기~20세기 전반 내내 산업혁명의 원동력들 중 하나가 되었고, 더 나아가 팽창주의를 가능케 했다 봐도 좋을 정도이다.


각국의 전래 과정 - 잉글랜드

잉글랜드인으로 처음 감자를 먹은 사람은 귀족인 월터 롤리(1552~1618)라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의 대인배, 아니 굉장히 용감한 터프가이로 인정받았다. 몇몇 사람들은 죽을 것을 걱정했다나. 이 양반은 담배도 잉글랜드인 중에서 처음 피워본 잉글랜드인 첫 애연가이기도 하다. 

다만 처음에 감자를 잉글랜드에 심을 때도 겪는 시행착오인 풀만 먹고 맛 없어하는 이들에게 엄청 욕먹었다고 한다. 처음에 감자를 먹어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풀을 먹고 "이걸 과인 보고 먹으라는 거요?!" 라며 분노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담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주인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자 화재로 알고 기겁한 하인이 물벼락을 끼얹은 일도 있다.

롤리가 제임스 1세의 노여움을 받아 참수형을 당할 때, 정적들은 "불에 탄 감자가 참수된다!!"고 비꼬았을 정도로 담배와 감자로 이미지가 깊었다고 한다.

각국의 전래 과정 - 아일랜드 공화국

19세기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 상태로 농토 대부분을 영국인 부재지주를 포함한 지주들이 차지했고, 이들이 농민들이 거둔 밀을 수탈해서 거의 전량 영국에 넘겼기 때문에, 소작농들은 상대적으로 저가이고 영국 본토에서는 거의 먹지 않아 징세와 판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감자를 대량으로 재배, 거의 전적으로 의존했다. 감자와 버터밀크 외에는 모두 영국에 뺏겨서 남은 게 그것뿐이었기 때문.

그래도 감자만으로 먹고 사는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하층민들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게 되었으며, 아일랜드의 인구는 200만에서 800만으로 4배나 급증하게 된다. 감자가 균형있는 영양성분을 가지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일.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맬서스의 인구론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높으신 분들의 시각이 좋지 않은 게 당연하다. 그러다가 전 유럽을 강타한 감자마름병으로 감자 수확이 장기간에 걸쳐 크게 줄었는데, 정작 밀의 수출량 규제가 이뤄지지 않아 급기야는 아일랜드인 3명 중 1명이 기아로 죽는 대참사를 겪게 된다.

여담으로 코난 오브라이언이 직원 평가를 할 때 "불이 나면 나를 업고 갈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한 직원이 "그럼요, 감자포대 얹어 가듯이…"라고 했다가 코난이 "감자 포대? 내가 아일랜드인이라 그런가?"라며 비꼰다.


각국의 전래 과정 - 프랑스

불어로 감자는 '폼 드 테르(Pomme de terre)'이다. 즉 땅의 사과. 사실 생감자를 코를 막고 베어물면 사과와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감자는 생으로 먹어도 된다. 다만 익히면 맛이 좋을 뿐.

프랑스는 상당히 일찍부터 감자를 많이 먹었는데 이는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깊다. 당시 왕궁에서는 감자를 관상용으로 재배했는데, 민중들은 왕궁에서 소중히 기르는 감자가 매우 맛있으리라 생각하고 밤에 숨어들어 훔쳐가기까지 했다.

프랑스에 감자를 보급한 중농학파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Antoine-Augustin Parmentier)는 이걸 이용해서 감자를 퍼뜨렸다고 한다. 루이 16세로부터 받은 황무지에 감자를 심어 놓고는 "이거 엄청 귀한 거니까 훔쳐가면 죽는다!!"라고 써붙여 놓은 것. 그리고 낮에는 병사를 두어 엄중하게 지키다가, 밤에는 훔쳐가기 쉬우라고 일부러 밭을 지키지 않게 했다. 당연하게도(?) 많은 백성들이 허술한 경비를 따돌리고 이를 훔치면서, 감자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맛이 다를 리가 없건만 훔쳐먹은 자들은 무지 맛있더라는 소문까지 퍼뜨렸고, 혁명 전후 프랑스 전역에서 감자가 유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파르망티에는 이렇게 막돼먹은(?) 방법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빈민들에게 음식을 나눠 줄 때 특별히 감자로 만든 수프를 배급하기도 하고, 왕실 연회 때 감자로 만든 요리들을 대거 올려서 홍보하는 등의 방법도 사용했다. 사실 앙투아네트가 감자꽃을 머리 장식으로 사용하게 만든 것도 파르망티에의 공이었다. 이후 파르망티에는 프랑스의 감자 요리 이름(Hachis Parmentier)으로 사용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또 파리의 지하철역 중에는 파르망티에 역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굳이 치면 문익점역이 있는 셈.

