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4번째 베이시스트 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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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4번째 베이시스트 서재혁


2017. 4. 21.

서재혁은 1975년 1월 17일 생으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작곡가 겸 베이시스트. 컴퓨터급 기억력, 부활의 브레인으로 종종 불리며, 연기자 지성 닮은 잘생김으로 부활의 비주얼 담당. 원년멤버인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부활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부활의 공식앨범 7, 8, 9, 10, 11, 12, 13집에 참여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가게 된 교회에서 기타를 처음 배웠다. 매일 저녁 스스로 연습을 강행할 정도로 빠져들면서 교회 밴드의 기타를 전담하게 된다. 


일명 교회스타가 되었다. 어렸을때부터 어쿠스틱 기타 일렉 기타, 피아노, 드럼 연주 모두 능수능란했고, 중창단에서는 바리톤을 맡기도 한다. 
베이스로 눈길을 돌린 건 중학교 2학년때 부터였는데 독학으로 베이스를 배웠으며 이문세,이태윤, 송골매가 출연하는 영상을 녹화해 몇번씩 돌려보며 따라했고, 자신의 우상인 '검은장미'의 베이시스트 진영성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루평균 18시간동안 베이스와 함께 했으며, 찬송가는 거의 다 연주했을 정도로 연습했다고 한다.

친구 4명과 진영성의 집으로 찾아가서 직접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으나 길고 굵지 않은 손가락, 서양악기를 다루는데 불리한 신체조건을 지적당하며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오기가 발동해서 새벽5시부터 해질 무렵까지 베이스 연습에 몰두했다.
실력은 프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자 인근 밴드 영입 1순위로 떠올랐고, 무대 공연을 즐겼다. 무려 5개의 밴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음악에서의 승승장구, 대신 학교성적이 곤두박질 치자 어머니가 공부에 전념시키려고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강행할 정도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부터 음악인이 되겠다는 의지가 완강하자, 어머니는 조건을 달았는데 4년제 대학교를 진학하면 음악장비를 사주겠다고 협상을 한다. 구미가 당긴 서재혁은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합격하고 입학과 함께 손안에는 베이스 기타가 들어온다. 

물리학도가 베이시스트가 되는 계기는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셈. 간략하게 보면 엄친아 그 자체.

경찰악대에서 지휘자로 군복무를 끝내고 바로 뛰어든 취업전선은 밴드, 베이스 연주가로 가수 최재훈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행사, 방송 등의 일정은 많아졌지만 체불되는 임금으로 주머니는 늘 허전했다고 한다. 
이후, 터보, 포지션등의 앨범작업에 참여하면서, 공연기획자, 뮤직비디오 프로듀서, 무대연출가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국내 최고 음반기획사로 꼽혔던 도레미레코드사까지 손을 뻗을 정도였다. 
혼자 음반을 제작해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김윤성과 함께 상상밴드를 결성하고 노래를 녹음하고 기획사를 돌아다녔으나 반응이 냉담했고 해체의 쓴맛을 마셔야 했다.


1999년 말, 김윤성은 유학을 떠나게 되고 떠나는 공항에서 수고했다며 부활 김태원의 전화번호를 주며 부활의 베이스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게 된다. 처음에는 록음악에 흥미가 없었고, 부활의 이미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떠돌이 음악가로 사는 건 더 싫었다고 한다. 

어렵게 전화 수화기를 들고, 서재혁은 당돌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태원씨 전화인가요? 저..서재혁이라고 하는데요! 베이스 오디션 보려고 하는데요?"
잠시 뒤 김태원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론리나잇과 사랑할수록' 연주를 준비해 오세요" 
나중에 자신이 음악인 대선배를 몰라보고 너무 당돌하게 들이대서 죄송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곡을 카피하면서 부활 음악이 세련되고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끊임없는 연습으로 두 곡을 손에 익혀서 오디션을 봤는데 30초만에 합격 통보를 받게된다. 여담으로 이때 김태원은 이 친구는 뭐지..? 하면서도 당당함에 반했다고.

부활 6집의 실패로 김태원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바뀌는 초유의 상황에서 서재혁도 어수선한 부활을 경험한다. 급작스레 모인 멤버들. 
리더 김태원은 술에 절어있는 시간이 잦았다고 한다. 당시 25세의 서재혁은 베이스를 연주하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걸까'라고 수차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미 불협화음을 몇 차례 겪은 팀. 

