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는 본래는 25세에 정재은씨와 결혼하여 12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이병철이 백화점사업부를 맡아서 운영해보라고 했고 이명희는 경영에 자신이 없다고 했으나, 결국 1979년 영업담당 이사로 신세계에 입사한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과 더불어 현재 이부진, 이서현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家 여성 경영인의 시초.
이후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1998년부터 남편 정재은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아 현재까지 회장으로 재직하며 신세계를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키게 된다.
전형적인 은둔형 경영자 스타일로 회사 운영도 본인이 직접적으로 챙기기 보다는 전문경영인이 주로 회사를 챙기고 본인은 큰 흐름만 제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버지 이병철이 죽고 언니 이인희와 이명희는 재산을 균등하게 상속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언니 이인희의 한솔그룹은 쇠퇴하고 이명희가 이끄는 신세계그룹은 재계순위가 무려 20계단이나 올랐다. 때문에 탁월한 경영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름은 익히 알려져 있고 사진도 언론이 몇번 보도됐었지만, 실제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편이다. 덕분에 경쟁매장인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등에 잘만 다녔다고하며 백화점 운영에 참고를 많이했다고 한다. 실제 명동 롯백 에비뉴엘에 딸인 정유경 부회장과 쇼핑하고 식사한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사실 대중에게 이명희 회장이 많이 알려진 이유는 고현정 이혼 이후의 구설수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2005년에 본점 확장 오픈 쯤 언론 인터뷰를 한건 빼고는 본인 인터뷰도 거의 없다. 심지어는 백화점 개점식에 직접 참석한건 1984년 영등포점과 2006년 명동 본점 확장 오픈 뿐이라고.
그래서 과거엔 구학서 회장 등 부회장이나 사장단이 언론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으며, 2010년 이후로는 대외적인 활동을 주로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하여 언론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후술할 2015년에 있었던 추징세 부과가 근황일 정도.
당초 정재은 명예회장 등 오너일가가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지분을 상속하면서 35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면서 화제를 모았으나 2015년 11월에 차명주식 800억 원 가량을 2003년에 이어 추가로 실명전환하면서 증여세 등 각종 이유로 700억원에 달하는 추징세가 부가되면서 아들인 정용진 대표와 각자 100억씩을 청년희망펀드에 희사한 의미가 퇴색돼버렸다.
그룹 후계는 정용진, 정유경 남매에게 분할되었는데 정용진이 그룹총괄 및 이마트를, 정유경이 신세계백화점을 가져가는 구도. 경영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명희 본인에 비해 자식들은 경영 참여에 적극적인 듯 하다.
아들인 정용진이 고현정과 이혼한 후 한동안 방황하자, 정신차리라는 뜻에서 매일 아침 용산구 한남동자택에서 당시 개점을 앞두고 있던 이마트 양재점까지 뛰어서 출근하도록 시킨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운동삼아 강남대로를 뛰어가라는 명. 한겨울 추위 속에서 몇 개월 간 극기 체험을 통해 정용진 부회장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충실해졌다는 일화는 재계에서 제법 유명한 이야기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인 고현정의 시어머니였다는 점 때문에 '무서운 시어머니계의 끝판왕' 취급하는 경우가 꽤 보인다. 고현정은 이혼한 뒤 인터뷰에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명한 배우가 재벌가에 시집갔다가 이혼한 것치고는 이혼 조건 및 위자료가 형편없었으니 실제로도 완고하고 위압적인 성격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