덧붙여 파르망티에가 감자의 유용함을 알아챈 곳이 프로이센의 포로수용소다. 7년전쟁 초반에 잡혀 6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 내내 감자만 주구장창 먹였다고. 이전까지 프랑스는 감자는 사람이 먹을 게 못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는데, 6년 내내 먹어보니 감자도 사람이 먹어도 되는 작물이고, 영양공급에도 유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한다. 6년 내내 강제로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고 고향에 가서 주변사람들에게 권한 것이 놀랍다. 그리고 당시 프로이센에서도 감자는 사람이 먹을 게 못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돼지 사료로나 쓰고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포로들에게 동물 사료를 먹인 것으로, 엄연한 포로 학대. 당시는 포로에 대한 국제 규정이 없기도 했고, 수도가 2번이나 털리던 시절에 포로들 먹을 걸 제대로 챙겨줄 여력이 있을 리는 없었겠지만.


각국의 전래 과정 - 프로이센

프로이센에서는 이전부터 재배하고 있기는 했으나 돼지 사료로나 쓰고 있었다. 그러다 1774년 전국에 대흉작이 들자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를 구황작물로 심으라고 전국에 명령했는데, "개조차 맛이 없어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을 먹어야 한단 말입니까?"라는 상소문이 날아왔다. 이에 프리드리히는 자기가 직접 매일 감자를 먹어 여론을 무마시키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감자를 보급하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 초기에는 심으라고 보낸 감자를 농민들이 항의하면서 보내는 족족 불에 태워버리는 일이 잦아들자, 마을 곳곳에 공터에 감자를 심어놓고 이것을 근위병(!)까지 동원하여 감자밭을 꾸미고 지키게 하였다. 이것이 프리드리히 대왕이 매일 감자를 먹는다는 소식이 퍼지는 것과 더불어서 프랑스에서처럼 입소문이 돌면서 농민들이 자진해서 공터에 심어진 감자를 서리하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후일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 보급을 기념하는 뜻으로 '감자 대왕' 이라는 애칭을 얻었고, 요즘도 그의 묘를 방문할때 감자를 두고 오는 독일인들이 많다고 한다.

각국의 전래 과정 - 오스만 제국

현대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감자요리가 보급되어 있고, 빵보다도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나 학교 급식, 군대 짬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채소다. 

하지만 의외로 옥수수의 도입이 이미 16세기 말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자의 도입시기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도 늦은 편이다. 크게 3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1850년설, 1853년설, 1875년설이 존재한다. 공통적으로 이 시기에 당시 러시아령인 카프카스에서 흑해,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유입되었다고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감자는 건조한 스탭기후지역인 중부 및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재배가 적합했기도 했고, 기근에 대비하기 위한 구황작물로 각광을 받아 도입 초기부터 오스만 제국 정부측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감자를 보급했기 때문에 불과 20여 년만에 감자는 당시 오스만 제국령 전체로 퍼질 수 있었다. 특히 1876년 아나파자르에 당시 휘다벤디갸르(Hüdavendihâr) 태수였던 아흐메트 웨픽 파샤(Ahmet Vefik Paşa)가 감자 시범농장을 세우면서 본격적인 터키 기후에 적합한 감자개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각종 질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도입한 감자품종을 교배시켜서 오늘날과 같은 터키 감자종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스에서도 같은 감자종을 주로 재배한다.


각국의 전래 과정 - 중국

명나라대에 옥수수, 고구마와 함께 전래되었다. 청나라대의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기여한 작물로 19세기까지는 단맛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옥수수와 고구마에 비해 재배가 적었으나, 옥수수와 고구마로도 인구가 감당이 안 되는 19세기에 들어서며 재배가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안데스 산맥 출신인 감자는 옥수수와 함께 청 중기 이후 활발히 개간된, 쓰촨에서 윈난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산지대에 재배하기에 매우 적합한 산물이었다.

오늘날 중국은 그 땅넓이만큼 엄청난 감자를 재배하지만, 실상 중국에서 감자를 주요하게 소비하는 형태는 바로 감자전분이다. 중국 요리의 튀김옷에 쓰거나, 소스에 넣어 소스에 점도를 만들어 주는 물녹말을 넣기 때문에 전분 없는 중국 요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 물론 옥수수 전분 등 다른 곡물의 전분도 사용하지만, 감자전분이 품질도 좋고, 음식의 식감도 더 좋다. 마트에 가서 감자전분과 옥수수전분을 비교해보면 감자전분이 더 비싸다.

각국의 전래 과정 - 한국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9세기 1824 ~ 25년 경에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한다. 청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조선에 직접적으로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인삼 서리하러 넘어왔을 때 먹고 버티려고 감자를 심었던 게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감자가 조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감자를 심자 정부에서 금령을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함경북도 무산군의 수령 이형재가 감자를 보급하려 할 때도 감자를 심던 사람들이 벌 받을까봐 시치미를 떼며 씨감자를 주지 않아, 많은 양의 소금과 교환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한다.

이렇게 도입되어 감자는 한반도 북방 지역과 강원도 산간까지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남부까지 전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례로 1832년에 전라북도 지방에 머물렀던 영국인 암허스트 호가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서울에서 감자가 공식적으로 처음 재배된 것은 1883년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이는 추정컨데 이미 17세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가 남부 지방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어서 감자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고, 반대로 북부지방에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이유도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서 추운 북부지역에 별로 전파되지 못해서 대신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에 한반도 지역에서 감자 먹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명백한 고증오류이다.