멤버 개개인의 의욕은 넘쳤고 저조한 6집 성적 탓에 나올 앨범에 사활을 걸었다. 
문제는 체계였다. 전무한 전문 프로듀서, 음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멤버가 한 명도 없었다. 모든 것은 리더 김태원 중심으로만 돌아갔다. 그는 멤버들의 안이함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김태원에게 '멜로디 수정이나 방향성만큼은 심도 깊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라고 용기내어 건의를 했고 김태원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일정 멜로디 삽입이나 삭제는 물론 키를 달리해 수차례 녹음을 시도했고, 많은 교류 끝에 낳은 일곱번째 앨범 수입은 저조했지만 분명 달라진 점은 있었다. 부활의 매니아 층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팬클럽 '부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때 상당히 공을 들여 7집의 판매량은 낮았으나 명반으로 남았다. 김태원에게도 변화가 생겼는데, 400프로 가까이 쓴 완성도 높은 안녕이 망하면서 곡이 꼭 무결점에 가까워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구나. 듣기에 편안해야 하는구나.. 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김태원뿐만 아니라 멤버 개개인의 곡 참여가 앨범 활동에 반영되는 시발점이 된 것이고, 이는 리더인 김태원의 부담도 덜어 줄 뿐만 아니라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는 멤버가 아닌 자신만의 음악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후로 서재혁과 채제민이 작곡/작사한 곡도 한두 곡씩 올라온다.
'태원이형에게 배운 것이 참 많다. 리더라기 보다는 선생님에 가깝다. 게을러보여도 음악에서만큼은 자기생활을 포기하고 달려들 만큼 열정적이다'라고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완벽할 것만 같지만, 의외로 허당인 부분도 있는데 팀내 반대를 담당하고 있다. 이것이 부활의 변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네버엔딩스토리 가이드 곡을 처음 들려주었을때 '이건 곡이 아니다. 이게 무슨 노래냐고'하면서 김태원에게 무안을 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가이드곡에 대한 언급을 보면 그~리워하면~ 언젠가..콜록..큼..되느은~ 이런 느낌?

훗날 네버엔딩스토리가 대국민 히트곡이 되자, 평생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생각이나 곡을 들려주었을때도 앨범 타이틀로 부족하다고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재혁이 반대하면 무조건 된다, 뜬다 라는 말도 있다.

베이스는 드럼과의 호흡이 중요하며 비트만 있는 드럼과 음정이 있는 다른 악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약기다. 일반인들이야 잘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꼭 필요한 악기인가 싶기도 하지만 산소가 없어진 다음에야 산소의 소중함을 알 수 있 듯, 밴드에서 베이스의 역할이 딱 그거다. 그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 주다가도 베이스의 본래 역할인 리듬 연주에 충실한 스타일도 보여준다. 결코 얌전한 스타일은 아니다.

직접 작곡한 곡인 'soloist' '파이란' 'someday'와 김태원 작곡의 'head up' '돈키호테' 에서는 베이스의 비중이 매우 크며 불후의명곡 경연곡인 뜨거운안녕, 무정부르스, 여로에서는 베이스 독주 파트가 들어가 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서 적재적소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프로 중의 프로라고 할 수 있다. 

공연할때 연주하는 베이스 독주를 보는 관객들은 부활의 명성에 걸맞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테크닉과 쇼맨쉽에 베이스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국악기와의 협연등에서 펼친 즉흥연주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연주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잘생긴 외모에다 현란한 베이스 독주와 화려한 입담은 한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


그래도 베이스를 이해하는데 도움 된다. 베이스기타 독일 브랜드 샌드버그의 한국 엔도저이다.
뿔테안경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부활 멤버들이 모두 선글라스 뿐아니라 각종 안경을 즐겨 사용하기 때문에 협찬해주는 곳도 많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베이스 연주가보다 창작가로 불리는게 더 기분좋다고 한다. 창작은 교회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다양한 찬송가를 개발하여 경험을 쌓았다. 의경 재직 시절에도 교회에 출석해 곡을 만들 정도였다. 의경 전역후에도 더 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찬송가 작곡으로 한정된 악상이 문제였다.

