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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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2014. 1. 31.

펭귄 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기억보다도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만큼 유명한 동화가 몇이나 있을까. 나 역시 도대체 언제 읽은 지 기억도 안나지만 엘리스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 엘리스는 소설 자체도 주목할만한 작품이지만 팀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매혹적인 게임 <아메리칸 맥기의 엘리스>, <엘리스 매드니스 리턴즈>와 같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작품에서 <매트릭스>의 '토끼'처럼 작은 흔적이 남은 작품들 까지 서양 문화에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영향은 무궁무진하기에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공 관련책을 찾아 교보문고에 들른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할인율(20%였다.)에 혹하여 펭귄 클래식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구매하였다.



내게 펭귄클래식은 특유의 디자인으로 먼저 다가왔다.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구매를 거부하던 중 디자인에 반해 한 권 두 권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펭귄클래식을 읽다 보니 다른 장점이 눈에 띄었다. 바로 때로는 과할 정도라고 생각되는 해석이 붙어있다는 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역시  260페이지 정도의 책 중 100페이지-_-가 작품 관련 설명이었다. 요상하게도 책 읽기 전에 읽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 읽고 넘어가기도 신경쓰이게 서문에다가 저러한 설명을 붙여놓는 게 항상 신경쓰였는데(당연히 책의 내용이 서문에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내용을 대충 알고 있기에 함 서문부터 읽어보았다.


판본과 삽화에 대한 이야기를 빼더라도 80페이지가 훌쩍넘는 서문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작가인 루이스 캐럴에 대한 설명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창작 배경, 특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실존 인물 엘리스 리델과 루이스 캐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거칠게 요약하면 루이스 캐럴은 소녀에 대한 애정(집착)이 상당히 강했고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자신이 근무한 대학교의 학장 딸인 엘리스 리델이었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리델과 자매들에게 해준 이야기를 리델을 위해 책으로 묶은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리비도가 예술로 승화되었군하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부분은 해설자의 억측이라 볼수는 없는 것이 루이스 캐럴과 리델이 직접 기록한 이야기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문은 책 외부의 루이스 캐럴-엘리스 리델 사이의 관계외에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내용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담고 있는데 작가가 평소 언어의 임의성과 난센스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역시 단어를 통한 말장난이 상당 부분 들어있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각주가 아니었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넘어갈 말장난 들이 거의 모든 대화에 포함되어 있엇기 때문에 작품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 특히 엘리스 리델이 포함되었던 상류층 지식인 사회를 작품에 많이 적용했다는 사실 역시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난센스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는 것은 안그래도 무의미해 보이는 사건들의 나열인 작품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물론, 서문의 설명을 다 읽고 각주를 챙겨 보더라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작품에 대한 내 기억보다도 이상한 작품이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술술 읽히지만 도대체 뭔지. 이런 느낌은 내가 찬양해 마지 않는 작가 '이말년'의 <이말년 시리즈>에서 보던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된 거 청와대로 가자!" 상당히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면도 보이는 엘리스가 펼치는 모험은 흡사 초현실주의의 자동연상법을 보는듯하다. 또한 그 상상력 역시 상당히 그로테스크하여 훗날 엘리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에서 보이는 기괴한 이미지가 결코 원작에 비해 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 없이 진행됨에도 캐셔 고양이, 모자장수 등 매력적인(혹은 미친)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금새 마지막장까지 넘어갈 수 있었다. 

 

뭐 다들 알고 있다 싶이 "아, 시발 꿈"으로 끝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용가지고 크게 할 말은 없지만 각주를 보면서 알 수 있었던 당시 영국 사회와 엘리스 리델에 대한 비유들은 꽤 쏠쏠하게 재밌었다. 또 어렵지 않게 토막시간에 읽기도 좋았고 삽화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여유가 된다면(시간도 돈도 아니고 사놓은 책들을 다 읽는 다면)  거울 나라의 엘리스』도 책꽂이에 같이 꽂아 놓고 싶다. 엘리스 판본이 워낙 많기 때문에 다른 책은 퀄리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펭귄 클래식판은 추천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