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사카린 밀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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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사카린 밀수 사건


2017. 7. 4.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공업이 일본 미쓰이그룹과 공모하여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들통이 난 밀수 사건이 일어났다. 뒤늦게 경향신문의 폭로로 이 사실이 드러나자 부산 세관은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만원을 부과했다.


사실 중앙정보부의 비호아래 독재정권의 비자금 조달용 사업이었다는 설이 있다. 삼성은 밀수사카린을 팔아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중에 일부를 밀수를 눈감아준 정권에 상납한다는 시나리오. 이 시절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지금도 명확한 진실이 밝혀진건 없다. 다만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는 1993년 출판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정권의 묵인아래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가 이후에 이병철 회장에 의해서 삼성에서 밀려나면서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에, 고백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외에 관계자들은 일절 침묵하고 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이병철 삼성 회장은 한국비료와 대구대를 국가에 헌납하고 은퇴를 선언하면서 삼성그룹 회장을 포함한 모든 지위에서 물러났다. 삼성그룹 회장은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승계했다. 

법적으로는 둘째 이창희가 사카린 밀수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1년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이병철이 은퇴를 선언한지 불과 2년만에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이맹희는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팽당했고, 이 과정에서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둘째 이창희도 숙청되면서 후계자 자리는 셋째인 이건희한테 넘어갔다.

이맹희는 그 이후 삼성그룹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죽을때까지 아무런 대외활동 없이 은둔자로 살아야 했다. 이병철 사후 CJ그룹에서의 유산상속 과정에서도 이맹희를 건너뛰고 이맹희의 장남인 이재현→그 다음에 이맹희의 처남이던 손경식에게 제일제당(현 CJ)이 할당했다. 지금도 심심찮게 불거지는 삼성그룹-CJ그룹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같이 숙청당한 이창희는 스스로 새한미디어를 창업해서 경영하다가 1991년 사망하였다. 새한미디어는 새한그룹으로 발전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공중분해되었다.

1966년 9월 22일, 국회의원 김두한이 이 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 도중 정일권 국무총리 등의 각료를 향해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하고 똥을 뿌린 국회 오물 투척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