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vs 한국 차전의 결과로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크게 하락하였고, 기어코 한국 월드컵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이번에도 등장했다.
일단 대한민국은 16강에 가기 위해서는 비기는 것도 안 됬다. 상술된 바와 같이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전력이 워낙 막강해서 이기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였다.
심지어 포르투갈 입장에서도 한국에게 질 경우 자칫 조 2위가 될 가능성이 작게나마 있고, 조 2위는 16강에서 최강 브라질을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주전을 빼는 로테이션으로 느슨하게 경기를 치를 가능성은 낮았다. 물론 토너먼트 대비를 위한 카드 관리라는 변수가 있기는 했다.
전반 5분 만에 포르투갈이 페페의 롱패스를 디오구 달로트에게 연결, 김진수가 달로트에게 돌파당하면서 가운데에서 쇄도하던 히카르두 오르타에게 편안하게 컷백이 연결되며 선제 실점하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두 번째로 빠른 시간에 실점한 것이다.
동점을 노리던 대한민국은 전반 16분에 코너킥에서 짧은 패스 후 손흥민이 올린 날카로운 크로스를 조규성이 헤더로 연결했으나 디오구 코스타의 선방에 막혔다. 세컨볼이 정우영의 허벅지에 맞고 김진수에게 흘러 김진수가 공을 밀어넣었으나, 정우영의 허벅지에 공이 맞았을 때 김진수의 위치가 오프사이드라 득점이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 27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강인이 올린 크로스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등을 맞고 문전에 있던 김영권에게 흘렀고, 김영권이 4년 전 카잔의 기적이 떠오르는 날아차기 슛으로 득점하며 1:1 동점이 됐다.
동점골 2분 만에 페페가 처리한 공이 최전방의 호날두에게 침투패스로 연결되어 1대1 상황이 나왔으나, 호날두의 아웃프런트 슛을 김승규 골키퍼가 잘 막아냈다. 그리고 부심이 깃발을 들면서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왔는데, 호날두가 워낙 앞에 있어서 설사 골이 되었다 하더라도 무효 처리될 상황이었다.
전반 39분에 손흥민이 상대 진영에서 공을 뺏어서 중거리 슛을 시도했으나, 슛이 다소 약하게 맞으면서 디오구 코스타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해 막혔다.
전반 42분에 우측면에서 올라온 땅볼 크로스를 한국 수비진이 한 차례 걷어냈으나, 이게 멀리 가지 못해 박스 앞에 있던 비티냐에게 흘렀고, 비티냐가 수비진을 앞에 두고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날렸으나 김승규 골키퍼가 쳐냈다. 하지만 펀칭한 공이 멀리 가지 못해 앞에 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다이빙 헤더로 슛을 시도했으나, 골문 좌측으로 빗나가며 포르투갈이 결정적인 기회를 날렸다. 위의 화면에서 나오듯이 헤더가 거의 수비수가 걷어내는 수준이었다.
전반전 추가시간은 2분이 주어졌고, 한국이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면서 1:1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반전 도중 포르투갈 수비수들이 대한민국 선수 1명을 시비 걸듯이 가볍게 툭툭 치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 등 신경전이 이어졌다.특히 호날두는 그날 경기에서 포르투갈어로 욕까지 했다고 한다.
후반 7분, 주앙 칸셀루가 넘어진 이재성의 종아리를 밟으면서 경기가 2분 정도 지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SBS 해설위원 박지성은 경우에 따라서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퇴장까지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이재성이 칸셀루의 뒤에서 공을 탈취하려던 상황이었고, 칸셀루도 공을 컨트롤하다 밟은 것이라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온필드 리뷰는 진행되지 않았다.
후반 10분, 역습 상황에서 황인범의 패스를 받은 조규성이 기막힌 스루패스로 손흥민에게 공을 연결했으나, 박스 안에서 손흥민의 슛이 수비수에 막히면서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후반 14분, 황인범의 태클로 손흥민이 공을 잡으며 돌진하였으나 슈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 20분 즈음까지 지지부진한 경기 양상이 이어지자 양 팀 모두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포르투갈은 부진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옐로 트러블이 있던 후벵 네베스, 존재감이 없던 마테우스 누네스를 빼면서 안드레 실바, 하파엘 레앙, 주앙 팔리냐를 투입해 공격적으로 올라섰고, 대한민국은 많은 활동량을 보여준 데다가 칸셀루에게 발목이 밟히면서 통증이 있었던 이재성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빼고 부상에서 복귀한 황희찬을 투입해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시도했다.