이전까지 락음악을 접할 기회가 적어서 락 음악에 대한 창작의 기틀은 부활을 만나면서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다.
따로 작곡 공부를 했으며 김태원이 여길만큼 질문의 공세가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2001프로젝트 팀 'Jackpot' 앨범 발매, 뮤지컬 '헤드윅' (앨범발매) , '이도와 세계음악'-국악+클래식 협연 NEGA network - publishing 계약,
2005 뮤지컬 헤드윅 
2006 프로젝트 팀 'little wing'결성 활동, 
2007 뮤지컬 'All shook up', 뮤지컬 '펌프보이즈', 드라마(위대한유산)OST
2008 뮤지컬 '햄릿', 뮤지컬 'Dirty Rotten Scoundrels', 뮤지컬 '굿바이 걸',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KBS '박중훈 쇼' 밴드에서 활약했다.

부활앨범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꽤 많다. '노을' '개미' '또다시 사랑이' '섬' '파이란' '흑백영화2' 'OZ' 'someday' 'soloist' 'close your eyes' 'promenade' 외에도 편곡 실력이 특히 월등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에는 트로트 '술한잔'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노을'은 영화 비열한 거리에 삽입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곡이 그간 부활스타일과 다르다는 의견에 그는 한정된 느낌이 짙던 부활 음악의 껍질을 깨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김태원과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다보니 음악이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위에 언급된 곡들을 들어보면 팝송처럼 귀가 절로 신난다.

영화 ost 작업을 자주한다. 2004년 정우성,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시작으로 2010년 포화속으로, 사요나라이츠카와 2014년 제3의사랑에서는 음악감독을 맡았다. 모두 이재한 감독의 작품이다. 

신인가수 및 밴드 발굴에도 일가견이 있다. 2012년에는 인디밴드 포스플로어, 스픽아웃을 발굴하여 엘컴퍼니라는 음반회사를 설립했다.

2017년 2월 8일 교육부는 대학교수부터 록밴드까지 참여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학습모듈을 개발했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서재혁이 실용음악분야 개발진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방송 출연은 2009년 전과 후로 나뉜다. 김태원이 예능에서 신드롬을 일으키자 자연스럽게 부활에게도 포커스가 집중되어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2009년 이전에는 음악방송(열린음악회, 이소라의 프로프즈, 지방 음악방송 뒤란 등)에 간간이 출연하고 멤버들 끼리도 6개월에 한번 볼 정도로 방송이 뜸했다. 서재혁은 김태원의 예능출연을 반대했으나 드러머 채제민이 2008년 지방 행사를 끝내고 올라오는 경부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다가 김태원에게 '형님 우리 이러다가 다 죽어요' 라고 하는 바람에 김태원이 눈물을 머금고 예능 출연을 결심했는데, 

이게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김태원은 예능 출연을 돈 벌러 가는 가장이라고 표현했다.

팬들사이에는 입담 좋기로 소문났지만 정작 본인은 예능의 어려움을 여러번 토로했다.

2009년 6월 KBS Joy - 꽃미남 포차에 출연해서 한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하자 진행자인 김구라와 문희준이 말 좀 하라고 시키자 ' 태원형이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예능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요'라고 끝을 맺었다.

2010년 KBS 남자의자격 - 남자 그리고 하모니 편에서 '10월의 어느 멋진날'을 불러 심사위원단으로 부터 박자, 음정 다 좋다라는 호평을 받아 오디션에 합격했다.

2011년 11월 KBS스타인생극장 - 부활편에 출연하여 약혼자를 공개하기도 하였다.
2012년 10월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했을때 출연자 아기를 이뻐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4년 부활보컬이 김동명으로 바뀌면서 부활 멤버들과 함께 KBS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경연자로 자주 출연했다.
뜨거운 안녕 곡을 연주할때는 손가락에 부착한 핑거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공중파에서 최초로 파격 연주 기법을 보여주었다. 

2016년 7월 김태원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해서 '우리가 부활말고 외도를 많이 했었다. 태원형이 부활을 든든히 지켜주셨기에 할 수 있었다' 라고 하자 김태원은 '그건 외도가 아니죠, 생계수단인거지'하면서 웃어 넘겼고, 외부에서 거액의 스카웃 제의가 있었으나 거절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