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2.
책을 읽는데 특별한 요령이 있냐구요?
특별한 방법이 있겠냐마는 나름대로 제가 30년 이상 책을 읽으면서 터득한 요령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책을 매우 좋아 합니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흰종이에 검은 점만 있으면 손이 가는 편이 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읽고 싶은 책들은 넘쳐 나는데 시간이 없지요. 그러다 보니 짧은 인생 효과적으로 책을 읽는 요령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책을 읽는 목적을 생각해 볼까요? 첫째로, 정보를 습득하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두번째로는 정서적 만족을 위해 시나 소설을 읽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영화를 보듯 죽~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특별히 요령이랄 것도 없지요. 그러므로, 첫번째 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도, 짧은 시간 많은 독서가 필요한 직장인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절대로 책갈피를 사용하지 마라.
2. 표지 부터 표지까지 읽지 마라.
3. 차례와 일러두기를 꼭 보아라.
4. 무한한 궁금증으로 책을 선택하라.
5. 책은 항상 더럽게 보라.
1. 책갈피만 이용하지 않아도 기억 속에 2배로 남는다.
책을 사면 읽은 부분을 표시 하라고 책갈피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멋진 비싼 책갈피 들도 있지요. 특히 원서의 경우 몇줄까지 읽었는지 연필로 표시를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목적이 책의 진도를 나가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표시를 하지 않으면 자연히 앞에 읽은 부분을 한번 훑어보게 됩니다. 읽을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책의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또한, 오랜 만에 읽게 되어도 내용이 단절 되지 않지요. 책 내용을 2배 더 머리에 담는 저의 요령입니다.
오랜만에 보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구요? 당연히 생각이 나지 않는 만큼 앞의 부분을 훑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어떤 때는 한 챕터 정도를 다시 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시 읽어서 손해가 아니라, 다시 읽어서 다행이죠^^ 그렇죠??
2. 표지 부터 표지까지 읽지 마라.
보통 후배들이 자문을 구하면 책을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한두마디 요령을 원하지만, 실제 기본이 안되있는 경우 요령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운동처방에 대해 알려주세요.." 라고 하면, 운동처방에 관한 텍스트를 몇권 추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이 친구들이 얼굴이 사색이 되는데(원서라도 몇권 들어 있으면), 저를 아주 원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주로 책을 표지 부터 표지까지 읽은 경우예요.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본답니까? 그 내용들이 나중에 도움은 될지 몰라도 잘 기억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고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저를 만나서 알고 싶은 것을 묻는 것처럼, 책을 만나서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 됩니다. 이런 자세로 읽는 다면 어쩌면 수십권을 읽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릴 수도 있습니다. 기억에는 더욱 더 남구요.
게다가 선배를 만나서 물어보면 중간에 "그건 아는 이야기니 다른 이야기를 해주세요" 할수도 없지만, 책은 세계적인 석학의 이야기도 읽고 싶은 부분만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일이예요? 특히, 그 책의 볼륨(양)에 질려버렸을 때, 책의 제목만 줄을 쳐가면서 읽어보세요. 그책의 반은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사실 느낌 뿐아니라 반을 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물론 소설이 아니라 논문, 교양서적, 정보서적의 경우입니다.
시험범위가 너무 많아 그냥 덮어버리고 싶다면 제목에 줄만 쳐보세요.
제가 한의대 들어와서 갖게된 소망 하나가 고등학교 때 처럼 "이제 다~ 했어" 란 기분으로 시험을 쳐보는 것이었습니다. 완벽주의자였던 저는 항상 어처구니 없는 시험범위에 공부할 맘을 잃었었죠. 만약 책 한 권이 모두 시험 범위 라면 책의 제목만 줄을 쳐가면 봅니다. 그 다음엔 작은 제목들을 보고... ..그리고서, 족보나 예상 문제들을 보면 감이 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시험범위 처음부터 한장 한장 보다가는 시험범위의 1/10도 못 본 채 절망속에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완벽주의, 강박을 벗어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읽는 것도 훌륭한 독서입니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정보화 사회선 무엇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 무엇에 관한 올바른 정보가 어디 있는지만 기억하면 된다.
3. 차례와 일러두기를 꼭 보아라. (systematic reading)
일러두기는 작가와 차를 한잔 마시는 것입니다. 다음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말지.... 이 과정을 뛰어 넘는다면 책을 모두 읽고서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없잖아... " 하는 탄식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면 차례를 보고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는 부분만 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차례를 보는 가장 큰 목적은 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예요.
