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손자이며, 김정일의 첫째 아들. 그리고 사생아. 미혼이던 김정일과 유부녀였던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1971년 5월 10일생. 21세기 이후로는 중국이나 마카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등의 동남아시아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등지에서 중국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자주 출몰했었다. 북한 내에서도 적이 많다고 알려졌다.
두 번의 입국 금지 전력이 있다. 첫번째는 2001년 일본입국을 시도하다 거부당해 베이징으로 돌아간 거고 두번째는 2007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올려다 홍콩 입경처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입국을 거부한 것.
김정남이 태어날 때 할아버지도 득남했다.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현과 같은 해(1971년)에 태어났다.
성혜림의 조카, 김정남의 이종사촌이자 탈북자였던 故 이한영의 회고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상당히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고...
하지만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 멀어지면서 총애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도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데 한 몫 했다는 얘기가 있다. 젊은 시절엔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생활했다고 하며, 북한의 외국인 전용(겸 고위층용) 나이트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천장에 쏴버렸다. 이에 분노한 김정일이 허리띠를 뽑아서 그걸로 엄청 때렸다고 한다.
대표적인 북한 연구자인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온갖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제외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커가면서 망신도 당하고 권력 승계에서 멀어지자, 처세의 일환으로 자중하는 듯했다.
[권력 계승]
김정일의 첫째 아들이란 점에서 남한에서 한때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적이 있다. 다만 김일성 시대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일은 자신의 자식들을 일찍 후계자로 정하지 않고 있어서 김정일만큼은 주목받지 못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가 가장 많은 아들이었기에, 가장 인지도는 있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제왕조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정실 부인이 아닌 유부녀와의 불륜 관계로 태어난 김정남은 종법제에 의하면 이른바 사생아 혹은 서자 정도의 위치인지라 계승에 장애물이 있다. 실제로 김일성이 아직 힘이 있고, 김정일이 아직 후계자로 내정되지 않았을 땐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일의 권력 계승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성혜림과의 관계가 불문이었기 때문에 김정남이 태어난 후에 김정일은 김일성이 직접 짝지은 김영숙과 혼인하게 된다. 결국 김영숙은 김정일의 정실 부인이 되는 셈인데, 김영숙은 장녀인 김설송을 포함해 딸만 둘 낳은지라 아쉽게도 김정일에겐 이른바 적통이 없는 상황인지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셋째 부인 고용희 소생인 김정은이 결과적으로 권력 계승에 성공하였다. 고용희는 후처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밀린 듯하다. 더불어 김정은 역시 고용희 미화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2010년 9월 남동생 김정은이 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보아 김정남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물론 아직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김정남은 김정은이 정식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해 '3대 세습을 반대한다'면서도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 거다. 정은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돕겠다'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선 권력에 대한 미련을 보인 거라는 둥, 세습은 반대해도 정은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둥, 사실상 망명 상태라 그로 인한 반감이라는 둥,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서양의 반응을 생각한 거라는 등, 추측이 다양하다.
북한은 일단 예정대로 김정은 후계 체제로 돌입하고 있지만 내부 지지기반만 없다 할 뿐 경력이나 공로, 경험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한 김정남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김정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김정남이 단순히 한량이거나, 쫓겨나서 떠도는 신세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정일의 지시로 해외에서 자금줄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특히 마카오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자금 세탁 라인의 책임자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교민에 의하면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고 간혹 프랑스에도 가며 현재는 쭉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에는 홍콩에 입국하려다 거부당했다.
[박근혜와의 관계]
한편, 박근혜 편지 사태와 관련하여 박근혜가 이사로 있던 유럽코리아재단의 대북 사업에 장성택과 더불어 비선으로 활동하며 북한과 불법내통했다는 의혹이 주간경향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겨우 피살 3일 전에 올라온 기사다.
박근혜의 유럽코리아재단이 김정남을 통해 장성택에게, 한복, 부적 등을 한국에서 만들어 제공해줬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복은 전주에서 맞출 경우 2,400달러였고 서울 디자이너의 경우 5,000달러가 필요하다고 까지 전해주었기도. 한국의 역술인들을 통해 사주풀이도 전해주었다고 알려졌는데, 장성택의 사주를 “아주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고 풀었다고 한다.
[암살]
TV조선에 따르면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 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여성 2인조에게 독침으로 살해되었다고 한다. 해당 여자 2인조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빠져나갔으며, 현지 경찰이 수사 및 추적 중이다.
현장에서 말레이시아 경찰이 발견한 여권의 명의는 1970년 6월 10일 생의 '김철'이다. 원래 위조여권이 많던 북한에다가 해외 도피 생활 중인 김정남의 경우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재까지 발표된 공식 사망원인은 '급사'다. 다만 연합뉴스는 BBC의 보도를 인용해 액체가 묻은 천으로 얼굴을 감쌌다고 하였고, 현지 언론은 김정남이 '누군가로부터 독극물로 추정되는 미확인 액체를 맞았다'며 도움을 요청해 푸트라자야병원으로 옮겨지는 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사건 직후 대사관을 통해 시신을 인계할 것을 요구했지만, 말레이시아 측에서는 15일 부검 후 인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도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현지 공관을 통해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즉각 보고되었다.
국가정보원에서 독극물로 살해된 것이 맞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김정남의 암살 소식에 중북 국경에 병력을 증파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 김정남 여동생 김설송에 대한 감금설과 아들 김한솔의 소재불명에 대해 보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김정남을 암살한 여성 암살자 2명도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한편 이 여자들이 북한인이 아니라 베트남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리고 CCTV에 그 2명의 여성 범인 중 한 명이 포착되었다. 사진으로 미루어 보아 이 여성의 몽타주는 광대뼈가 드러난 사각형의 턱이며 키는 별로 큰 편이 아니고 보통 체형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경찰이 위 사진의 '도안 티 흐엉(Doan Thi Huong)' 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여권을 가지고 있는 28세 여성을 체포하였다고 밝혔다. 5명도 추적 중이다.
중국이 김정남 피살과 관련된 보도를 삭제하거나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은 확성기를 통해 북한에다 김정남의 피살을 알리기로 했다.
웨이보 안에서는 박근혜가 불리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박근혜 개입설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박근혜가 현재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국정원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무엇보다 탄핵으로 인해 권력 행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신빙성이 낮다.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국정원을 통해 개입할 수 있지않느냐하고 반문할 수 도 있지만, 해외에서 중요인물을 암살하는 것이 쉬운일도 아니고, 실패했을 때 발생할 위험부담도 큰 만큼,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