황희찬이 투입 직후 전방 압박과 저돌적인 돌파 후 손흥민에게 패스했고, 손흥민이 중거리 슛을 감아때렸으나 수비수에 굴절되며 디오구 코스타 골키퍼의 정면으로 향해 잡혔다. 1분 뒤에는 강력한 전방압박으로 상대의 패스미스를 유도, 정우영이 공을 끊고 황인범에게 패스해 황인범이 왼발 중거리 슛을 강하게 날렸으나 또 한번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후반 24분, 김진수의 크로스를 받은 손흥민이 박스 안쪽에서 다이렉트 발리 슛을 시도했으나, 주앙 칸셀루가 몸으로 막아냈다. 이때 한국 선수들이 핸드볼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리플레이를 돌려본 결과 공은 팔이라기보다는 오른쪽 옆구리에 강하게 맞았고 팔에 맞았는지도 불분명했고, 맞았다 하더라도 칸셀루가 팔을 몸에 딱 붙이고 있었고 옆구리에 맞은 공이 튀어서 팔에 맞은 거라서 핸드볼이 선언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후반 27분, 이강인이 볼 소유권을 가진 상태에서 태클에 걸려 넘어지며 프리킥을 얻었고, 이강인 본인이 직접 슛으로 연결했으나 우측으로 빗나갔다.
후반 막바지에 접어들자 양 팀 모두 체력이 떨어지면서 경기가 다소 루즈해졌는데, 그래도 선수들의 기본 클래스가 있고 교체 선수들이 더 많이 투입된 포르투갈에게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 36분에 대한민국도 교체 카드를 활용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이강인과 부상을 입은 김영권을 빼면서 황의조와 손준호를 투입, 정우영을 센터백 자리로 내리는 변화를 가져갔으며, 포르투갈도 주앙 마리우와 비티냐를 빼면서 윌리암 카르발류와 베르나르두 실바를 투입했다.
정규 시간이 종료될 무렵까지도 대한민국은 전방으로 좀체 올라가지 못했는데, 짧은 패스는 포르투갈의 전방 압박에 대부분 차단되었고, 롱볼을 날리면 조규성은 체력 저하로, 황의조는 제공권 부족으로 잘 따내지 못하고 세컨볼도 잘 가져가지 못하면서 크게 밀렸다. 비기면 16강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6분이 주어진 추가시간에 접어들었고,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16강행에 실패하는 상황이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도하의 기적입니다! 도하의 기적입니다! 황희찬! 역전 골입니다! 역전 골입니다!!!
그러나 후반 45+1분, 포르투갈의 코너킥이 김문환의 머리를 맞고 나와 손흥민에게 갔는데, 순간적으로 손흥민 앞쪽에 큰 공간, 흔히 말하는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손흥민이 직접 드리블로 적진으로 파고들어갔고 조규성, 황희찬, 황의조가 그 뒤를 전속력으로 따라갔다. 포르투갈 수비진들 5~6명이 손흥민에게 집중되는 틈을 타 조규성에 비해 비교적 체력적인 여유가 있던 황희찬이 뒤에서 빠르게 쫓아가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이 다시 없을 좋은 기회를 놓칠리가 없던 손흥민의 수비수 디오구 달로트의 다리 사이로 절묘하게 지나가는 일명 알까기 스루패스가 황희찬에게 정확히 연결되며 1대1 기회를 열어줬다. 그리고 황희찬이 지체 없이 논스톱 슛으로 역전골을 꽂아넣는 데 성공했다. 영상으로 보면 알겠지만 황희찬과 수비수는 몸이 거의 겹쳐있었고 수비수가 단지 팔 한 쪽만 먼저 나가있던 타이밍이었기에 절묘하게 오프사이드를 피할 수 있었다. 즉, 손흥민의 패스 타이밍이 한 발짝만 더 늦었거나 혹은 빨랐더라면, 혹은 황희찬이 1~2초만 볼을 끌었더라면 골로 연결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후 한국은 조규성을 빼고 센터백 조유민을 투입해 김영권 대신 센터백을 보던 정우영을 다시 제자리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려 전면 수비 태세를 취했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공을 뺏고, 그 뺏은 공을 지키기 위해 마치 방금 경기를 시작한 선수마냥 최선을 다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녔다. 심지어 손흥민은 무려 중간에 마스크를 한 손에 빼들고 드리블을 시도하는 미친 투혼까지 보여줬다. 포르투갈은 포기하지 않고 슈팅을 끝까지 시도하였으나, 대한민국은 뜬 공을 헤더로 계속 걷어내며 견제에 성공적으로 집중하며 추가시간의 추가시간까지 다 보냈고, 파쿤도 테요 주심의 휘슬이 울리며 최종스코어 2:1. 대한민국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됐다. 