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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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2014. 4. 11.

과학자들은 목적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과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뉴턴의 법칙들은 왜 공이 특정 경로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 법칙들은 단지 공의 운동과 그 운동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말할 뿐이다. 1836년에 출판된 어린이 과학책 <자연철학에 대한 첫 수업>에 나와 있는 다음의 대화에는 과학적 질문과 종교적 질문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공을 공기 중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죠?"

 

던진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무엇이 그 공을 움직이게 합니까?"

 

내 팔의 힘입니다.

 

"여러분이 이 힘을 만듭니까?"

 

아닙니다. 신이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자연철학자들은 과학이 특정 종류의 문제에는 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질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의 대답들은 종교와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과학과는 관계가 없다. 종교가 하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과 모순되지 않거나 겹치지 않는, 목적에 대한 질문들에만 종교를 적용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종교는 자연세계에 적용되어 왔다... (중략)... 하지만 어느 쪽이든 종교와 과학은 별개다.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어떤 사람들은 과학이 원래하기로 되어있는 질문들을 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 ​본문 내용 중에서 발췌

 


꽤 오랜 세월 동안 종교는 세상의 법칙과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아니,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정신이 발달하면서 종교는 수많은 분야에서 도전을 받고 종교가 상상했던 자연현상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천동설) 그중에서 종교의 핵심 원리인 창조론은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함에 따라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이 때문에 진화론을 처음 발표할 당시에는 종교계를 필두로 하여 각계의 비난이 쏟아졌고 다윈을 미치광이 취급하였다. 그러나 생물학, 물리학, 정보기술, 유전학, 신경생물학, 심리학, 물질 화학 등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사고방식들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고. 다윈 이후 진화론에 끊임없이 적대적이던 교황청도 2009년에 이르러서는 진화론을 수용하는 입장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150 년이 넘도록 실컷 부정하다가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되자 교묘히 창조론과 진화론은 양립 가능하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꼴이라니...)

 

너무 뻔한 얘기지만, 여기서 말하는 종교란 기독교다.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단체는 알고 보면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도들이다 (지적설계자 = 기독교의 신). 이들은 학교에서 진화론의 대안 이론으로 지적설계론을 가르치자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지적 설계 운동이 무지한 대중을 선동해 미국이 퇴보할 것을 우려한 존 브룩만은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팀 화이트 등 세계적인 과학자 16명이 지적설계론을 진지하게 반박한 에세이들을 모아 이 책을 낸 것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책 아니냐?'라고. ​ ​뭐... 불합리와 비논리, 경험보다 상상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본문에서도 나왔듯이 신의 존재 유무와 자연법칙의 발생기원과 목적의 문제는 과학에서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뿐이다. 기독교가 공격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세상을 정말 신이 창조했다면, 이 세상을 이루는 자연법칙은 신이 의도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자연현상들은 수백 년간 기독교가 말해 오던 것과 달랐으며 (다윈도 원래는 창조론자였다는 것을 아는가?)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틀렸음을 자연스레 입증한다. ​ 한마디로, 신이 있다고 해도 기독교에서 생각하는 신은 아니라 이거다. (기독교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신의 이름을 빌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체 했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긴 하지만...)

 

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번복하거나 과학을 종교의 적으로 간주한다. 재미있는것은 과학을 부정하면서도 지적설계론 같은 (얼핏 보기에) 과학적으로 보이는 접근법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수많은 사실을 날조하고 창조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지적설계론자들이 말하는 것이 허황되고 비과학적인 날조라고 하냐?라고 묻는다면, 이 책에 그 해답이 있으니 꼭 일독하라고 권해 주겠다. 진짜 과학 이론의 특징은 무엇인가? ​ 지적 설계를 과학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지적 설계는 결국 과학의 탈을 쓴 종교인가? 혹시 날조가 아닌가? 지적 설계자들은 어떻게 대중을 속이는가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룬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마 영원히 결론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다). 종교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라지지 않으며 과학과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을 위해 종교만이 수행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종교가 과학의 영역을 침범해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무지한 사람을 속여 이득을 취하고, 신의 이름을 빌어 범죄를 정의로 합리화하는 사실에는 상당히 분개하고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펜실베이니아 중부 미국 연방 지방법원의 판결문의 일부분으로 리뷰를 마치겠다.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지적 설계가 세 가지 수준에서 실패라고 생각한다. 셋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지적 설계가 과학이라는 판결을 배제하기에 충분하다. 첫째, 지적 설계는 초자연적 인과관계를 끌어들이고 허용함으로써 과학의 수백 년 된 기본 규칙들을 위반한다. 둘째, 지적 설계의 핵심인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논증은 1980년대에 창조과학의 종말을 부른 비논리적이고 결함투성이인 '억지 이원론'을 인용한다. 셋째, 진화론을 부정하는 지적 설계의 공격은 과학계에 의해 반박되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지적 설계가 과학계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는 동료 검토를 거친 출판물을 발표한 적이 없고, 검증과 연구의 대상이 된 적도 없다 (.... 중략....) 과학은 세상에서 '의미'와 '목적'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초자연적 설명도 중요하고 가치 있지만, 이것은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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