역사적으로는 이렇고, 2015년 현재 연간 생산량 998,460톤(통계청 집계)인 감자의 주 산지는 원산지처럼 고산지대인 강원도(전국 생산량의 35%)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상북도(15%) 충청남도 순서이다. 제주도산 감자가 대형 마트에 꽤 들어와 있지만, 생산량은 서울특별시나 광주광역시 같은 대도시 빼면 전국 최하위권. 그래도 9,900톤인 인천광역시보다 20,600톤으로 2배 이상 많긴 하다.

각국의 전래 과정 - 일본

1603년 네덜란드를 통해 전파받았다고 한다. 이 때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점령한 거점 자카르타를 거쳐 전래되었기 때문에, '자카르타의 식용 뿌리 작물(芋, 본 의미로는 토란)'이라는 뜻의 '자가이모(じゃが芋, じゃがいも)'라고 불린다. 자카르타가 있던 인도네시아의 섬의 이름인 자바(혹은 자와)에서 자가이모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특징

백날 덩이줄기만 먹다보니 사실은 그게 주식인데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감자도 열매가 열린다. 거의 사어(死語)가 되긴 했지만 '감자꽈리'라고 부른다. 생긴 건 완벽히 방울토마토. 이것은 감자가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 식물이기 때문에 열매 모양이 비슷한 것이다. 물론 토마토처럼 익어도 빨갛게 되거나 하진 않는데, 맹독성이다. 

독성

사실 가지과 식물들은 대부분 독성이 있는데, 독성이 있는 부위가 있고 독성이 없는 부위가 있다. 그 부위를 먹는 것이다. 보통 솔라닌(solanine)이 대표적인 독성 물질인데, 감자의 싹에서 나오는 독성 물질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가지류 독성 물질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감자는 덩이줄기에, 가지와 토마토는 열매에만 독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벨라도나(Belladonna)처럼 오히려 아트로핀과 같은 독성분을 추출, 약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독성이 없다고 해도 토마토, 고추에도 솔라닌이 극소량 포함되어 있고, 감자는 이 중 가장 많은 솔라닌을 포함하고 있어서 싱싱한 감자에도 솔라닌이 들어 있다(7mg/100g).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감자 싹에 가장 많은 솔라닌이 포함되어 있으며(80∼100mg/100g), 이 때문에 감자 싹이 났을 때는 이를 잘라내고 먹는 것이 좋다. 


물론 감자 살 자체도 약간의 솔라닌 증가가 있긴 하지만 그리 크지 않고, 중독 증상이 나타나려면 체중 1kg당 2~5mg 정도를 섭취해야 하므로, 60kg 성인 기준 감자만 최소 1.5kg 넘게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듯 하다. 다만 민감한 사람의 경우엔 조심하는 것이 좋으며, 판춘문예등에선 가끔 솔라닌 중독 후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50년 동안 솔라닌 중독 사례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쨌든 녹색으로 변신한 감자는 피하는 게 좋겠다.

가끔 슈퍼마켓에서도 보존이 잘못된 감자가 녹색 빛을 띄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잘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익히면 독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솔라닌이 분해될 정도의 온도(약 285도…)에서는 감자가 타버린다.

조리법과 참고사항

감자 자체에 대해 살펴보자면, 통통한 덩이줄기를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볶아 먹고 쪄 먹고 갈아 먹고 기타 등등 하여간 오만가지 방법으로 요리할 수 있다. 소주, 보드카의 주 원료이기도 하며, 기르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전분이 많아서 갈아서 즙을 따로 모은 다음 가라앉은 전분을 이용하기도 하며 감자전의 경우 그렇게 짠 감자와 전분을 합쳐 지져 먹는 요리이다. 걸러놓고 다시 합친다. 이 전분은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찌개나 카레 같은 매운 음식에 넣으면 매운맛이 상당히 순해진다. 대신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전분이 빠져나와 국물이 탁해지기도 하므로 국에 넣어 먹을 때는 가급적 바로 먹는 게 좋다.

익혀도 비타민C가 잘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 제약용으로 제조되는 비타민C 분말은 감자로부터 추출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식량난에 시달리던 나치 독일에서는 껍질을 까먹으면 감자의 식용 면적 손실이 크니까 삶아서 껍질째 먹으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비타민 C의 효율적인 섭취임은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기근을 버티는 데 그나마 도움이 되긴 했다.

