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봄철 기근을 가리키는 말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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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봄철 기근을 가리키는 말 '보릿고개'


2017. 8. 8.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한국의 봄철 기근을 가리키는 말. 이를 고개에 빗대어 보릿고개라 부른 것.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쌀을 추수한 뒤 보리를 심어 2모작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보리가 제대로 맺힐 때까지 딜레이가 좀 길단 건데, 이로 인해 추수한 쌀이 바닥나는 5~6월에는 보리가 제대로 여물지 않았기 때문에 보리를 수확할 수 없었다. 쌀도 없고, 보리도 없기에 사람들은 자연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 애썼다.

오로지 하늘에 맡겨 농사를 짓던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를 보면 역병 등이 겹쳐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는 없어 시대가 갈수록 그것에 대비하여 대안 수단은 마련하고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이미 의창, 사창 등을 설치하고 미리 대안책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게 기근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는 버티기 어렵고 후기로 가면 관련비리가 많았다는 거지만.


일제강점기에도 보릿고개는 있었다. 그 당시 신문지상에서도 보릿고개를 맞이해 굶주리고 있는 지역 주민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때는 고구마나 감자같은 대체작물이 존재했고 조선시대보다는 교통망이 발달해서 조선시대 수준의 기아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보릿고개까지 쌀을 비축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 한반도인들이 밥을 워낙 많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농담같은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농담이 아니라 이게 설득력이 있는게, 옛날 밥상을 보면 밥그릇이 지금의 국 그릇보다도 큰 거대한 사발이다. 국 그릇보다도 더 크다! 생산량이 부족한데 이렇게 쌀을 많이 먹으니 쌀이 남는게 이상하긴 하다. 명성황후의 밥상을 사진 찍어둔걸 것을 봐도, 여성의 밥상인데도 밥그릇이 무식하게 큰걸 볼 수 있다. 절대 돌쇠용 밥그릇 같은게 아니다!!! 이런 한국인의 쌀 식욕(?)은 한국전쟁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분식장려 운동을 거치면서 줄어들었다.

그러나 제일 큰 원인은 유통망의 부재다. 괜히 북한이 허구헌날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포장도로를 전혀 확보하지 않다보니 물품과 식품들이 풍족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들로 제대로 유통이 잘 되어야 적어도 식량난을 겪지 않는데, 한반도에서 보릿고개가 사라진 시기는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서 유통망이 갖추어지는 시기이다.

여담으로 야사에 의하면 정순왕후 김씨가 영조의 눈에 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영조가 간택령에 뽑혀 모여진 규수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규수들이 저마다 높은 고개 이름을 댈 때 정순왕후 김씨는 "보릿고개야 말로 제일 높은 고개인 줄로 아뢰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 위에 여식의 몸으로 앉을 수 없다고 하고, 가장 좋은 꽃은 백성들의 옷이 되는 목화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보릿고개 현상이 없어진 지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월급 3일 전이라거나...