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및 폭행에 시달렸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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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및 폭행에 시달렸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2017. 5. 16.

유진박은 미국의 전기 바이올리니스트.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뉴욕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미 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아 8살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했으며, 10살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을 정도로 천재적인 음악성을 가진 음악인으로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이후 제대로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여러 음악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음악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1996년 줄리어드 음대 졸업후 한국에 와서 열린음악회 출연후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당시 인기있던 바네사 메이, 나이젤 케네디 등등의 영향을 받아 정통 클래식만이 아닌 재즈, 팝, 록 등의 요소를 클래식에 결합한 소위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을 하였고, 당시 국내로선 파격적인 전기바이올린을 이용한 연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또한 IMF 이후에 만들어진 당대 인기가수 총집결곡 하나되어에 유진박의 독주장면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동안 배정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날리던 홍콩 스타 여명의 'Sugar in the marmalade'에 피쳐링하여 라이브 무대에도 함께 출연하고, 리듬게임 펌프 잇 업의 반야 오리지널 곡의 제작에 참여한 것은 이에 비하면 뭐...

이후 시간이 흐르고 다소 잊혀진 이름이 된 유진 박이 다시 세간의 화제로 떠오는 때는 2009년 중반기였다. 당시 그는 소규모 행사장과 유흥업소등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고, 또한 소속사에 의해 착복을 착취를 당하고 있었으며, 덧붙여 구타까지 당하였다고 한다. 어느땐가부터 그가 오랜 감금생활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있다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사실임이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감금과 폭행 그리고 착취는 경찰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으며, 같은 소속사의 이 모 사장이 소속사에 소속된 여가수를 성폭행한 것도 확인되었다. 또한 소속사의 남자 연예인한테 강제로 자위를 하라고 강요한 뒤 협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를 촬영했다는 혐의가 있어, 이것이 유진 박과 관련되었는지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유진 박 그는 예전부터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과 대화를 할때 반말을 사용하거나 어리숙한 말투를 사용하여 사람됨이 순진하게 여겨지거나 그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의심될 만큼 한국 사회 속에서 거의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진 박의 상태를 이용하여 소속사가 그를 함부로 다루며 착복하고 이용하였다는 사실에 네티즌들은 분노하여 인터넷 여러 사이트에 소속사의 부당함을 호소하여 유진 박 구명운동을 벌였다.

현 소속사는 유진 박이 심각한 학대를 당한 건 사실이나 이는 전 소속사가 일으킨 문제이며, 자신들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나 현 소속사도 전 소속사와 같은 소속사가 이름만 바꿔서 위장 중이라는 주장이 각처에서 제기되었다.

아래 두 영상을 한번 비교해보자.


<유진 박의 한국 최초 공연>




<망가졌던 시절 공연>

그 카리스마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여기저기서 곡을 틀리기까지 한다. 이상할 정도로 생기 없는 얼굴, 힘없는 걸음, 이해하기 어려운 타이밍에서의 쇼맨쉽, 무엇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종류의 실수로 점철된 연주라는 점에서 항우울제나 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 문제의 소속사에 의해 만들어진 유진 박 3집은 평론가들에게도 상당한 혹평이었다. 1, 2집과 완성도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사장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음악을 제작하면서 완성도가 떨어졌다.

다 끊고 다시 미국으로 가면서 일단은 일단락된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그의 어머니인 이장주씨와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 어머니인 이장주씨가 유진 박이 폭행,감금당할 당시에도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계약금과 손해배상금에만 목을 멨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폭스엔터테인먼트에서 동국엔터테인먼트 로 소속사를 이전하는데에는 이장주씨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다른 매니저는 보이지 않고, 여러 목격담에 따르면 이장주씨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아직 불안한 정신상태를 보이는 유진 박이 걱정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돈 관리 측면도 어머니 스스로가 일임한다는 점과 함께 그의 일정도 그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수상한 점이 너무나 많다. 아직은 의혹 단계이므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되지 아니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있다.

e-NEW에서 2013년 4월에 곱창집 연주사건을 중점으로 취재했을 당시, 정신적인 문제가 많이 드러났다. 어머니에 대한 강한 의존, 산만함, 자신의 파우치와 물건에 대한 강한 집착, 고정된 대답, 급작스런 감정 기복 등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취재였다. 취재 과정에서 강남성모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결과, 자폐증은 아니고 양극성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조증과 우울증이 극단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병인데, 심리적 불안이 반복되는 고정적 대답이나 감정기복 등으로 나타나므로 안정을 취하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더불어 현 소속사인 동국 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 어느정도 궁금증이 해소되는 취재이기도 했다. 우승하 대표의 존재와 우 대표 앞에서 그닥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는 모습을 보았을 때, 딱히 현 소속사에서 부당대우를 받는 일은 없는 듯 하다...

다만 모 스님을 찾아가 머리에 잠깐 10초정도 손을 얹은 것을 보고 치료라고 부르는 등, 이 소속사도 그닥 좋은 소속사라고 볼 수는 없는 듯 하다.

그의 어머니가 사실 이 모든 고생의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유진 박은 줄리어드를 졸업할 20대 초반에 한국에 왔으며 미국에서 활동한 적이 거의 없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은 홍보용 문구일 뿐, 줄리어드 졸업생이고 어린시절 미국의 몇 무대에 선 것이 전부였고, 귀국하자마자 조악한 소속사를 만나 세계 음악계에서 활동할 기회조차 없었다. 뉴욕에서의 연주무대는 대부분 한인 커뮤니티의 행사 연주이며, 유진박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진박의 소속사와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유진박을 소모했다는 뜻이다.

1996년 공연 이래 한국에서 크게 성공하자, 어머니가 귀국하여 아예 작정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으며, 문제의 처음 소속사로부터 억대의 계약금을 받아갔다. 물론 어머니가 수입을 관리하는 연예인들은 많으니 문제가 없지만, 강제공연과 정신적 착취 등의 이슈를 알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단 한번도 적극적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계약파기 소송비 등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들 보호에 미온적이었다.


2013년 방송 인터뷰에서는 유진박이 "최근 들어 여자친구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 그러면 엄마가 항상 반대를 한다"며 깜짝 폭로했다. 이에 대해 유진박의 어머니는 "두 달만 살다가 이혼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나"며 "아들은 혼자 운전도 못하는데 며느리가 이걸 다 감당을 해야한다"며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반대를 했다고 밝혔다.

2015년 어머니가 사망하였고(아버지는 2006년 사망), 많지는 않지만 부동산 몇개를 상속받았다. 그간의 어머니의 만행에 대해서는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힘들다. 이후 그의 이모가 2016년 9월 유진박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