여러 가지로 조리해도 영양분 손실이 없는 탓인지 각국의 요리들도 조리법이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 가장 독특한 조리법은 페루의 추노라는 요리에 쓰인 방법이다. 오직 그 기후이기에 가능한 조리법으로 영하로 떨어지는 밤에 감자를 넣어놓고 얼게 놔둔다. 그리고 낮이 되어 해동되면 발로 밟아 물을 빼고 햇빛에 말린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면 스펀지같은 질감이 되어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는데(최대 6년간), 이 조리법이 훗날 냉동감자튀김에 모티브를 주었고, 잉카 제국에서도 이 언감자를 전투식량이나 흉년이 났을 때의 비상식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얼어버린 감자를 이용하는 요리법은 함경도 등 한반도 북부의 산간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언감자국수나 언감자떡, 언감자만두 같은 향토 음식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썩은 감자(!)까지 조리법이 따로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줴기밥에 소금국이 고난의 행군 시기 뽀그리우스의 행적을 상징한다면, 언감자에 찬두부는 혹부리우스의 업적과 고난을 상징하는 관용어구처럼 쓰이고 있다. 그의 항일투쟁 시기를 상징하는 음식이라면서, 방북한 남한/해외 인사들에게도 최소한 한 끼는 언감자국수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황석영, 송두율, 문선명 등 방북 경험자들도 수기나 인터뷰 등으로 이러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점질감자와 분질감자

감자의 품종은 크게 '분질감자(Starchy Potato)'와 '점질감자(Creamer/Waxy Potato)'로 나뉜다. 분질감자는 튀김요리나 쪄서 먹는 요리에 맞고, 점질감자는 잘 부서지지 않기 때문에 국물요리나 볶음같은 요리에 적당하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감자는 수분 함량이 높아 튀김용으로는 부적합하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한국 감자의 80%에 달하는 수미칩으로 유명해진 '수미(Superior)' 품종이 그렇다. 수미 감자는 1960년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나온 품종으로, 따뜻한 미국 중부 이남(앨라배마, 텍사스 등)에서 기를 수 있는 품종을 들여온 것이다. 속살이 희고 수분이 많은 것이 특징인 대표적인 점질 감자다. 점질 감자는 튀겼을 때도 분질 감자에 비해 바삭한 식감이 떨어지고, 껍질 쪽의 당분이 쉽게 타기 때문에 감자튀김의 색이 이쁘게 나오지 않는다. 패스트푸드에서 프렌치 프라이용 감자를 수입산으로 쓰는 이유다. 전분은 오히려 분질 감자가 더 많다. 한국 감자로 볶음을 하기 전에 물에 담가두는 것도, 그나마 있는 전분마저 빼서 감자가 부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수미감자는 7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새로 도입되었는데, 수확량이 더 많고 더위를 버티는 내서성도 강해서 아무데서나 잘 자라니, 이후 한국 감자생산량의 70~80%를 수미 감자가 점유해버렸다. 분질 감자에 비해서 쪄서 먹으면 특유의 포슬포슬한 속살의 맛이 없고 금방 딱딱하게 굳어버리는데, 대신 감자를 볶음이나 조림 이외에는 단독요리로는 많이 해먹지 않고 거의 찌개 요리에 넣어서 먹을 때 국물 안에서 쉽게 부스러지지 않는 등의 특징으로 현재 한국 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 원래 포테이토칩 등을 만드는 가공용으로 나온 품종이기에, 일반 소매용 외에도 과자회사 등에도 판로가 있으니 농민들이 더 많이 재배하게 된 이유도 있다.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포테이토는 한국 감자가 아닌 미국산 '러셋 버뱅크(Russet Burbank)'. 이 품종은 수분이 적어 튀김에 적합하다. 이것만큼은 수입산 감자(아이다호 산 분질감자)로 해야 바삭바삭한 맛이 살아난다.(현재는 러셋버뱅크 품종 말고 다른 감자들이 재배되고 있다.)

원래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전래된 미국산 '남작' 품종의 분질 감자를 많이 먹었다. '남작'은 위에 언급된 아이다호산 '러셋 버뱅크'처럼 녹말(전분)성분이 많은 분질감자. 미국산 Irish Cobbler 품종을 영국을 통해 일본이 도입해서 홋카이도에서 재배하던 품종. 이름이 남작인 이유는 영국에서 일본으로 가져온 사람이 '가와다 남작'이어서다. 한국에는 1928년에 전해졌다. '남작'도 도래된지 아직 100년이 안된 것이다. 흔히 '옛날감자', '강원도 토종감자' 등으로 팔리는 게 이 남작인데, 엄밀히 말하면 강원도 자주감자(춘천재래) 등이 더 오래된 토종감자이고, (남미가 원산인 마당에 토종 운운이 우습기도 하지만) 남작은 이름에서부터 추운 아일랜드산을 서늘한 미 북부나 캐나다 앨버타 등지에 맞게 개량한 품종이다.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미감자가 재배량을 독점하는 상황을 아쉽게 여기기도 한다.