차례라는 것은 마치 여행의 지도와 같아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항상 알려준답니다. 특히, 당신이 수동적인 여행자가 아니라면 이 "차례"라는 지도를 갖고 항상 원하는 곳을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훨씬 심도있는 여행을 하실수 있답니다. 가이드만 따라서 순서대로 하는 여행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책의 오른편위에 이 장(챕터)의 소제목이, 책의 왼편위에 큰제목이 있는 책을 좋아합니다. 책의 제목이야 항상 머리 속에 있는 것이고, "가끔 내가 어디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 책의 윗부분을 보면 마치 지하철 역의 알림판 처럼 이정표가 보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책의 왼편위엔 큰 제목 "한국의 경제", 오른편엔 작은 제목 "시장원리" 라고 써있는 것은 3호선 신사역입니다 라고 써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내가 강남의 신사에 있는지 강북의 신사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죠. 이것이 습관화 되면 책에서 모순되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훨씬 심도있게 탐색할 수도 있게됩니다. 생각해보세요.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다가 "앗!" 하고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면 아까 보았던 그림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두 그림의 연결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평면적인 커버투커버의 독서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할 것입니다.
4. 무한한 궁금증으로 책을 선택하라.
효과적인 독서의 요령은 책을 고르는데서 시작합니다. 막연하게 책을 읽으면 좋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책 저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내가 알고 싶은 정보에 대한 책을 고르세요. 그 책을 읽는 1차 목표는 그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내 식견을 넓히게 되지요. 이렇게 골라 읽는 책은 막연히 남들이 좋은 책이라고 해서 읽은 책과는 차원이 다르게 기억이 됩니다. "역시 배스트셀러는 뭔가 있어....." 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책장을 덮어버리는 독서는 만화가게에서만 하면 됩니다.^^ 선배로 부터 권유받은 책도 모두 읽을 필요는 없어요. 정말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이 있는 책인지 살펴보세요. 이것을 효과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이 일러두기와 차례입니다. 엄청난 궁금증으로 그 책에 대한 돈을 지불하고, 그 책은 당신의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합니다.
차례와 일러두기, 책의 소제목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장으로 넘어가거나 소제목을 발견하면 무조건 읽는 버릇을 들이세요.
소제목은 다음 내용을 요약하고 있으며, 내가 무엇을 알고자 책을 보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장치입니다. 의외로 소제목이나 장(챕터)의 제목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목적(궁금증) 없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책을 읽게 됩니다. 수개월만 지나면 기억이 나는 것은 책의 제목과 단편적인 구절들 뿐, 정작 중요한 것들은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5. 책은 항상 더럽게 보라??
저는 다시 볼 책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합니다. 대신 다시 볼 책에는 항상 밑줄과 메모가 가득 차 있습니다. 비만이나 다이어어트에 관한 중요 정보가 체크되어 있을수도 있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더 고민해 볼 부분이 표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더 멋진 일은 무엇인지 아세요?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경우 처음 부터 끝까지 읽는데 한 시간도 안걸린다는 점이예요. 아무리 감동적인 책도 나중에 다시 읽어지지 않거든요. 참 슬픈일이예요. 너무나 감동적인 멋진 글도, 그렇지 않은 글도 단 한-두번씩 만 읽힌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처음 읽을 때 항상 메모해두고 밑줄을 그어 놓았다면 수십번, 수백번 찾아 볼수 있어요. 정보가 필요할 때도, 마음의 위안이 필요할 때도, 용기가 필요할 때도 말이예요. 마치 연애편지를 꺼내 보듯이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잘 구겨지고, 메모도 부담없이 할수 있는 페이퍼백을 좋아합니다. 값도 싸고 ^o^
* 책꽃이 정리 요령
마지막으로 책을 정리하는 요령도 하나 알려드릴께요. 작가순으로 혹은 책의 내용 분류로 책을 나누어 놓기도 할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책을 크기 순으로 나누어 놓기도 하지요. 제가 사용하는 방법은 6단의 책장으로 가정하면 방금 읽은 책은 맨 위의 6단 제일 왼쪽에 놓는 거예요. 꽉 찼으면 맨 오른쪽에 있는 책을 한단 아래로 내리지요. 자주 읽는 책은 계속 6단 왼쪽에 가장 읽지 않는 책은 1단 오른쪽으로 점점 가게 됩니다. 이해 가시나요? 이 원리는 "자주 읽는 책을 또 찾는다는 진리에 바탕을 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예요. 나중에 정보가 필요해서 책을 찾을 때 80% 이상의 책은 책장 제일 윗단 왼편에서 금방 찾게 되지요. 책꽃이의 "80:20" 법칙이라고나 할까요? 놀랍게도 이런 방법은 컴퓨터의 메모리에도 사용된다고 하더군요. 가장 최근에 사용한 내용을 가장 꺼내기 쉬운 곳에 저장한다고 하지요.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두뇌도 이런 방법으로 기억을 저장한답니다. 책장이 많은 경우 한 5-6줄만 이렇게 사용해보세요. 나머지 책장엔 거의 손이 안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너무 잘난 척을 하며 떠든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방법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고, 더 좋은 요령으로 책을 읽는 분들도 계신 것입니다. 특히, 책꽃이 정리요령은 저도 스스로 알아낸 것인데, 일본의 누군가가 "초정리법"이란 책으로도 내었다고 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이미 하고 계신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없는데 읽을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특히, 좋은 논문이나 글을 쓰려면 많은 양의 독서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좋은 논문을 쓸 수 없습니다. 유려한 글솜씨는 타고 나도, 합리적인 글쓰기는 훈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