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사진 찍지마! X발! 찍지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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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사진 찍지마! X발! 찍지마!" 사건


2017. 5. 29.

유인촌은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 역임.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 2011년에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다.

자신을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역사스페셜의 진행자로도 친숙하며 여러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였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다. 


지금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하다는 이미지로 알려진 편이었다. 역시 연기자는 연기했을뿐... 유인촌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잣대로 인해 엇갈리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또한 연극무대에서의 햄릿 역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그가 젊었을 때는 훌륭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였다. 심지어 2016년에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또다시 햄릿역을 맡기까지 했다. 워낙 엄청난 입지의 배우라 인간 유인촌은 싫은데 연극배우 유인촌의 연기력은 인정한다는 사람들은 많다. 그냥 연기자로만 남았으면 전설로 기억되었을텐데 ....이미지 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뮤지컬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했다.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빌라도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아 오기도. 그 외에도 한강은 흐른다 나 지하철 연가등 창작 뮤지컬의 주연도 자주 맡았다.


사실 TV 필모 초기에는 의외로 깡패나 사회잉여 역도 꽤 했다. 80년대 모 드라마에서는 사회 잉여였다가 삼청교육대에 간 후 착하게 되는 역할도 했고 전상국의 원작인 아베의 가족에서는 한국에서 동네 날건달들과 미성년자 성추행등을 일삼다가 우연찮게 미국으로 이민가서 날라리로 살다가 입대하여 주한미군으로 귀국하여 모친의 과거와 이복형의 존재를 찾는 역할도 했다.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한다. 연극에서 <햄릿>이나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군 <역사는 흐른다>에서 이규직, <조선왕조 5백년>에서 조광조(풍란), 인조임금(남한산성) 연기가 대표작. 


2014년 초, 홀스또메르를 통해 연극계로 복귀했으며 변함없는 연기내공을 선보였다. 특히 2015년에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 페리클레스에서 메인 무대에 복귀했는데, 이때 아들인 연극배우 남윤호와 페리클래스 역을 나눠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남동생은 성직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다. 2013년부터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을 근거리에 모시는 요직인 보좌주교를 담당하고 있다. 유경촌 주교가 막 신부가 됐을 적에, 배우 유인촌의 동생이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형제가 정치적이나 학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유인촌이 보수정권 하에서 장관까지 지낼 정도로 보수적인 정치성향이나, 동생 유경촌 주교는 진보적 학문으로 불리는 사회교리를 전공하고 신부 시절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교리 전공 교수로 있었을 정도로 사회참여적이다. 정작 유인촌 본인은 나중에 이명박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개신교 장로회로 개종했다.


홍대 클럽의 은인(?)이다.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이 터졌을 때 보수층 사이에서 홍대 클럽 폐쇄 여론이 대두되었다. 당시에는 연극배우였고, 대학가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편이었던 터라 직접 서울시장 이명박을 데리고 클럽 드럭에 방문하여 록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클럽 문화를 변호했다. 이 덕분에 클럽을 쓸어버리려던 이명박은 생각을 돌렸고, 보수언론도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후의 행보가 어쨌든 현재 인디씬이 살아남는 데 나름 큰 공헌을 한 셈.


또한 전파인증 규제를 완화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10만 원대 휴대폰을 사서 전파인증으로 30만 원을 더 날려야 했을 것이다. 그가 전파인증 규제 완화를 시켜주게 된 계기는 바로 iPad.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이전인 2010년 그가 방송에 직접 나와 발표를 하는데 아이패드를 쓰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었던 것. 당시는 외산단말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전파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아이패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해주세염 하면 ㅇㅋ 하고 몇분만에 뚝딱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내부 회로도까지 직접 제출해야 가능했다. 이게 일반인 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그런데 유인촌이 그런 물건을 방송에 나와 쓰고 있으니 당연히 국민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은 사고 싶어도 수입이 불가능한걸 장관이 쓰는 모습이 방송을 타며 언론에 보도되는 등 일이 일파만파 커졌고, 정부는 '1인 1기는 전파인증 없이 반입 가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유인촌은 한동안 비꼬는 의미에서 문익촌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8년 국정감사 도중, 야당측 이종걸 의원의 질의에 기분이 단단히 상했는지('MB 정권의 졸개' 운운했다) 사진 찍지마! X발! 찍지마!라고 기자에게 욕설을 했다. 
우스갯 소리로 탕수육 소스를 안찍어먹는 부먹파 라고도 카더라...

그리고 차관들이 말리고 회의장을 나가면서 또 XX,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 X발!이라고 욕설을 했다. 당연히 유인촌 장관은 구설수에 올랐고, 유인촌을 데려온 MB도 싸잡아서 까였다. 이로 인해 대중들에게 유인촌은 심하게 까였고 이미지도 안좋아졌고, 인터넷에서는 유머와 합성물의 소재가 되면서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