'수미' 감자 한가지 맛으로 통일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분질 감자의 부슬부슬한 식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홍감자 {홍심이(아이노아카), 로즈밸리}나 '두백, 대서' 감자같은 분질 감자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분질감자와 점질감자의 중간적인 성질의 '두백'이라는 품종도 요즘 조금씩 판매되기도 한다.(수미도 중간성질 이다.) 두백은 국내 모기업의 감자연구소에서 교배하던 과정에서 나온 돌연변이종을 개량한 것으로, 수미감자에 비해서 전분이 3% 정도 높은데, 그 3%의 차이로 식감이 많이 달라서 예전의 남작감자와 비슷한 분질감자의 맛이 난다. 쉽게 부서지지 않으므로 감자조림 같은 것에는 어울리지만, 굽거나 쪄서 먹을 경우에는 전분이 적어서 포슬포슬하고 부드럽지 않고, 금방 딱딱하고 찐득하게 변해버리는 식감 때문에 포근한 느낌의 남작 감자에 비해 식감이나 향미가 떨어진다.

다만 한국 남부에서도 대서, 장원(러셋), 오륜, 구이밸리와 같은 분질감자를 재배되는 걸 보면 모든 분질감자가 찜통더위에 약한 건 또 아닌 듯하다.

흔히 프렌치 프라이의 예를 들어 한국감자는 튀김에 맞지않고 미국산은 맞는다로 단순하게 말하지만, 미국이나 유럽도 2가지의 감자를 다 먹는다. 요리의 종류에 따라서 그 용도를 나누어 쓰는 것일 뿐이다. 물론 미국인들은 그놈의 프렌치 프라이 성애자들이라 분질감자인 아이다호산 '러셋'감자의 소비율이 50%를 넘지만, 미국에서도 '유콘 골드'(Yukon Gold) 같은 점질감자도 먹는다.

감자의 단점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몇 단점이 있는데, 우선 병충해에 취약해서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 게다가 감자는 교배를 통해 유전자를 바꾸지 않고 씨감자의 눈만 떼어 심기 때문에 대대로, 여러 지역에 걸쳐 유전형이 고정되어 있어서 한 차례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면 모든 감자가 순식간에 전멸하고 만다. 대표적인 것이 1847년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대기근. 치명적인 감자 역병이 돌면서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가 순식간에 전멸했고 100만 명 가까운 아일랜드인이 굶어죽었다. 물론 대기근의 시작은 감자이지만, 이는 이웃나라 영국의 비협조도 한몫했다.

수분이 많아 무게가 무겁고 운송이 어려우며, 때문에 쉽게 얼거나 썩게 된다. 감자 무게의 70%가 물이라 열량도 다른 곡물에 비해 많이 딸린다. 쌀 100g이면 370kcal지만, 감자는 100g에 77kcal가 고작이다.

이를 운송할 만한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서 감자는 생산지에서 바로바로 소모해야 할 식품이라는 의미.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주식작물로는 재배가 힘들고, 대체 혹은 구황작물 이상의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현재 북한이 주식작물인 옥수수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감자농업혁명"을 내세우며 감자 재배 면적을 마구 늘리고 있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큰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사실 감자농업혁명이란 것 자체가 김정일이 시찰 중에 언급한 즉흥적인 결정에 가깝다.


감자같이 지하에서 나오는 작물을 중심으로 발전한 농경문화를 근재농경문화라고 하는데, 주로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등의 태평양 지역에 발달했다. 이 문화 지역에서는 주 작물로 감자류의 일종인 타로, 참마, 빵나무, 바나나 등을 재배했는데 모두 감자처럼 쩌먹는 식물이었다는 것이 특징. 주요 재배작물인 감자류가 열량 대비 부피가 너무 커서 대규모 수송과 저장이 어려워 부가 집중될 수 없었기 떄문에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체계나 대국가의 형성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16세기에 유럽인들이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지방정권을 넘어선 곳이 없었다.

또 영양적으로는 쌀밥이나 고구마에 비해 칼로리나 탄수화물 함량은 현저히 낮은 편이나, 혈당지수(GI)가 밥과 비슷하고 고구마보다는 높은 편이라 혈당으로의 전환이 빠르고, 때문에 에너지로 소모하지 못한 잉여 당분이 생기기 쉬워 지방으로 축적되기 쉬운 편이니 주의하자. 

하버드 대학교 공공보건대학원에서 건강을 위해서 다양한 채소의 섭취를 권장하고 있으나 유일하게 감자만 권장 채소에서 제외했다. 그 이유는 감자가 혈당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분이 많기 때문에 맑은 국물을 내기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카레같이 점성이 필요하고 자극이 강한 요리를 할 때에는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맑은 국에 넣으면 끓이면 끓일수록 전분 때문에 국물이 텁텁해진다. 

서민의 음식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봐도 바쁜 하루를 지내고 지친 얼굴로 작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와 같이 찐 감자만 먹는 서민들의 고단한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사실 상기한 대로 유럽에 전파된 직후에는 귀족이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그러나 재배가 용이하여 널리널리 퍼지다보니 서민들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귀족은 먹지 않고 서민들만 먹게 된 것. 경제학에서는 기펜재의 대표적인 예로 감자를 들기도 한다.