선수들과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으며, 손흥민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오열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2:1로 포르투갈을 제압한 그 시점까지도 동시에 진행 중이던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그제야 후반 추가시간에 돌입한 상태라 선수들도 팬들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전반 추가시간이 2분밖에 없었지만,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전반전 추가시간이 8분이나 주어졌던 탓에 상대적으로 늦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기 종료 시점에서 우루과이-가나의 후반 추가시간은 해당 경기 전반전과 동일한 8분이 주어졌고, 스코어는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가 유지된 채로 경기가 종료가 되면 우루과이와 승점 4점, 득실차 ±0인 것은 같지만 다득점에서 대한민국(4득점 4실점)이 우루과이(2득점 2실점)를 앞서서 16강에 진출하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 이 8분 안에 혹시나 우루과이가 한 골이라도 더 넣어 3:0이 되면 한국은 탈락이었다. 덕분에 에듀케이션 시티 경기장에서 경기를 끝낸 대한민국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경기장에서 둥글게 모여서 휴대전화로 가나전 중계를 시청했고, 대한민국 관중들까지 모두 휴대전화로 애타게 경기 결과를 지켜보는 장면이 비쳤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포르투갈 선수들도 상대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환호하지 않고 대한민국 선수들과 모여 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를 숨죽이며 지켜봤는데, 가나의 역습이 막힐 때는 탄식하고, 우루과이의 날카로운 공격이 빗나가거나 가나의 수비진과 로렌스 아티지기 골키퍼의 선방에 막힐 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밌게도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루과이의 승리를 위해 우루과이를 응원하던 한국의 축구 팬들이 어느새 제발 한국인이면 가나 좀 응원합시다를 외치며 우루과이가 한 골이라도 넣는 것을 막기 위해 가나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일어난 것이다.
가나도 남은 후반전 안에 2골 이상을 넣고 스스로 16강으로 가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오히려 우루과이를 궁지로 몰아넣는 전략을 썼다. 특히 12년 전 수아레스가 저질렀던 문전 핸드볼 블로킹 사건을 잊지 않았던 가나는 우루과이의 진출이라도 막겠다는 집념으로 가능한 시간을 끈 뒤 골킥을 차거나 후반 추가시간 막바지에 선수 교체까지 단행했고 아티지기 골키퍼는 영혼까지 끌어올린 집중력을 선보이며 우루과이의 맹공을 막아냈다. 결국 대놓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섭섭하지 않게 우루과이라도 데려가겠다는 물귀신 작전 덕에 전반전의 스코어 0:2를 경기 종료시까지 유지시켰다.
그리고 최초 추가시간 8분에 더해 약 1분이 조금 더 넘는 시간이 더 주어졌고, 막판에 우루과이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으나 니콜라스 데라크루스가 무방비였던 우측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때렸고, 아무래도 바로 넣을 만큼 충분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던 탓에 공은 날아가다 속도가 떨어져 아티지기 골키퍼에게 쉽게 잡혔다. 그때 노마크였던 세바스티안 코아테스가 양팔을 올리며 어이없어 했는데 공이 코아테스한테 갔다면 우루과이가 가나 선수들을 네 명이나 막고 있어서 1대1 상황도 가능했다. 대한민국에게는 정말 천금같은 오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티지기 골키퍼가 공을 차기 위해 잔디바닥에 공을 떨군 순간 심판의 휘슬이 울리며 그대로 우루과이의 2:0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그제서야 붉은악마 원정 응원단은 자신들의 응원가와 함께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 태극전사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9%의 기적이 실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