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4.
유비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촉의 황제가 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명분일 것이다.
촉은 한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나라이다. 그렇기에 많은 인물들이 강대한 위나라가 아닌 촉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나라는 유씨의 나라이다. 한고조 유방 이후 왕망에 의해 잠시 명맥이 끊기기는 하였으나 유씨 황실의 혈통을 이은 광무제 유수에 의해
다시 재건되게 된다.
이렇게 이어져 내려오던 한나라는 헌제의 대에 이르러 위나라의 조비에 의해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후 한나라의 명맥을 이은 것이 유비의 촉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신하인 제갈량이 황제가 된다고 하였다 하더라도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쉽게 수긍했으리라 보기는 힘들다.
아무리 유비가 제갈량에게 '유선이 모자라다면 경이 황제가 되어 촉을 이끌어
주시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이는 비난받기에 충분한 일인 것이다.
유비가 유언을 남겼으니 괜찮은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일 뿐이다.
은나라 때의 고사를 예로 들어보겠다. '은나라 때 왕위를 이은 태갑은
어리석고 포악하여 조부인 탕왕의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많았다.
태갑은 선왕이었던 중임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당시의
재상이던 이윤에 의해 동궁에 내쳐져 3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태갑은 3년동안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이윤은 태갑을
다시 모셔와 왕의 자리를 돌려주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은나라의 재상 이윤의 고사이다.
이러한 고사에서
보듯이 제갈량이 이윤의 고사를 따랐다고 한다면 비난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사회에서 이윤의 고사는 충신의 전형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갈량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더라고 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제위를 이어받게 된 당위성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위나라의 한나라 황위 찬탈에 대해서도 뭐라고 할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위나라와 촉나라가 대립하게 된 이유는 한의 황제를 핍박하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갈량이 황제가 된다면 그 당위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갈량은 한나라 말기 청류 지식인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청류
지식인이란 탁류(환관들을 중심으로 한 부패한 사람들)에 반대한 지식인으로서 한나라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제갈량이 유선을
제치고 황제가 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든 것이다.
한나라의 뒤를 잇는다는 명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면 조조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순욱 역시 당시의 유명한 청류 지식인으로서 한나라의 부흥을 위해
조조에게 협력하지만 후에 조조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조조가 위공이 되고 구석을 받는 것을 반대하다가 조조의
뜻에 따라 자결로서 생을 마치게 된다(살해 당했다는 설도 있음).
제갈량은 처음부터 황실의 일원인 유비를 섬겼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욱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를 자결로 몰고 간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유비의 유언은 제갈량의 한계를 알고 있던 유비가 제갈량을 유선의 밑에 묶어두려는 생각에 그런
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확인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유비는 유선의 한계와 제갈량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만약을 대비하여
쐐기를 박아두려 한 것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