전쟁 시기에는 빵과 함께 국가가 배급을 통제하는 주요 주식류 중 하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동맹국이든 연합국이든 간에 감자 마저도 부족해서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은 심할 때는 1인당 빵 1덩어리와 감자 2개로 1주일을 연명해야 하기도 했고, 감자도 떨어지면 사탕무나 순무 등이 대신 배급되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미국은 그런 거 없었다. 도넛과 감자칩을 흡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독일의 경우 전쟁 초기에는 빵과 감자의 비축량이 충분했기 때문에 배급을 통한 통제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괴벨스의 명령에 따라 식당에서 1주일에 이틀은 동물성 음식을 판매할 수 없는 금육일 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감자 두세 접시 정도는 손님이 원하면 추가 비용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 본토가 연합군 공군의 폭격으로 개발살나고, 소련에 선전포고를 한 뒤 동부전선에서 수많은 인력이 징집되어 갈려나가면서부터는 그런 거 없었다.

미 해군은 감자의 부피를 줄일 생각에 건조 감자를 개발했다. 워낙에 수분을 쪽 뺀 나머지 요리 하기 전에는 물에 담궈둘 필요가 있었다고. 영국 해군 전투함이 미 해군 함선과 만날 때 마다 담배나 그로그 등을 교환하고는 했는데, 건조 감자도 넘겨받았다. 근데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미 해군에 "야이 양키 새퀴들아!! 이거 어떻게 처먹어!!!"라는 항의성의 전문을 보냈다고 한다.

건조감자 외에도 미국에서는 찐 감자를 으깨버리고 달군 롤러에 계속 얇게 펴는 작업을 해서 종이 감자를 개발해냈다. 건조 감자보다도 혁신적인 발명품으로서 공간을 거의 차지하지 않고, 원한다면 구기고 찢어서라도 어떻게든 낑겨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2차대전에서 미군의 무시무시한 보급에 이바지했고 무엇보다 간편했다. 이 감자 종이를 종이 묶음처럼 병사들에게 주면 거기에 물 붓고 약간의 유지를 더해서 열 위에서 저어주면 매시드 포테이토를 만들 수 있다. 참고로 현대의 인스턴트 매시드 포테이토 제품도 똑같이 만든다. 아예 감자 종이를 갈아 버려 가루 형태로 만들어서 여러 첨가물을 더해서 판매한다.

감자의 대량 생산에 큰 장애가 되었던 것이 박피작업이었는데, 이는 고압, 고온의 증기를 쬐어 껍질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요리

삶은 감자
사실 요리라고 하긴 민망한 수준으로 간단하지만 가장 쉽게 감자를 먹는 방법이다. 찜통이 있다면 쪄서 먹어도 좋지만 삶는 건 냄비만 있으면 되니 더 간단하다. 묵은 감자는 약간 아리고 떫은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 건 찌는 것보다 삶는 게 낫다. 일단 그냥 감자를 냄비에 넣고 잠길 정도로 물을 넣은 다음 소금을 약간 넣고 센불로 삶으면 된다. 거품이 많이 나는데, 작은 냄비면 넘칠 수 있으니 주의. 젓가락으로 찔러서 쑥 들어갈 정도면 다 익었으며, 거의 다 익었을때 쯤에는 감자가 어느정도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 있다. 물을 따라버린 다음 몇 초 정도 중간불에 올려서 밥 뜸들이듯이 수분을 날리면 편하다. 껍질을 벗기고 삶아도 되고 삶고 나서 벗겨도 되는데, 삶기 전에 까면 더 편하긴 해도 영양소 손실이 더 크다고 하다. 물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껍질 채 먹으면 맛은 좀 별로더라도 몸에는 더 좋다. 이렇게 삶은 감자는 그냥 소금이나 마요네즈 등을 곁들여서 먹어도 되고 아래의 샐러드나 크로켓을 만드는 등 응용을 해도 된다. 물 끓이기 귀찮다면 그릇에 감자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위를 다른 그릇으로 덮은 뒤에, 전자레인지에 딱 10분만 돌려주면 삶은 감자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군감자
군고구마와 만드는 법이 같으며 바삭한 겉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일품이다.

감자국
감자를 주재료로 만드는 국물요리.

감자볶음
감자를 채썰어서 기름에 볶아내는 요리. 참고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올라온 사연 중 무려 9년 동안 매 끼마다 밥과 감자볶음만 먹은 새터민의 사연이 있었다.

감자국수
감자를 으깨서 만드는 반죽으로 만드는 국수.

감자전
감자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요리 중 하나. 독일과 스위스 지역에서 먹는 뢰스티도 감자전의 일종.

푸틴
기름에 튀긴 감자에 그레이비 소스와 녹인 모짜렐라 치즈커드를 뿌린 캐나다의 전통 감자튀김 요리이다.

뇨끼
다른 조리법도 존재하지만 현대에는 감자 뇨키(Gnochi di patata)가 대표적인 뇨끼로 퍼져있다.

