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5.
1999년 4월 8일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위치한 대부업체 사무실에서 사채업자와 사채업자의 처남, 조직폭력배 2명. 총 4명이 채무자를 납치 및 감금, 폭행해 사망에 이르고 현금을 갈취한 사건.
피해자인 'A씨'(사건 당시 41세)는 원래 건축회사를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회사가 부도가 났고, 1년 3개월 뒤인 1999년 3월 사채를 끌어써 가면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에 청과물을 유통하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A씨는 부도 후 사채를 너무 많이 끌어쓴 까닭에 사채업자인 '노희승'(사건 당시 41세)이 A씨를 추적 및 통화를 시도했으나 A씨는 노희승의 추적과 통화를 무시하며 잠적하고 있었다.
A씨의 행동으로 열이 받칠대로 받친 노희승은 본인의 처남인 '서형택'(사건 당시 32세)과 노희승과 친분이 있던 조직폭력배 '한씨', '한씨'의 조직원인 '윤병노'(사건 당시 25세) 이 네 명이서 범행을 계획한다.
사건 당일 1999년 4월 8일 A씨가 어느 술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노희승은 '한씨'와 '윤병노' 이 두 명을 A씨가 있는 술집으로 보냈고 이 둘은 A씨를 납치해 양천구에 있는 노희승의 사무실로 데리고 온다.
사무실로 끌려온 A씨에게 "돈은 언제 갚을거냐?"라며 노희승은 큰 소리를 쳤고, A씨는 "아직 돈이 없다 기다려달라." 사정 봐달려하며 빌었다.
결국 돈을 못 갚으면 몸으로 떼우란듯이 노희승 포함 이 네 명은 1m짜리 각목으로 채무자이자 피해자인 A씨를 10시간 동안 복날 개패듯이 팼다. 그렇게 10시간 동안 두들겨 맞은 A씨는 외상성 쇼크를 일으켰고 이 네 명은 A씨 지갑에 있는 현금 50만원을 갈취, A씨를 대로변에 유기하고 도주했다.
이걸 목격한 사람이 119로 신고했으나 A씨는 이송 후 병원에서 치료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 네 명중 조폭 두목인 한씨는 얼마 안 가 검거됐지만 나머지 세 명인 사채업자 노희승과 노희승의 처남 서형택, 한씨의 조직원 윤병노는 잡지 못했고 1999년 11월 10일 이 세 명을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수배했다.
이 셋이 6개월 이상 장기도피를 하자 2001년 상반기 중요 지명 피의자 종합수배에 고유번호 6번~8번.(죄명: 강도치사)으로 수배됐고 2002년 하반기~2003년 하반기에는 노희승, 서형택 이 두 명만 수배(죄명:강도살인)하다. 2004년 상반기~2005년 상반기에서는 아예 삭제, 2005년 하반기에 노희승만 강도살인 용의자로 수배되고 그 뒤로 수록되지 않았고 윤병노를 제외한 이들의 검거 또는 자수 소식은 커녕 생사를 확인도 못했다. 그러나...
주범인 노희승은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 후인 1999년 7월 종로구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위조여권 브로커를 통해 타인의 신분증으로 여권을 위조했고 위조된 여권으로 다음 달인 1999년 8월 5일에 캐나다로 밀항하고 얼마 뒤에는 아예 미국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2012년에 FBI에서 노희승의 위조된 신분을 적발했고, 그 결과 범죄자 인도 협약으로 노희승은 대한민국으로 강제송환되었고 대법원은 노희승에게 강도치사와 공문서위변조죄 등 죄를 물어 '징역 10년'을 선고했으며 그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22년에 만기출소했다.
이렇게 2001년에 공범1명인 윤병노와 10년 뒤인 2012년 주범 노희승이 검거된 반면, 공범이자 노희승의 처남인 서형택만 검거나 자수, 사망으로 인한 사건 종결이란 내용이 2014년 4월 7일까지 소식이 없어서 지금 영구미제로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