알감자조림
일반 커다란 감자가 아닌 크기 이전에 수확한 조금 작은 알감자를 조린 것. 감자를 냄비에 넣고 물을 감자가 3분의 2정도만 잠길 때까지 넣고 간장을 부어 완전히 잠기게 하고 물엿을 2큰술, 소금, 설탕을 약간만 넣고 은근한 불에 졸이면 된다. 절대 센불로 조리하지 마라. 타버린다.

크로켓
감자를 먼저 삶아 으깬다. 볶은 양파와 베샤멜 소스를 기본으로, 거기에다가 취향에 따라 다진 고기를 삶은 감자의 양에 절반정도 준비한 후 당근, 셀러리와 같은 야채를 다져 넣고 볶아낸다. 볶아졌으면 위의 삶은 감자와 주물러 섞어준다. 이 상태에서 모양을 빚어 동그랗게 만들고 겉에 계란물을 묻힌 후 빵가루를 입혀 150도 이상에서 튀기면 완성. 이 때 기름이 마구 튀니 냄비뚜껑을 방패로 삼자.
준비 과정에서 알겠지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 하지만 일단 만들고 튀겨보면 상당히 맛있다. 다행스럽게도 냉동 제품이 나와 있으니, 직접 만들기 귀찮으면 이용하면 된다.


감자튀김
주로 프렌치 프라이와 해시 브라운이 많이 소비된다. 미국인은 1년에 1인당 62kg이라는 엄청난 양의 감자를 먹는데 그 소비량의 35% 정도가 감자튀김이고, 11% 정도가 포테이토칩이다. 생감자 소비량은 25% 정도. 미국인의 감자튀김 사랑, 미국의 비만도가 높은 이유 중 탄산음료와 함께 주요한 이유이다. 학교 식당 같은 데에서 보아도 거의 모든 음식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다. 집에서 해먹긴 좀 힘들다. 튀김 자체가 집에서 하긴 좀 귀찮고 어려운데다가, 그냥 파는 국산감자는 튀김에 어울리지 않는다.

감자칩
감자를 얇게 썰어 튀긴 과자.

웨지 포테이토
일명 웨지감자. 튀기는 방법과 굽는 방법 2가지가 있는데, 굽는 편이 몸에는 덜 나쁘다. 오븐이 있어야 하지만 후라이팬으로도 가능하긴 하다.

니쿠쟈가(고기감자조림)
일본식 감자조림. 일본에서는 서민적이지만 따뜻한 가정을 묘사할때 고기와 감자를 조린 니쿠쟈가라는 요리가 자주 언급된다. 한국에서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떠올리듯이 아내의 니쿠쟈가를 떠올린다나. 만드는 법 자체는 그리 까다로운 편은 아니라서 자취중에도 해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의외로 제대로 만들려면 손이 간다.
이 요리가 일본에서 카레가 보급되는데 간접적으로 공헌을 했다는 말도 있다.
감자를 적당히 썰고 고기는 감자 크기와 비슷한 덩어리로(아니면 조금 작은 카레용 덩어리로) 썬다. 육수를 바로 사용하거나 색을 내기 위해 간장, 가쓰오부시 등을 섞어 낸 국물에 감자와 고기를 졸여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육수의 재료와 개인의 요리실력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요리실력을 가늠하는 요리로 평가되기도 한다.

감자 샐러드
감자를 삶아서 으깬후 마요네즈와 각종 야채를 버무린 음식.

매쉬드 포테이토
미국과 유럽에서 저녁 식사로 고기 요리를 주문하는 경우에 볼 수 있는 음식. 냄비에 감자가 잠길 정도로 붓고 설탕 2큰술을 넣고 휘저어 녹인다.
참고로 이 방법은 오래된 감자를 삶을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오래된 감자는 싹을 다 제거하더라도 이미 껍질이 녹색으로 변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감자의 안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웬만하면 껍질을 싹 벗기고 반으로 갈라보는 것이 좋은데 이렇게 해버리면 먹었을 때 위험은 없더라도 감자의 맛이 물에 빠져나가버린다. 이때 감자를 삶는 물에 (한번에 큰 감자를 5~6개 정도 삶을 수 있는 냄비 기준) 소금 1큰술과 설탕 2큰술 정도를 녹여두면, 삼투압 현상으로 감자 맛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며 설탕과 소금이 감자에 배어 아주 맛있다. 익혀도 까기 힘든 오래된 감자의 껍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감자는 푹 삶아 뭉글뭉글해질때까지 삶는다. 삶은 감자의 껍질을 제거한 후 버터와 우유, 소금, 후추를 넣고 곱게 으깬다. 끝. 주의할 점은 이건 고기 요리에 사이드로 나오는 것이 정석이지, 별도의 요리로 구분해서 이것만으로 식사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식사로 이것을 내놓으면 대접할 것이 없다는 의미로 실례가 되며 이 때문에 매시드 포테이토를 샌드위치 속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 요리로 따지면 그냥 밥만 덜렁 내놓는 꼴. 물론 혼자 한 끼 때우는 거라면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먹어도 상관없긴 하다.

클램차우더
조개와 크림, 적당히 썬 감자를 이용해 만든 미국식 수프.

베이크드 포테이토
미국과 유럽의 매우 대중적인 감자요리로 감자에 칼집을 낸 뒤 오븐에 구워낸 요리다. 칼집을 따라 감자의 껍질이 일어나면서 마치 외투를 입은 듯한 모양이 되기에 재킷 포테이토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뜨거울 때 버터와 치즈 간 것을 뿌려 녹여 먹는다. 보통 바삭바삭한 껍질도 같이 먹는다.
다만 우리나라 감자로는 껍질이 얇아 잘 분리가 안되며 맛도 그닥. 애초에 우리나라 옥수수로는 팝콘이 안 되는 것처럼, 같은 작물도 품종에 따라 요리법은 다른 게 당연하다.

감자탕
이름과는 달리 감자의 비중은 별로 없다시피하다. 사실 감자탕의 감자는 채소 감자를 의미하는게 아니고 돼지뼈 척추에 있는 골을 의미하는 말이다. 고로 오리지날 감자탕에는 원래 감자가 안들어간다.

감자떡
감자의 녹말을 사용한 떡, 속살이 비치는 외관과 감자 특유의 쫀뜩쫀득함이 일품인 떡.

쿰피르
터키 요리로, 익힌 감자를 으깨서 치즈와 고기와 소스를 얹어 빵을 곁들여 먹는다.

감자 팩
감자를 먹는 외에 피부 팩을 하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감자 팩은 햇볕에 많이 노출되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을 경우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이 경우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알로에로 알려져 있으나, 알로에를 구하기 힘든 가정이나 캠핑장 등에서 응급요법으로 흔히 감자팩을 하고 있다.


사용법은 보통 얼굴에 거즈를 깔고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얹은 후, 감자의 색이 변하면 거즈와 함께 떼어내는 방식. 2도 이상의 화상(물집이 생기는 정도)에 이 방법을 썼다가는 세균이 침투하니 이 경우 바로 병원으로 가도록 하자. 환부와 감자가 엉겨붙는 부작용도 생긴다고.

갈아낸 감자즙은 술 때문에 망가진 위장에도 좋아서, 갈아서 짜낸 감자 녹말즙을 꾸준히 먹는 것으로 위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밖에도 매운 맛을 중화시키는 등 여러 자극에서 보호해주는 기능이 있다.

생산지

국가

연간 생산량 (2013)

중국

8,890 만톤

인도 공화국

4,530 만톤

러시아

3,020 만톤

우크라이나

2,230 만톤

미국

1,980 만톤

독일

970 만톤

방글라데시

860 만톤

프랑스

700 만톤

네덜란드

680 만톤

폴란드

630 만톤


감자의 원산지인 페루와 칠레는 엄청난 종류의 토종 감자를 보유하고 있다.

'남작' 감자는 수미가 대세로 떠오르기 전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감자였지만, '수미'보다 병충해에 약하고 수확량이 떨어지고, 고온다습한 기후를 견디는 능력이 떨어져 서늘한 강원도가 아니면 잘 자라지 않는다. 반면 '수미'는 전국 어디나 잘 자란다. 미국에서도 더운 중부 이남에서는 점질 감자를 기르며 한국보다 더 더운 중국 남부, 동남아나 인도 공화국 고지대에서도 역시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점질 감자를 기른다.

강원도가 주산지라 강원도를 대상으로 한 지역드립에 쓰이기도 하는 녀석이다. 예전부터 강원도 사람을 '감자바우'라 부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 '감자국'이라는 신종 지역드립이 생기기도 하였다. 참고로 강원도 이외에도 감자로 유명한 곳은 상당히 많다. 통일되면 감자의 주산지 자리는 함경도에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감자 아니면 자라는 게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의 감자가 유명하며, 남작 품종의 원산지답게 아직도 분질 감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작 다음으로 생산 및 소비량이 높은 '메이퀸'조차 분질이다. 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감자 농사를 홋카이도 아니면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만 기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아이다호의 감자가 유명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감자 생산이 많았던 지역은 유럽, 특히 동유럽과 중유럽이다. 1인당 생산량이 세계 최고. 물론 총생산량에서는 인구빨+농업 대국인 중국에 밀린다.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20%로 1위이며 2위 러시아와 3위 인도 공화국을 합치면 중국과 비슷하다. 유럽에서는 폴란드가 미국과 비슷한 생산량이며 그 다음이 우크라이나와 독일이다.

제주도에서는 '대지마'라는 품종을 많이 재배하는데, 육지의 감자가 떨어질 때쯤 출하되기 때문에 가격을 잘 받을 수 있어 제주도 농민들의 소득에 도움을 준다. 여기서 제주도의 서쪽은 감자농사를 주로 하고, 반면 동쪽은 주로 당근 농사를 짓는데, 제주도 당근은 출하시기상 육지에 비해 별 메리트가 없어서 가격을 잘 받지 못한다. 감자농사를 짓는 서제주보다 동쪽이 못 사는 이유 중 하나.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고령, 서산 팔봉산 감자가 등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